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은 남북 역사상 최초로 정상회담이 열렸던 날입니다. 머지않아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찾아올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16년이 지난 지금의 남북관계는 오히려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화해와 협력은커녕 적대감만 키우고 있는 거죠. 대통령 잘못 뽑아놓은 폐해(弊害)가 이렇게 크네요. 아프리카까지 가서 북한을 비난하며 고립시키려고 하는데, 북한이 이에 굴복해 핵무기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붕괴될까요? 친북이나 반북을 떠나 객관적으로 또는 차분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북한은 6.25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종전/평화협정을 맺자고 줄기차게 요구하는데, 미국과 남한은 어정쩡한 정전/휴전협정을 고수해야 한다며 한사코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한엔 미군 수만 명이 있는 가운데 남한과 미국은 해마다 수 차례 대규모로 합동군사훈련을 하지만, 북한엔 외국군대가 전혀 없고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 등 어느 나라와도 합동군사훈련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남한엔 1950년대부터 미국의 핵무기가 많이 배치되어 있었고 지금까지 미국의 핵우산을 받고 있지만, 북한엔 외제 핵무기가 전혀 없었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핵우산을 받은 적도 전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또는 ‘먼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요? 북한이 대화하자고 아무리 제안해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대화조차 하지 않겠다는 건 그야말로 억지와 오기지요.
이런 가운데 저는 요즘 6.15경기본부 등의 초청으로 경기도 지역을 돌아다니며 강연으로 통일운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8일엔 오산 한신대에서, 어제 14일엔 의정부에서, 내일 16일엔 서울과 용인에서, 19일 일요일엔 남원에서 ..... 지난 일요일 12일엔 전주에서 열린 6.15기념 마라톤대회에 참석해 학생.청년들과 함께 달리기도 했고요.
지난 5월 초 평양에서 36년 만에 열렸다는 조선로동당대회에 대해 대부분의 남한 언론과 이른바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 평가를 내놓았지만, 저는 그 대회를 통해 김정은의 통치체제가 정상화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말 제가 고문으로 있는 익산참여연대에서 발행하는 <참여와 자치> 6월호에 글을 실었는데 아래에 덧붙입니다.
북한 통치체제의 정상화
지난 5월 조선로동당 대회가 열렸다. 무려 36만에 열리는 당 대회라 주목을 많이 받았다. 그에 대해 평가하거나 분석하는 각종 학술 발표회나 토론회가 한 달이 훨씬 지나도록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내용이 별로 없다는 부정적 평가가 많은 듯하다. 나는 이번 당 대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김정은의 직함 변경을 꼽고 싶다.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이라는 감투를 통해 그의 권력이 안정되고 북한의 통치제제가 정상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조선로동당이 전 사회를 이끌어가는 ‘1당독재’ 국가다. 참고로, 남한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다양한 계급계층의 권리와 이익을 추구하고 대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정당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북한처럼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노동자 중심의 획일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추구하고 대변하기 위한 정당만 있으면 된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가들은 타도의 대상이기에 그들을 위한 정당은 있을 필요도 없고 생길 수도 없는 것이다. 1당독재를 남한은 비판하고 비난하지만 북한은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논리다.
또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에서는 당이 국가보다 우위에 있으며 더 크고 많은 권력을 행사한다. 공산주의는 궁극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전 세계 모든 인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자는 이론이기에, 국가는 잠정적인 조직으로 간주되고 당은 영원한 기구로 남게 되는 것이다. 북한이 헌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러한 논리와 배경으로 북한의 제1대 지도자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이시며,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고 불렸다. 당 직함을 국가 직함보다 앞에 내세웠던 것이다. 참고로 남한에서는 ‘비서’가 높은 사람을 보좌하는 아랫사람이지만, 북한에서는 당을 이끌어가는 권력자다. 중국공산당 고위지도자들이 ‘서기 (書記)’라 불리고, 미국 장관들이 ‘비서 (secretary)’로 불리는 것과도 비교해보기 바란다.
그런데 1994년 김일성이 죽자, 후계자 김정일은 1997년 ‘조선로동당 총비서’가 되었다. 3년 동안 최고 통치자 자리가 채워지지 않자 당시 남한의 정보통이나 전문가들은 평양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거나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못해서 그렇다는 분석을 쏟아냈다. 북한이 붕괴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북한은 나중에 3년상을 치르느라고 그랬노라고 밝혔다. 그리고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이 아니라 ‘국방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나라를 통치했다. 남한의 대통령 같은 ‘주석’이라는 직함은 죽은 아버지 김일성에게 영원히 바친다고 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선군(先軍) 정치를 내세웠다. 나라 안에서는 김일성이 죽고 총체적 경제난이 닥치는 가운데 밖에서는 사회주의국가들이 무너지고 미국이 봉쇄와 제재를 강화하자,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군대를 앞세운 것이다. 평상시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당이 국가를 이끌더라도, 비상시엔 투쟁정신이 더 투철하고 강력한 군대가 앞장서야 한다는 논리였다.
2011년 김정일이 죽은 뒤, 후계자 김정은은 2012년 당에서는 ‘제1비서’가 되고 국가에서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당의 ‘총비서’라는 최고 직함과 국가의 최고 직책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죽은 아버지 김정일에게 영원히 바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죽은 할아버지를 국가의 ‘영원한 주석’으로 만들었고, 아들은 죽은 아버지를 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만들었으니, 북한의 통치체제는 이토록 비정상적이었던 것이다.
이런 터에 지난 5월 당 대회를 통해 김정은이 조선로동당의 ‘제1비서’라는 어정쩡한 자리에서 벗어나 ‘당 위원장’이라는 명실상부한 최고 직위에 오른 것이다. 조선로동당 비서국을 폐지해버렸으니 ‘총비서’나 ‘제1비서’라는 직책도 사라졌고, 김정은이 누구의 ‘비서’냐는 무식한 질문이 나올 여지도 없어졌다. 아마 머지않아 국가 차원에서도 어정쩡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자리를 털고 정상적인 최고 직위를 맡게 될 것이다. 김정은의 권력과 북한의 통치제제가 안정적이고 정상적으로 자리 잡아간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가 불안정하고 곧 붕괴될 것이라며 대화를 거부하고 밀어붙이기만 하는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이 참 딱하다. 아프리카까지 찾아다니며 북한을 제재하며 봉쇄하려고 애쓰는데,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미국과 일본도 북한과 대화하려는 조짐이 보이는 터라, 남한이 오히려 고립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요한 갈퉁 교수와 통일부장관
평화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제 은사 요한 갈퉁 교수가 지난 5월 25일 ‘제주포럼’ 초청으로 한국에 왔는데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는군요. 제주에 이틀 머무르는 동안 10번 정도 다양한 인터뷰를 가졌는데, 홍용표 통일부장관도 인터뷰를 요청해 응했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자 출신으로 몇 가지 물어보는 게 진지하더랍니다. 그런데 그가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는 북한에 대해 너무 적대적 의견을 표출해 통일부장관이란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냐 싶어 반대와 항의의 뜻으로 강연 도중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와버렸답니다. 주최측으로부터 이 얘기를 들으면서 “86세 노인이지만 참 평화학자/평화운동가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27-28일엔 광주에서 세 번, 30일엔 서울에서 두 번, 저와 함께 대담하거나 강연했는데, 30일 함석헌학회 초청 강연 내용에 관해서는 아래의 신문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교수 “한반도 문제는 북미 간 갈등의 문제” 한국NGO신문 / 2016.06.02.
http://www.ngo-news.co.kr/sub_read.html?uid=85891
28일 광주에서 열린 ‘행동하는양심 광주전남협의회’ 초청 대담 내용은 곧 발간될 월간지 <아시아문화> 7월호가 출판되면 소개하겠습니다.
감사하며 이재봉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