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처가에 일이 생겨 지난 30일 급히 올랜도에 왔거든요. 하필 새해 첫날부터 비가 오고 갑자기 추워졌지만, 한겨울에도 낮엔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바깥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곳이죠. 1월 중순 워싱턴과 뉴욕을 거쳐 익산에 돌아가렵니다.
새해엔 더욱 건강하신 가운데 모든 일 뜻하시는 대로 잘 이루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더 민주적이고 더 공정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되어 한반도가 더 평화적이고 더 안정되기를 기대합니다. 미국의 탐욕스럽고 폭력적인 패권유지정책이 누그러져 세계 곳곳에서 갈등과 분쟁이 줄어들게 되길 소망합니다.
김정은 신년사
조선중앙TV 동영상 캡처
어제오늘 뉴스를 보니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군요. 대체로 긍정적 평가와 함께 기대가 꽤 큰 것 같습니다.
남한 땅을 벗어나면 일간지 로동신문뿐만 아니라 주간지 통일신보, 조선중앙TV, 조선중앙통신 등 평양의 다양한 언론매체에 바로 접속할 수 있기에 로동신문 1월 1일자 1면에 실린 신년사 전문을 읽어보았습니다. 참고로, 노무현 정부 때인 10년 전까지는 남한 땅에서도 누구든 인터넷으로 로동신문을 읽을 수 있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차단했는데 이젠 다시 열려야겠지요.
신년사에서 크게 세 대목을 직접 인용하고 싶습니다. 첫째, “우리 국가의 핵무력은 미국의 그 어떤 핵위협도 분쇄하고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됩니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합니다.....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나가야 합니다.”
앞에서 ‘핵무력 완성’의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뒤에서 핵무기와 미사일의 ‘대량생산’을 밝힌 것엔 조금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무모한 북침 핵전쟁 책동”과 “미국의 핵장비들과 침략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 행위들”을 그만두면, 북한도 핵무기와 미사일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할 이유가 없어질 테니 이른바 ‘쌍중단’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만 말이죠.
둘째, “북과 남 사이의 접촉과 래왕, 협력과 교류를 폭넓게 실현하여 서로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통일의 주체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원한다면 남조선의 집권여당은 물론 야당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래왕의 길을 열어놓을 것입니다.”
이 대목은 큰 기대를 갖게 합니다. “접촉과 래왕, 협력과 교류”가 “폭넓게 실현”된다면 그 자체가 ‘실질적 통일’이요 제가 주장해온 ‘21세기 통일’ 아니겠어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인 1998년부터 2007년까지 평양, 개성, 금강산 등에 10여 차례 다녀왔던 제 발길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꽁꽁 묶였었는데 새해를 맞아 머지않아 다시 풀릴 것 같군요. ‘한반도 평화’를 앞세우고 유라시아 대륙 16,000km를 뛰어서 횡단하겠다며 작년 9월부터 매일 40km 안팎을 달리고 있는 ‘60대 청년’ 강명구 선생과 함께 올 가을 북한을 종단해 남한으로 돌아오는 꿈도 이루어질 수 있겠고요.
셋째,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경기대회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피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당국’ 접촉이 확대되고 ‘민족’ 화해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정치 군사적으로 꽉 막힌 정국도 문화나 스포츠 교류를 통하면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바로 이어지는 “의의 깊은 올해에 북과 남에서 모든 일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는 덕담(德談)엔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야말로 국내외 모든 동포들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새해인사”지요.
그러나 북한은 무슨 제안을 하든 위협을 하든 대개 ‘조건’을 내겁니다. 남한에서는 그 조건을 무시하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고요. 북한이 남한과 접촉하고 왕래하며, 협력과 교류를 확대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등의 제안이나 약속은 “미국의 무모한 북침 핵전쟁 책동”과 “미국의 핵장비들과 침략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 행위들”이 중단되는 조건 아래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미국의 방해와 남한 극우수구의 딴죽을 경계하며 막아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막힌 공존: 개혁개방을 통한 빈부격차
지난 12월 만난 젊은 탈북자 2명을 통해 ‘기막힌 공존’의 현실을 직접 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강연하다보니 다양한 사람들과 재미있는 인연을 많이 맺게 되는데, 한 강연을 통해서는 아주 부유한 탈북자를 만났고, 다른 강연을 통해서는 몹시 가난한 탈북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12월 8일 만난 탈북자는, 지난 소식지에서 소개했듯, ‘돈주’라 불리는 벼락부자 집안에서 자라 중국에 유학 갔다가 남한 사회를 동경해 서울로 왔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부유한 부모가 보내주는 돈을 받으며 생활해왔지요. 이젠 대학을 마치고 해외 유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2월 23일 만난 탈북자는 너무 열악한 집안에서 자라 중국에 팔려갔다가 도망나와 브로커에 의해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장학금을 모으고 생활비를 아껴 해마다 북한의 가난한 부모에게 100만원씩 보내주고 있습니다. 이 젊은 여인은 1990년대 초 태어나 극심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소학교에 들어갔는데 1년도 다니지 못했답니다. 북한에서 1970년대부터 유치원 1년, 인민학교 (소학교) 4년, (고등)중학교 6년의 11년 의무 무상교육을 실시해온 터에 소학교만 겨우 몇 달 다녔다니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했는지 짐작이 가죠. 18세에 생활비도 제대로 받지 못할 직장에 배치되는 것보다 중국에 들어가 돈을 벌겠다고 두만강을 건넜는데 ‘인신매매’에 걸려들어, 10여살 위의 한족 농촌청년의 신부가 되어 아들까지 낳았답니다. 열아홉 살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아들까지 버리고 도망쳐 ‘탈북브로커’를 만나 남한으로 오게 됐고요. 우선 공부하고 싶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검정고시로 마치고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앞의 탈북자들 신상이 밝혀질까봐 자세히 소개하지 않았습니다만, 두 젊은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난 시기와 장소가 비슷합니다. 그러나 집안의 경제적 환경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큽니다. 북한에서도 2000년대부터 심각한 빈부격차(貧富隔差)가 생기고 있는 거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빈부격차가 당연한 폐단이지만, ‘사회적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빈부격차는 참 어이없는 일인데 말입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병폐(病弊)를 고치기 위해 나온 것이니까요. 사회주의 체제가 ‘시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경제성장을 꾀하기 어려울텐데, 소련이나 동유럽 나라들처럼 급속도로 개혁개방을 하면 체제붕괴를 불러오기 쉽고, 중국이나 베트남 같이 서서히 하더라도 빈부격차라는 병폐를 피하기 어려우니, 요즘 남한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다는 북한의 앞날이 어찌될지 궁금합니다.
혹시 앞에 소개한 어려운 환경의 탈북 여대생을 돕고 싶으면 후원금을 다음 계좌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한반도 평화’를 앞세우고 유라시아 대륙을 뛰어서 횡단하고 있는 ‘60대 청년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 선생 후원금도 이 계좌로 받고 있으니 성함과 함께 ‘탈북’이나 ‘마라톤’을 밝혀주시겠어요? 전북은행 102101-1778059 (이재봉/남이랑북이랑).
감사하며 이재봉 드림.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남이랑북이랑 통일운동> 공동대표,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함석헌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