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독소조항부터 없애자
교보문고가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판매를 중단했다고 한다. 이는 대법원이 이적표현물로 판단한 책을 구매한 독자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고객 보호 차원에서 취한 부득이한 조치로 보인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추후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판단이 내려지면 신규 주문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 주석의 출생부터 해방 전 파란만장한 항일무장투쟁 기간(1912년 4월~1945년 8월)을 다룬 ‘세기와 더불어’는 도서출판 민족사랑방이 조선노동당출판사에 의해 출간된 원전을 그대로 옮겨 8권 세트로 지난 1일 출간했다.
출간 후 보수 성향 시민단체가 판매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사상과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법원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시대의 흐름에 아둔한 한국 사법부를 신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가보안법이다. 1948년 12월 제정된 국보법은 일제강점기 불령선인(不逞鮮人)의 다른 이름인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던 치안유지법을 이름만 바꾸고 베껴 만든 악법으로 해방 후엔 주로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 인사와 통일운동가들을 핍박(逼迫)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다.
인혁당 사건과 수많은 간첩단 조작 사건 등에서 보았듯 국보법 남용으로 인한 한국민의 심각한 인권 침해를 우려한 미 국무부와 국제앰네스티 및 유엔 인권이사회 등은 점진적인 국보법 폐지를 정부에 공식 권고했고, 2004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기관으로서는 최초로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같은 폐지 목소리는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역대 한국 정부에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심지어 촛불정부라는 문재인 정부도 폐지는 언감생심이고 일부 개정조차 입도 벙긋 못하고 있다. 집권 이후 지난 4년 간 적폐 청산에 매달렸으면서도 정작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을 훼손(毁損)하고 유린해 온 분단 적폐의 상징인 국보법은 손 댈 엄두도 못 내고 허송세월하지 않았던가.
백번을 양보해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국보법은 응당 폐지돼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폐지가 어렵다면 제7조(찬양 고무) 독소 조항의 개정만이라도 기대할 수는 정녕 없는 것일까. 180석에 가까운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폐지든 개정이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지만 기대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다. 무늬만 진보일 뿐 민주당도 국민의힘(구 자유한국당)과 한통속인 똑같이 부패한 분단 기득권 보수 정당인데 뭘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김일성 회고록 발간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남한 사람들이 김일성 회고록을 읽어선 안 되는 말 못할 이유라도 있는가.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으로 대북 매파인 하태경 의원조차도 “북한 관련 정보를 모두 통제해야 한다는 건 국민을 유아 취급하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책 하나 맘놓고 못 보게 하다니 이는 ‘분서갱유’에 다름 아니다. 창피하지도 않은가.
해방 후 친미 반공으로 변신한 일제에 부역한 남한의 민족 반역자들이 삭풍이 몰아치는 만주 벌판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항일무장투쟁으로 청춘을 바친 절세의 애국자를 ‘가짜 김일성 장군’이라고 왜곡 선전하고, 1937년 6월 보천보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일제의 학정으로 절망에 빠져 신음하던 조선 민중에게 독립의 희망을 안겨준 그를 교과서에서 지운다고 그의 역사적 실존 자체가 부정되거나 피어린 항일무장투쟁사에 남긴 그의 찬연한 족적(足跡)이 소멸될 수는 없다.
김일성 회고록 논란을 계기로 부디 국회에서 시대착오적인 국보법의 폐지까진 몰라도 앞서 언급한 일부 독소 조항의 개정만큼은 꼭 이뤄지길 바란다. 여야 정파와 당리당략을 떠나 한국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권 신장을 위해 반드시 그리 해야 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중산의 LA 별곡’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k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