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2017년 9월 한반도 안팎에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전운까지 감돌고 있다. 북한이 9월 3일 제6차 핵시험을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 장착용 수소폭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남한에서는 싸드 추가배치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앞서 러시아 방문 도중 푸틴 (Vladimir Putin)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에 원유공급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푸틴은 “북한이 아무리 압박받아도 안보를 위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꾸했다. 문 대통령이 다음날엔 아베 일본 총리를 만나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 중단’ 등을 포함한 최고 수준의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추진을 위해 공조하기로 했다.
한반도 안팎의 갈등과 긴장 또는 위기는 남북한과 주변 국가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서 빚어진다. 남한은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삼거나 북한을 겨냥해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며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해왔다. 북한은 미국을 ‘철천지 원쑤’로 삼거나 미국에 체제안전보장을 요구하며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해왔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빌미로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하며 중국의 미사일기지까지 탐지할 수 있는 싸드를 남한에 배치했다. 일본 역시 중국에 맞서기 위해 북한의 위협에 과잉 대응하며 군비를 증강하고, 자위대를 정상군대로 바꿔 ‘보통국가’가 되고자 한다. 중국은 미국의 접근을 반대하고 싸드 배치에 반발하며 이를 막기 위해 남한에 경제 보복을 가해왔다. 러시아도 중국에 동조한다. 이렇게 물고 물리는 관계엔 작게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과 크게는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해왔지만 미국은 한사코 거부해왔다. 주한미군 때문이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부터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주한미군을 ‘전략적 유연성’을 지닌 ‘신속 기동군’으로 전환해왔다. 주한미군의 역할은 본디 1953년 조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는 것이었지만, 1990년대부터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주한미군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고, 군항을 제주에 건설하며, 싸드를 성주에 배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이 북한과 불가침조약 또는 종전/평화협정을 맺으면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할 법적 명분이 사라지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구멍이 뚫리게 된다. 거꾸로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려면 주한미군이 있어야 하고, 주한미군을 유지하려면 북한을 악마로 남겨두어야 하며, 북한을 악마로 유지하려면 전쟁을 끝내지 않고 정전/휴전협정을 고수해야 한다.
‘겁쟁이 경기 (chicken game)’에서는 북한이 이기기 마련이다. 미국처럼 가진 게 많아 잃을 게 많으면 몸을 사리게 되지만, 북한처럼 가진 게 적어 잃을 것도 적으면 목숨까지 내놓기도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 북한처럼 수치와 모욕을 안겨준 나라는 없다. 두 가지 사례만 소개한다. 북한은 1968년 1월 원산항 앞바다에서 미국 해군정보함 푸에블로호 (USS Pueblo)를 나포해 80여명의 장병을 거의 1년이나 억류하다 미국의 사과를 받고 풀어주었다. 1969년 4월엔 비무장지대 상공에서 미군 정찰기를 격추해 30여명의 장병을 몰살시키기도 했다.
미국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약 250개의 전쟁 가운데 200개 안팎의 전쟁에 개입했지만, 미국 영토 안에서는 단 한 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미국처럼 자국민의 생명을 끔찍이 지키는 나라는 없다. 기껏해야 수십 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을 북한이 7천 개 안팎의 각종 핵무기를 배치해놓은 미국을 상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기지 그리고 괌과 미국 본토까지 단 한 개라도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한 미국은 북한을 선제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벌이게 될 텐데 북한은 몸값을 늘리기 위해 대화를 시작할 때까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원자폭탄과 중거리 미사일만 가지고 협상할 때의 힘과 수소폭탄과 장거리 미사일까지 지니고 협상할 때의 힘이 같겠는가.
북한이 미국과의 ‘겁쟁이 경기’에서 이겼을지라도 미국이 진 것은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몇 가지 실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북한과의 군사적 위기 속에서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때문에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되던 여론을 잠재울 수 있었다. 둘째, 국방예산을 증액시킬 명분을 얻었다. 트럼프는 북한과의 ‘말 폭탄’을 주고받는 다음날 8월 10일 “미사일 방어 예산을 수십억 달러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이 남한과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기간이 미국 의회에서 예산을 심의하는 기간과 겹치는 것을 주목할 만하다. 미국에선 대개 행정부가 매년 2월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면 의회가 3-4월에 심의하고, 정부가 7월 수정안을 의회에 보내면 의회가 8-9월에 심의해, 10월부터 회계연도를 시작한다. 그런데 가장 큰 규모의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독수리 연습’과 ‘키 리졸브’를 3-4월에 실시하고, ‘을지 프리덤 가디언’을 8월에 실시한다. 이에 맞서 북한이 핵시험을 하거나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면 위기가 증폭되고, 이러한 북한의 ‘도발’은 의회에서 예산을 심의할 때 국방예산을 증액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셋째, 북한과의 군사적 위기가 조성되면 미국은 남한에 미사일방어망 등 첨단무기를 쉽게 팔 수 있다. 2017년 8월위기 중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무기를 사겠다”고 말했고, 9월위기 중엔 트럼프 대통령이 남한에 수십억 달러의 첨단무기를 판매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넷째, 북한의 ‘도발’을 빌미로 중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거나 제재하는 데 북한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정책과 중국의 대응
2011년 오바마 (Barack Obama) 정부는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미국이 ‘태평양 세력 (a Pacific power)’이라고 주장하며 ‘전진배치 외교 (forward-deployed diplomacy)’의 기치 아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모든 나라 구석구석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른바 ‘아시아 회귀 (pivot to Asia)’ 또는 ‘아시아 재균형 (Asia rebalancing)’ 정책이다. 2020년까지 미국 해군함정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증강(增强) 배치하면서 일본, 한국 등과의 군사동맹 및 호주, 필리핀 등과의 군사협정 그리고 이 지역에서 실시해 온 양자 및 다자 간 군사훈련을 강화하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트럼프는 이와 달리 2016년 대통령선거 유세 때부터 미국의 국제적 역할을 축소하겠다는 신고립주의 (neo-isolationism) 대외정책을 표방해 중국에 호감과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2017년 집권 후엔 ‘미국 우선 (America first)’과 ‘힘을 통한 평화 (peace through strength)’ 정책을 바탕으로 오히려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30년 이상 연 평균 10% 안팎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2012년 미국을 따돌리고 세계 제1 무역대국이 되었으며, 2014년엔 구매력 (PPP) 국내총생산 (GDP)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1990년대부터 국방비를 연 평균 10% 이상 늘리며 군사력도 크게 증강시켜왔다. 2009년엔 미국 항공모함을 추적하여 격침시킬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중거리 지대함 (地對艦) 탄도미사일을 개발했고, 2011년엔 미국의 레이더를 피해 날아갈 수 있는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했다. 2014년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MD)을 뚫을 수 있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중국은 특히 해양 전력을 본격적으로 증강시키며 대만해협을 포함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개입을 무력화하는 작전을 세워놓고 있다. 중국과 가까운 바다에서는 미국 함대의 접근을 막고, 조금 더 먼 바다에서는 미국 함대의 작전을 방해하겠다는 내용으로, 이른바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 (反介入/区域拒止)’ 전략이다. 2013년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고, 2014년부터 남중국해 난사군도 주변에 인공섬을 건설한 이유다. 이와 아울러 시진핑 (習近平) 주석은 2013년 오바마 대통령에게 태평양이 미국과 중국 둘 다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며 같이 나눠쓰자고 제안했었다. 이른바 ‘새로운 (新型) 대국관계’를 요구하는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이다. 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맞서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강화해오기도 했다. 나아가 미국+일본+남한의 삼각공조에 맞서 중국+러시아+북한의 삼각공조를 만들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통상 문제에 더 큰 불만을 품고 있다.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연 평균 3,500억 달러 안팎이다. 한국에 대한 연 평균 250억 달러 정도의 무역적자가 크다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을 다시 협상하거나 폐기하겠다는 터에 중국에 가만있을 수 없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협정에서 탈퇴했지만, 아시아와 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잇는 중국의 ‘일대일로 (一帶一路)’ 계획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더욱 거세게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이 미국이 중국을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요구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경제제재다. 에너지 부족을 비롯한 경제난을 겪어온 북한에 중국이 원유공급 중단과 같은 강력한 제재를 가해 북한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도록 하라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거부한다. 첫째, 중국은 이른바 ‘북핵문제’가 ‘북한과 미국 사이의 모순’이라며 북한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나 전쟁 위협이 없었다면 북핵문제는 이미 해결됐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힘쓰는 것은 미국의 위협이 원인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을 통해 북핵문제를 풀어야지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제재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 못마땅해도 자신의 안보를 위해 북한에 대해 강력하게 제재하기 곤란하다. 만에 하나 중국의 원유공급 중단을 포함한 경제제재로 북한이 무너질 위기에 놓이게 되면 중국으로 유입될 난민으로 중국도 혼란을 겪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북한이 붕괴되면 중국의 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핵문제’가 ‘북한과 미국 사이의 모순’이기에 북미 양국의 동시 행동을 강조한다. 이른바 ‘쌍중단 (双暂停)’과 ‘쌍궤병행 (双軌竝行)’이다. 미국과 남한의 연합군사훈련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동시에 중단하고,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협정을 동시에 협상하라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거부한다.
중국에서는 2017년 10월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열릴 계획이다. 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집권 후반기 (2017-22년) 진용이 갖추어질 것이다. 당대회가 끝나고 정국이 안정되면 미국의 공세적 중국 정책에 더 강경하게 맞설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결국 미중관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패권경쟁에 따라 ‘강성 지도자 (strongman)’로 불리는 트럼프와 시진핑의 집권시기에는 개선되거나 호전되기 어려울 것 같다.
미중 간의 패권경쟁에서 남한의 선택
2017년 9월 현재 문재인 정부는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 및 일본과의 공조를 강화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이끌어내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가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실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확신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공조는 북한의 도발을 빌미로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것인데 어떻게 중국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물론 북한의 핵무장은 남한과 일본의 핵무장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원하거나 부추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북한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원유공급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러시아도 강력한 대북 제재에 반대한다. 문재인 정부가 다른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남한은 안보를 위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며 주한미군에 의존해왔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남한 대외정책의 목표가 되어버린 듯한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이 북한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정책을 지속하며 평화협정을 거부하는데 한미동맹에 매달리면 남북관계는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 정책을 펴는데 한미동맹을 강화하면 한중관계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이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와 통일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남한의 경제성장과 번영에 방해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2009년부터 한중교역량은 한미교역량의 두 배를 넘는 가운데 무역으로 먹고사는 남한이 중국으로부터 얻는 무역흑자는 전체 무역흑자의 90% 안팎이기 때문이다.
이런 터에 문재인 정부가 2017년 9월 싸드를 추가 배치한 것은 ‘미국의 앞잡이 (poodle)’라는 비판을 받으며 중국의 분노와 한중관계 악화를 초래해 북핵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즉각 싸드 배치로 대응한 것은 참 생뚱맞다.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사일방어망을 남한에 들여놓는 꼴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북한이 남한을 핵무기로 공격하더라도 중거리나 장거리미사일을 ‘고고도 (高高度)’로 쏘아 올릴 필요가 있을까. 북쪽 함경도 끝에서 남쪽 전라도 끝까지 기껏해야 1,200km 안팎이고, 휴전선에서 서울까지는 100km 안팎이다. 북한이 휴전선 근처에서 단거리미사일이나 장거리대포만 쏘아대도 남한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싸드가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남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남한의 보수극우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싸드가 남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다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물러섰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싸드가 미국 ‘미사일방어망 (Missle Defense, MD)’의 일환이라고 주장해왔는데, 미국 백악관 누리집 (www.whitehouse.gov)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백악관은 미사일방어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문 그대로 옮긴다.
“Missile Defense: To better protect our forces and those of our allies, we intend to field more of our most capable theater missile defense systems, including the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System and Standard Missile 3 programs, and convert additional Aegis ships to increase ballistic missile defense capabilities.”
미군과 동맹국 군대를 더 잘 지키기 위해 “싸드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System)와 SM3 (Standard Missile 3 programs)를 포함한” 가장 성능 좋은 미사일방어망을 더 배치하겠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싸드가 150km의 높은 지역을 방어한다면, SM3는 그보다 훨씬 높은 500km의 높은 지역까지 방어한다는 이지스함 (Aegis ship) 미사일 방어망인데, 싸드 배치가 이루어지면 머지않아 SM3 배치도 밀어붙이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미 그런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9월 7일 싸드 추가 배치에 이어 “SM3 등을 도입해서 다층 방어 체계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참고로 미국이 구축해오고 있는 미사일방어망은 1980년대 레이건 (Ronald Reagan) 정부가 ‘악의 제국 (Evil Empire)’ 소련을 멸망시키겠다며 ‘전략방위구상 (Strategic Defense Initiative, SDI)’ 또는 ‘우주전쟁 (Star Wars)’이란 이름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클린턴 (Bill Clinton) 정부는 소극적으로 추진했다. 2001년 부쉬 2세 (George Walker Bush) 정부가 ‘탄도미사일 요격미사일 조약 (Anti-Ballistic Missile Treaty, ABMT)’을 전격 탈퇴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해왔다. 미국과 소련이 끊임없는 핵무력 증강을 막기 위해 1972년 맺었던 ‘전략무기제한 협상 (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무효화해버린 것이다. 미국이 1958년 1월부터 남한에 핵무기를 들여놓기 위해, 1956년 6월 중립국감독위원회 감시소조를 남한에서 추방하고, 1957년 6월 정전협정 일부조항을 폐기한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상대방의 핵무기 공격에 대한 방어를 강화해놓으면 금지된 핵무기 ‘선제공격 (pre-emptive strike)’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쉬가 2002년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이라크, 리비아, 수단 등 7개 국가들에 대해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공언했던 배경이다. 2017년 1월 취임한 트럼프는 처음엔 “미사일방어망에 관심 없다”고 말했지만, 무기 ‘수출’에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싸드는 분명히 미국이 추진해온 미사일방어망의 일환이다.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싸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대와 보복을 남한은 억지라고 하는데, 싸드가 북핵 방어용이라는 남한 정부의 주장은 더 큰 억지 아니겠는가.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싸드 배치를 서두를 때 중국은 시진핑 집권 전반기가 끝나는 2017년까지 미루어달라고 부탁했다. 후반기 집권을 시작하기 전까지 업적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의 특사가 중국을 방문하자 시진핑은 추가배치만이라도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9월 싸드 추가배치를 강행했다. 시진핑 주석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나 만남조차 거부하는 이유일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지도 못하는 싸드 배치가 중국을 적으로 만들면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멀어지게 이끄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이 지금은 미국을 겨냥해도 상황에 따라 남한을 겨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한이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에 들어가고 미국의 핵무기를 빌려 배치하거나 자체 핵무기를 보유하는 길이다. 남북 간의 끊임없는 군비경쟁으로 막대한 경비를 쏟아부으며 중국의 보복을 받을 것이다. 둘째, 북미 간의 적대관계를 끊도록 이끌고 남북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북한이 핵미사일을 사용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길이다. 미국이 원치 않으면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각오해야 한다.
남한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를 위해 미국에 대해서는 언젠가 헤어질 수 있는 동맹이라는 자주적 인식과 북한에 대해서는 앞으로 반드시 껴안아야 할 동포라는 민족적 시각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이와 아울러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경쟁에서는 국익을 위한 균형외교(均衡外交)를 펼치는 게 바람직하다. 1950년대 중반부터 소련과 중국이 갈등과 분쟁을 벌이기 시작할 때 북한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국익을 추구하며 펼쳤던 ‘등거리 외교’도 배울 만하고,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시도했던 ‘동북아 균형자’ 정책도 다시 검토해볼 만하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엔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엔 친구가 되는 게 현실이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것은 국가이익 밖에 없다. 냉전시대엔 미국과 남한의 국가 목표나 이익이 같았다. 반공을 국시로 삼아 소련, 중국, 북한 등을 적대시하는 게 안보를 위하고 국익을 꾀하는 길이었다. 탈냉전시대엔 미국과 남한의 국가 목표나 이익이 달라졌다. 미국은 북한을 적으로 삼으며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서 국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은 북한과 화해하고 협력하며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고, 중국과 교류를 확대하며 경제번영을 이루는 게 국가 목표이자 이익이다. 미국이 어떠한 정책을 전개하더라도 남한은 미국을 추종해왔기에, 유럽에서는 남한을 “미국의 51번째 주 (51st state of the United States)”라고 비아냥거리고, 미국에서조차 “남한은 경멸스러운 우방 (despicable ally)이요, 북한은 존경스러운 적 (respectable enemy)”이라고 무시하지 않은가.
<이미지 통일경제포럼 블로그>
북한에 대해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미국은 각종 핵무기와 미사일로 북한을 위협해왔다. 남한에 핵우산을 제공하며 핵무기를 실은 다양한 함정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배치해놓았다. 1993-94년엔 북한을 폭격할 뻔했다. 2000년대엔 핵무기로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는 김정은의 목을 베겠다는 이른바 참수작전을 포함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남한과 합동으로 실시해왔다. 북한은 주한미군 같은 외국군대를 두고 있지 않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핵우산도 받지 않고 있다. 남한과 미국은 해마다 10번 안팎의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이지만,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끌어들여 단 한 번도 합동군사훈련을 갖지 않는다. 북한 국방비는 많이 잡아도 남한의 1/10을 넘지 못하고 미국의 1/100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래식 군비경쟁을 도저히 할 수 없기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지 않겠는가.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게 하려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위협을 먼저 중단하도록 하는 게 현실적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해야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할 게 아니라,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하도록 이끌기 위해 대화와 협상을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완전한 비핵화’가 북한만의 핵무기 완전 폐기를 뜻한다면 비현실적이다. 북한은 ‘조선반도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며 주한미군 철수 없이는 핵무기를 폐기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과정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제안한다.
제1단계로, 미국은 남한과의 합동군사훈련을 비롯해 북한에 대한 폭격 위협을 멈추고,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춘다. 북한이 제안했고 중국과 러시아도 제안했다. 미국이 거부하는 게 문제다.
제2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북한은 핵무력을 보유한 상태에서 우선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주한미군이 철수될 것을 우려하는 미국과 주한미군 철수에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가질 남한 보수층을 배려하는 과도기 조치다.
제3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한은 핵무력을 폐기한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군사력을 비슷하게 감축한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를 이루는 것이다.
글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학/평화학 교수
* 이 글은 한림대학교 / 한림성심대학교 동아시아평화연구소 주최 <동북아시아 비핵·반전 평화포럼> (2017년 9월 25-26일, 한림대학교 국제회의실) 발표 논문을 보완 수정한 것이다.
* 뉴스로 글은 원문을 축약하여 올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