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고향땅 못밟고 영면

‘통일할아버지’ 박종린 선생이 끝내 북녘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영면(永眠)에 들었다.
비전향장기수 박종린 선생(통일광장 성원,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이 26일 오전 1시49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박종린 선생은 60여년전 평양에 신혼의 아내와 백일된 외동딸을 두고 공작원으로 내려왔다가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교도소내 인권투쟁으로 또한번의 무기징역이 선고되는등 '쌍무기수'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갖은 회유와 고문을 견디며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다가 34년만에 병보석으로 93년 출감했다. 2000년 65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에 송환될 때 당연히 그이도 포함돼야 했으나 통일부가 전향자로 잘못 분류하는 바람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이후 2차 송환대상자로 분류돼 북녘에 보내 줄 것을 호소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평양엔 딸과 사위 두명의 손주가 있다.
□ 빈소 : 인천사랑병원 장례식장 1호실(1호선 주안역 8번출구)
□ 추도식 : 1.27(수), 오후6시, 빈소
□ 발인 : 1.28(목), 오전6시, 빈소
□ 화장 : 1.28(목), 오전8시, 인천시립승화원
□ 장지 : 금선사(서울 종로구)
□ 추모계좌 : 신한 110-274-124905 원진욱
< 故 박종린 선생 약력 >
1933년 3월 14일 중국 길림성 훈춘현 반석촌에서 부친 박승진(1945년 작고), 모친 채성녀(1988년 작고) 사이 5형제 중 넷째로 출생
1945년 3월 중국 훈춘 남신소학교 졸업
1945년 해방을 맞아 함경북도 경원군(현 새별군) 안농면으로 귀국
1945년 11월 조국광복회 항일유격대원 아버지 박승진님 별세
1947년 7월 함북 경원군 안농중학교 졸업
1950년 9월 만경대혁명가유자녀학원 졸업
1950 – 51년 인민군 자원입대, 오백룡사단 배속 전쟁참가, 낙동강전투 부상
1951년 12월 16일 화선입당(19세)
1958년 3월 로인숙님(24세)과 결혼, 59년 득녀(옥희)
1959년 6월 20일 연락책으로 남파(911 통신부대 소좌) 당시 딸 옥희 생후 100일
1959년 12월 29일 체포. 서울형무소 수감(국가보안법)
1960년 10월 28일 ‘모란봉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 선고
1961년 2월 18일 대법원 무기징역 판결. 대구교도소로 이감
1976년 이른바 “ 붉은별” 조직활동 사건으로 무기징역 추가. 2중 무기수로 복역함. 광주, 전주, 대전, 대구교도소 생활
1993년 12월 24일 병보석으로 출옥후 신병치료함
1994년 7월 – 2000년 9월 전남 무안군 용학교회 등에 거주. 무안 해제중학교 매점 근무
2000년 9월 – 2001년 3월 상경. 경기도 과천시 소재 소환된 비전향장기수들(홍문거, 김은환) 운영하던 고서적방 인수운영함.
2000년 9월 평양 비전향장기수 환영행사(부인 로인숙여사 –쓰러져 별세하심). 딸 옥희(김일성종합대학 교수)
2000년 10월 통일광장 성원
2001년 범민련 경기인천연합 고문
2001년 3월 – 2004년 5월 월간 “민족21” 창간 참여 근무함
2004년 5월 – 2007년 5월 홍익대 부속 중고등부 학생매점에서 근무
2005년 범민련 남측본부 금강산 행사 참가
2007년 5월 이후 신병 등으로 무직
2007년 6월 범민련 성원으로 6.15 7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평양)에 참가
2008년 북경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 참가
2015년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2017년 8월 오랜 옥고의 후유증으로 대장암 판정, 투병생활
2021년 1월 대장암 증세 악화로 인천 사랑병원 입원치료
2021년 1월 26일 오전1시49분 숙환으로 별세. 향년 8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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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통일부에서 온 편지 (20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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