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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쌈꾼 혁명가 백기완선생 별세

평생 통일민중운동 외길
글쓴이 : 로창현 날짜 : 2021-02-15 (월) 22:03:59

평생 통일민중운동 외길

마지막 말 김진숙 힘내라!” 남겨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김진숙 힘내라!”

 

통일민중운동의 대명사 백기완(白基玩)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9. 최근 심장질환 등으로 수술 치료를 받았던 선생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투병생활에 들어갔으며 15일 오전 4시께 영원한 안식(安息)에 들었다.

 

장례식은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으로 엄수된다. '노나메기''너도 나도 일하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뜻하는 우리말로, 선생이 평생 강조한 사상이다.

 

이날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엔 시민들이 줄을 이어 조문하며 고인을 기리는 모습이었다. 장례위원회는 17일까지 일반 시민에게도 빈소를 개방하고 공식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 여사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백미담 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발인은 19일 오전 7,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백기완 선생은 불쌈꾼’ ‘거리의 백발투사로 불리며 평생을 통일운동과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힘썼다. 특히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한 진정한 혁명가였다.

 

병상에서도 노동자 권리회복 등 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보인 선생은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씨의 복직이었다.

 

장례위원회의 송경동 시인은 마지막까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힘쓴 선생님은 한진중공업 복직투쟁을 벌이는 김진숙씨를 응원하면서 '김진숙 힘내라'라고 글을 적었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큰딸 백원담 씨는 아버지는 병상에서도 평화통일과 노동자와 민중의 권리가 회복되는 해방된 세상을 위해 마음을 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빈소에서 만난 선생의 평생 동무 방동규(87) 선생과 김승환(88) 선생은 백기완은 한마디로 사나이야. 누구도 범접 못할 사나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와 함께 백기완 선생이 1950년대부터 젊은 친구들을 이끌고 주도한 생명환경운동 녹화사업과 농민운동 빈민운동 등을 추억하는 모습이었다.

 



백기완 선생의 평생동무인 김승환(왼쪽) 선생과 방동규 선생

 

이날 빈소에선 모든 조화(弔花)와 조기(弔旗) 등을 돌려 보내는 모습이었다. 장례위원회는 선생님은 평소에도 당신이 돌아가시면 마음만 받되, 조화에 쓸 돈으로 우리 사회에 소외된 사람과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달라고 하셨다고 밝혔다.

 

1933124일 환해도 은률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1945년 해방 후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에서 서울로 내려왔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녔지만, 독학으로 공부하며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우는 등 영어 천재 소리를 들으며 다른 학생들을 가르쳤고 국비유학을 떠나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미국에 의한 분단과 6.25로 이산가족이 되면서 고인은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박정희 정권의 한일굴욕외교와 독재에 맹렬히 항거했다. 1967년 백범사상연구소를 설립하며 백범 사상 연구와 보급에 힘쓰며 1973년에는 유신헌법 개정 청원운동을 펼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옥고(獄苦)를 치렀다.

 



1979'UMCA 위장결혼식 사건'1986'부천 권인숙 성고문 진상 폭로 대회'를 각각 주도하다 구속, 복역하기도 했다. 1987년 대선에선 독자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후, 김영삼, 김대중 후보 양 김씨의 후보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지만 양김씨의 협상 결렬로 노태우후보가 36%의 득표율로 당선돼 민주진영에 아쉬움을 남겼다. 1992년 다시 독자 민중후보로 12월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것도 범민주세력 결집과 민중 운동에 힘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이었다.

 

선생은 소설과 수필집, 시집 등을 낸 문인이기도 했고 반독재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의 기초가 된 장편 시 '묏비나리'의 원작자로도 유명하다. 오랜 투옥과 고문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70대에 접어든 후에도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2003), 용산참사 투쟁(2009),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국정원 댓글 사건 규탄 시국회의(2014), 백남기 농민 사망 투쟁(2015),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20162017) 등 진보진영의 투쟁에 앞장서는 등 거리의 백발투사다운 기개와 올곧은 정신으로 존경을 받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꼬리뉴스>

 

백기완선생이 걸어온 길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며 어려선 혼자 공부했다. 6·25전쟁이라는 참화(慘禍)에 시달리다가 느낀 바가 있어 폐허가 된 이 메마른 땅에 목숨(생명)을 심고, 사람도 푸르게 가꾸자며 한편으로는 나무심기운동, 또 한편으로는 농민운동, 빈민운동을 했다.

 

4·19혁명 뒤에 박정희 군사독재가 권력을 찬탈하자 민족 반역자, 민주 반역자, 인간 반역을 저지른 3대 반역자라며 온몸으로 싸우다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일협정도 분단체제를 영구화하려는 국제 독점자본의 음모라고 생각해 분쇄 싸움에 앞장섰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반유신투쟁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1호로 구속됐다.

 

이어서 집권한 전두환 역시 유신독재의 잔당이라 규정하고 처절하게 맞섰다. 모진 고문, 투옥에도 물러섬이 없었다. 이명박 독재를 타도하려는 싸움에 늘 함께 했고, 박근혜 타도 촛불혁명 때는 몸이 불편한데도 한번도 빠짐없이 촛불현장 맨 앞을 지켰다. 한평생 참된 민주화란 니나(민중)가 주도하는 민중해방통일이라 믿으며 민족문화와 민중문화의 뿌리를 캐고 다듬었고, 너도나도 일하고 너도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살자는 뜻의 노나메기 문화관건립에 힘썼다. 통일문제연구소장을 지냈으며, 2021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지은 책으로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장산곶매 이야기>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백기완의 통일이야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두 어른>과 시집 <젊은 날> <이제 때는 왔다> <백두산 천지> <, 나에게도> 등이 있다.

- 출처 예스24 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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