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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폴란드는 2차대전 초기 한달도 안돼 망해버렸나?

글쓴이 : 김태환 날짜 : 2021-08-17 (화) 08:46:40


2차 세계대전 발발(勃發)을 유럽에서는 19399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본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Layman)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폴란드에 대한 독일의 침공의 경우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선전포고(宣傳布告)하고 지켜줄 것으로 믿었고, 실제로 개전 3일후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러나, 폴란드를 위해 그이상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같은 달(9) 17일에 폴란드 동쪽으로부터 소련이 독일과의 사전 조율에 따라 동부 지역을 분할 점령하였고 결국 폴란드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필자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외교학)을 공부한 관계로 외교사에 흥미를 느꼈고 이와 관련된 리서치를 많이 했다. 폴란드가 단 한달만에 사라진 이유는 스스로 국력을 과대평가(過大評價)하고 타국의 침공에서 어떻게 방위할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쥬데텐란트에 독일사람이 많이 산다는 이유로 뮌헨 협정을 통해 그 땅을 강점하고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체코를 분리 흡수하고 슬로바키아를 괴뢰국(傀儡國)으로 삼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이 인접한 폴란드에 야욕을 드러낼 것으로 우려하여 폴란드 방어책을 강구하였다. 이때 영불은 소련에게 힘을 합쳐 폴란드 방어 동맹에 참가하도록 권고하였다. 소련은 폴란드에 소련군의 진주할 권리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폴란드는 이 요구를 거절하였다.

 

당시 상황을 볼 때 독일이 침공할 경우, 실질적으로 폴란드를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나라는 소련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소련군 진입을 거부한 것은 폴란드가 영국과 프랑스의 공허한 방위조약을 믿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 때 영불은 폴란드에 소련군 진주를 허용하도록 강권했어야 하지만 움직이지 않아 결국 소련의 스탈린은 자구책으로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게 된다.

 

히틀러는 외상 리벤트르프를 모스크바에 보내서 소련의 몰로토프 외상과 불가침조약(不可侵條約)에 조인 했는데, 이를 리벤트르프-몰로토프 조약이라고도 부른다. 이 부분은 역사에 나오지만 영-폴란드와 소련간의 소련군 진주 논의 문제는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이처럼 중대한 국제간 협상 내용은 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서만 밝혀진다.

 

이 조약(독소 불가침 조약)에서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폴란드의 동부 국경을 커슨 라인(Curzon Line)을 따르기로 했는데, 커슨은 전 영국 외상으로 폴란드와 소련간의 합리적 국경선으로 인정한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폴란드가 다시 탄생하는데, 동부 국경은 커슨 라인으로 확정하고, (동부 지역을 소련에 양도) 이에 대한 보상책으로 서부 국경은 전에 독일 땅이었던 오데르 나이제 선까지 확장 되었으며, 이와 같은 경계선 확정은 제2차 대전 3대 동맹국인 미국 영국 소련간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새로운 폴란드 경계내에 있던 모든 독일인들은 더 서쪽의 쪼그라든 독일영토로 추방되었다. 이는 후일 독일이 다시 강성해져서 뮌헨 협정 때처럼 폴란드내에 자국민이 살고 있는 지역을 내놓으라는 주장을 할 불씨를 제거한 것으로 해석된다.

 

2차 대전이 끝난지 76년이 지났으나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국경 분쟁 없이 두 나라가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

 

필자가 폴란드의 예를 든 것은 한국민들이 한미 방위 조약을 너무 찰떡같이 믿고 있는 것이 우스워서 한마디 하는 것이다.

 

6.25 사변이 나자 당시에 대한민국과 미합중국(U.S.A.) 사이에 방위 조약도 없었지만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미군을 한국에 투입했다. 그 이유는 미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서 파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한미 방위조약을 체결 했는데, 이를 두고 한국민들은 이 박사의 최대 업적으로 두고두고 칭송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한미 방위조약의 최대 피해자는 조약 체결의 결정적 공로자인 이 박사였다.

 

4.19 학생의거로 정권이 뒤집힐 듯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를 건지려고 계엄령을 내리고 서울 시내로 계엄군이 진주했다. 이 박사는 그 계엄군이 자신이 부릴 수 있는 군대인 줄 알았으나, 아뿔사, 이 군대는 미군 사령관의 허가가 없이는 총 한발 쏘지 못했다.

 

서울에 들어 온 계엄군은 미군 지휘하에 있었고 미국은 이 박사 하야를 밀어 붙였다. 그가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자 전지 휴가라는 미명으로 사실상 미국으로 납치해 갔다. (1) 그가 타고간 비행기는 하와이 교포들이 성금을 모아 보낸 전세기가 아니라 CIA가 운용하는 간판회사인 CAT사 소속 비행기였다. 당시 이 박사는 눈치를 채지 못했으나, 프란체스카 여사는 낌새를 차리고 조종사에게 귀중품을 (뇌물로) 주었으나 거부당했다 한다.

 

이에 앞서 한국전 휴전을 달성시킨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항상 북진 통일을 입에 달고 사는 이 박사가 행여 북침을 감행할까봐 한국군의 동태를 철저히 감시하고, 전쟁 (북침) 낌새만 보여도 그(이승만 대통령)를 체포하고, 한미 조약을 폐기하며,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기록이 1959625일 열린 NSC 회의록에 나온다. (2)

 

부록

1: 정부는 CAT 정체를 안밝히나?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kth&wr_id=40&page=3

이승만 망명 아니다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kth&wr_id=25&page=3

 

2: 한미방위조약은 미국 맘대로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kth&wr_id=68&page=1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환의 한국현대사 비화

 

http://m.newsroh.com/bbs/board.php?bo_table=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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