서경덕교수 SNS 캠페인
Newsroh=민병옥기자 newsroh@naver.com
고이케 유리코(사진) 도쿄도 지사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追悼文)을 올해도 보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매년 9월 1일에는 도쿄도 내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일본 시민단체 주도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식이 40년 이상 개최돼 왔다.
과거 이노세 나오키, 마스조에 요이치 등 도쿄지사들은 재직 중 이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냈으나, 고이케 유리코 현 지사는 2017년부터 보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일본에 거주중인 유학생들이 이런 상황을 전해줬고, SNS 상에서 '#고이케 유리코는 9월1일 추도문을 보내라(#小池百合子は9月1日に追悼文を送れ)'는 해시태그 캠페인 동참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현재 재일동포 및 유학생들이 펼치는 이런 의미있는 캠페인에 한국인들이 동참하면 더 큰 여론을 만들수 있기에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해시태그 캠페인을 널리 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서 교수는 "이번 SNS 캠페인으로 인해 간토대지진때 조선인 학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는 많은 일본 젊은층에게 정확한 역사를 알릴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1923년 9월 1일 도쿄도 등 간토 지방에는 규모 7.9의 대형 지진이 발생해 10만5천여 명이 희생됐다. 당시 혼란 속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流言蜚語)가 퍼지자, 일본 경찰 및 군인 등이 재일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당시 독립신문의 기록에 따르면 이렇게 학살된 조선인의 수는 6천661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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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2013년 공개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 (서경덕교수 제공)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關東大地震 朝鮮人 虐殺事件) 또는 간토 대학살(關東大虐殺)은 간토 대지진(1923년) 당시 혼란의 와중에서 일본 민간인과 군경에 의하여 무차별적으로 자행된 조선인을 대상으로 벌어진 대대적인 학살 사건이다. 희생자 수는 약 6,000명 혹은 6,6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수만명의 희생자가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1923년 도쿄 일원의 간토 지방은 지진으로 인하여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민심과 사회질서가 대단히 혼란스런 상황이었다. 일반인들 사이에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싹트는 가운데, 내무성은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각 지역의 경찰서에 지역의 치안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런데 이때 내무성이 각 경찰서에 하달한 내용 중에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 내용은 일부 신문에 사실확인도 없이 보도되었고, 보도 내용에 의해 더욱 더 내용이 과격해진 유언비어들이 아사히 신문, 요미우리 신문 등 여러 신문에 다시 실림으로써 “조선인(또한 중국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라는 거짓소문이 각지에 나돌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지진으로 인하여 물 공급이 끊긴 상태였고, 목조 건물이 대부분인 일본인은 화재를 굉장히 두려워 하였으므로, 이러한 소문은 진위 여부를 떠나 일본 민간인에게 조선인이나 중국인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유발하였다.
이에 곳곳에서 일본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불심검문을 하면서 조선인이나 중국인으로 확인되면 가차없이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죽창이나 몽둥이, 일본도 등으로 무장하였고, 일부는 총기로 무장하기도 하였다. 우선 조선식이나 중국식 복장을 한 이는 바로 살해당하였으며, 학살 사실을 알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본식 복장을 한 조선인이나 중국인, 타지역 출신을 식별해 내기 위해서 외국인에게 어려운 일본어 발음(한국어에 없는 어두유성음 및 종종 정확하게 발음되지 않는 장음 발음(撥音) 등으로 이루어진) “十五円五十銭(15엔 50전)”(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을 시켜보아 발음이 이상하면 바로 살해하였다. 이때, 조선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류큐인, 외자 성을 강제당해 조선인으로 오인받은 아마미 제도 출신, 지방에서 도쿄로 와 살고 있던 지방의 일본인(특히 도호쿠, 고신에쓰, 홋카이도 출신), 미국, 영국 등 서양 출신으로 도쿄에 온 기자들도 발음상의 차이로 조선인으로 오인받고 살해당하는 등, 자경단의 광기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일부 조선인들은 학살을 피해 경찰서 유치장으로까지 피신하였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자경단이 경찰서 안까지 쳐들어와 끄집어 내어 학살하였다. (자료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