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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의 美교직인생스토리
70년대초 열한살에 이민온 시애틀의 한국인은 단 몇가족뿐. 미국문화속에서 미국인처럼 자라다 대학생이 되어 방문한 한국은 정체성을 자각한 계기가 되었다. 1.5세와 2세들을 위해 교육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뉴욕 카도조고에서 1986년 교직의 길을 시작했다. 탁월한 행정력을 높이 산 교육감의 권유로 교장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10년간 치열한 도전끝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정(Glass Ceiling)’을 뚫고 2005년 아시안 최초로 뉴욕주 공립고교 교장으로 발탁됐다. 뉴욕주 웨스트 체스터의 명문 답스페리 하이스쿨 교장으로 6년째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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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과 학생이 농구한다구요? Hoops with Students

글쓴이 : 이기동 날짜 : 2010-11-12 (금) 11:44:01

며칠 전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농구경기가 있었다. 농구시즌을 앞두고 매년 열리는 이벤트로 선수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한 행사다.

나도 해마다 뛰면서 투혼(鬪魂)을 발동하지만 팔팔한 학생들과 경기하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경기가 끝난 후 학생들에게 “너희들과 경기하기에는 너무 힘이 부친다”고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학교는 이날 지역 소방관들과 경찰관들도 초대해 경기를 갖는데, 그들 역시 단순히 친선경기의 차원을 넘어 강한 승부욕(勝負欲)에 집착하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역시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학생과 교직원간의 맞대결이었다.

경기를 하는 날은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기금 마련을 돕기 위해 체육관을 찾아 열렬히 응원을 한다. 이렇게 많이 오는 것이 어쩌면 교장과 선생님들이 힘이 넘치는 10대들과의 경기에서 얼마나 형편없이 깨지는지 보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내가 농구를 한 것은 30년전 대학동창들과의 경기가 마지막이었다. 운동화를 신고 어설픈 동작으로 농구를 하는 척(?) 하는 교장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지 상상해보라.

올해로 네 번째 열리는 이 친선경기에서 교직원들은 한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처음으로 우리가 승리한 것이다. 내가 공을 잡을 때마다 “Mr. Yi” 를 외치며 응원해주는 학생들… 비록 나는 한 골도 넣지 못했지만 동료들이 극적인 결승골을 넣은 덕분에 환호(歡呼)하며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다.

몸은 가누기 힘들 정도로 피곤했지만 학생들의 스포츠 활동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 행사는 아마도 학생들에게 고교시절의 좋은 경험과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행사를 통해 얻는 보람은 내가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 동기 중의 하나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머리 속으로 지난 시절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갔다. 교직의 길에 처음 발을 내디딘 것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24년이 흘렀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학창시절 대부분의 한국 친구들은 의대에 진학하든가, 공학도 혹은 자기 사업을 운영하는 길을 택했다. 내가 선생이란 직업을 택한 것은 과연 운명이었을까….

80 년대 중반까지만해도 뉴욕시에 근무하는 한국인 교사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그나마 대부분은 한국에서 갓 도착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ESL 교사들이었다. 내가 처음 교사로 부임(赴任)한 곳은 퀸즈(Queens) 베이사이드(Bayside)의 명문 카도조(Cardozo) 고등학교. 당시 한인으로는 최초로 9, 10학년을 가르치는 생물교사였다.

뉴욕시에서는 처음 교사가 되고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절반이 넘었다. 나 또한 처음 1년이 굉장히 힘들었지만 결국 살아 남았다! 24년이 지난 지금,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매우 기쁘고 감사하다. 교직처럼 보람이 많은 일도 흔치 않은 덕분이다.

 

Hoops with Students

A few days ago, I participated in a Faculty vs. Student basketball tournament to raise money for our student athletes at my school. The first thing I told the students after the game was, “I am getting too old for this!” Every year, we also invite the local fire department and police department to join us in a friendly game of basketball.

Although it is only for the annual bragging rights, both the police officers and firemen get excited and sometimes very serious about winning. The highlight of the night is the game between the students and teachers.

The parents and students come and support the fundraiser to raise money for the school’s basketball program. Actually there is another reason why they come-to see the principal and teachers make fools of themselves by trying to compete with bunch of talented teenagers. For me, it has been almost thirty years since I last played basketball with my college buddies, so you can imagine how embarrassing it is for me to put on those sneakers and try, or better yet, pretend to play basketball.

This was our fourth year organizing this event and the faculty has never won, but this year it was different- we actually won! Every time I touched the ball, there were students who were chanting Mr. Yi, Mr. Yi, Mr. Yi….. Although I didn’t contribute any points, I was there cheering on my fellow educators as they miraculously scored more points than the students.

It was a tiring but great evening as we raised money for our school so that students can benefit from all the extra-curricular activities we have to offer and fully enjoy the high school experience. An evening such as this is why I became an educator twenty four years ago.

As I was driving home from the basketball tournament, I started to reminisce about my career as an educator. It’s hard to believe that it has been twenty four years since I first stepped foot into a school. Most of my Korean friends chose a career path like going to medical school, engineering, or running a family business. However, for me, call it fate or destiny I became a teacher.

There were only a small number of Korean teachers in New York City in the mid 1980s. Most of them were ESL teachers who were teaching English to recently arrived students from Korea. I became the first non-ESL Korean teacher at Cardozo High School in Bayside, Queens and I taught Biology to 9th and 10th graders.

People say that more than fifty percent of all NYC teachers quit after the first year. Although it was a very challenging first year, I survived! Now, after twenty four years, I am glad and thankful that I have chosen a rewarding career as a te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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