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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포로 석방은 이승만의 영웅적 쾌거가 아니라 최악의 수였다. 우리 장병 3만명이 희생된 금성천 전투의 비밀. 인천상륙작전은 알아도 평안도 참패는 모른다. 이승만 자진하야의 꼼수. 하와이 망명을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 우리가 알아야 할 한국전쟁과 이승만의 현대사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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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문서 ‘에버레디작전’

글쓴이 : 김태환 날짜 : 2016-08-26 (금) 07:28:31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인으로 알려져 군신(?)으로 까지 추앙(推仰)되는 백선엽 장군이 한국 전쟁중에 미국이 원하는대로 이승만대통령이 움직이지 않을 때 제거하려는 작전(Everready Operation)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다는 기사가 발굴(發掘)되었다.

 

이 기사는 스탠포드 대학교 역사학 과의 바턴 번스틴(Barton J. Bernstein) 교수가 아시아 문제 연구 학자들의 계간잡지 ‘BULLETIN of Concerned Asian Scholars’의 1978년 1~ 3월호에 ‘이승만: 쫄짜가 말처럼 날뛰다 한국전 종전으로 가는 험로(Syngman Rhee: Pawn as Rook The struggle to End the Korean War)’ 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휴전회담이 막바지에 들어가는 형국에서 미국은 휴전을 반대하기 위해 여러 구실을 늘어 놓는 이박사를 구슬리는 방법을 놓고 1953년 5월 29일 미국 국방부 건물(팬타곤)에서 합참과 국무부 고위 간부들이 협의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 로턴 콜린스 대장은 한국군 참모총장 백선엽 장군이 자신에게 에버레디 작전을 “암묵적으로”(tacitly) 지지할 용의가 있음을 표시했다면서 그를 활용하는 것이 이 박사의 휴전 거부를 잠재우는 한가지 방도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아무도 콜린스 대장의 의견에 반대입장을 내세우는 사람이 없었다 한다.

 

더 나아가, 콜린스 대장은 당시 업무 관계로 워싱턴에 출장중인 백선엽 장군을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면담할 수 있도록 추진했으나 국무부의 반대로 무산(霧散)됐다. 비공개 면담을 하더라도 비밀 유지가 어렵고, 이박사가 알게 되면 더욱 꼬일 수 있다고 생각한 인사들이 만류한 것이다.

 

음모 연루 배경

 

조국에서 60 여년 전 일어난 한국 전쟁으로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고, 부상을 당하고 재산상 피해를 입었지만, 전쟁 덕분에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들 또한 적지 않았다. 백선엽 장군은 당시 정식 장교 훈련을 받은 몇 안되는 고위 지휘관에 속해, 많은 전공(戰功)을 세운 것도 있지만, 특히 미군 장성들과 이승만 대통령의 눈에 띄어서 초고속 승진으로 대장까지 오르고 최연소 육군 참모 총장에 임명 되었다.

 

이 박사의 총애를 받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위에까지 올라간 그가 어찌하여 미군부가 이 박사 제거를 목적으로 작성한 작전인 “에버레디(Everready)”에 연루되었는지 살펴보자.

 

1953년 5월은 한국 전쟁을 종식시켜려는 휴전 협상의 마지막 고비였는데, 사실상 전쟁을 주도해온 미국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취임(1953년 1월)한 뒤에 쏘련의 수상 스탈린이 사망(1953년 3월)하자 한국전 종전의 공약을 성취하기위해 휴전 교섭에 박차(拍車)를 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승만 박사가 휴전이 성립되면 자신의 주도로 통일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온갖 구실을 붙여서 휴전 교섭을 지연(遲延) 또는 전복(顚覆)시키려 하였기 때문에 미국측은 의도대로 따라가지 않는 이승만 박사를 필요한 시점에, 쿠테타를 일으켜 (미군이 직접 또는 친미적 장성을 통해서) 이박사 연금, 계엄령 실시, 임시 군정을 실시하려 하였으며, 경우에 따라 시해(弑害)까지 묵인하려했다.

 

당시 미8군 사령관 테일러 장군이 에버레디 계획을 수정 작성하고 (이 작전은 1952년 부산 정치 파동 때에도 이미 작성돼 있었다.) 그 무렵 한국 육군 참모총장이던 백선엽 장군과의 교감 가능성에 대해, 테일러 장군의 상관인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은 주로 동경에 주재하는데도, 합참에 올린 보고서에서 백선엽 장군이 이 작전에 호의를 보인다고 언급했다.

 

클라크 장군의 보고를 근거로 미 육군 참모총장 콜린스 대장은 1953년 5월 29일 국방부 (펜타곤)에서 열린 국무부, 합참, CIA의 연석회의에서 골치 썩히는 이승만 박사 문제는 백선엽 장군을 활용해서 처리할 수 있다고 그의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비록 암묵적(暗黙的)이라 하더라도 백선엽 장군이 음모에 가담하려 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군인으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으니, 고려 때 무신 정치가 생각났는지 모를 일이다. 이 박사도 미국의 후원으로 대통령이 되었는데, 미군 장성들의 든든한 후원으로 쿠테타 정권의 수반이 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당시 기사 자료는 당시 회의 참석자들인 장,차관의 회의 기록에서 인용한 것이어서, 없었던 일을 콜린스 대장이 함부로 얘기했을 수가 없다. 올해 96세이신 백장군은 연로하시지만 이 기사 내용에 대한 명백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의 내용은 ‘뉴스로’의 편집정책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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