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코너 성격과는 무관한 글을 올립니다. 지난주 맨해튼 소호에서 길을 지나다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한 아파트 앞에 누군가를 추모하는 꽃과 촛불들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애도하는 사람들을 취재하는 방송카메라들도 여럿 있었지요. 대체 누구길래 많은 이들이 추모하고 방송기자들까지 나왔을까 하고 살펴보니...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였거든요. 얼마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팝가수 말입니다. 그가 이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영국 출신의 데이비드 보위가 언제부터 이곳에서 살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제가 사는 근처에 그의 흔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습니다. 보위의 명성은 저처럼 젊은 사람들에게도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잘 알려진대로 1969년 불가사의(不可思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노래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로 큰 명성을 얻은 보위는 1970년대 ‘글램록’을 창시한 주인공입니다. 1972년 ‘지기 스타더스트(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앨범을 발표한 그는 ‘스파이더스 프롬 마스(Spiders From Mars)’ 밴드를 이끌고 기괴한 화장과 복장으로 무대에 섰습니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발표된 앨범은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됐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불과 이틀 뒤 그의 타계 소식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가고 결국 유작(遺作) 앨범만 남았습니다.
제 룸메이트 콜럼비아 대학교 축구 코치 암판(44 Amphone)은 데이비드 보위는 몇 안되는 천재 아티스트였고, 진정한 음악가라며 갑작스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라오스 출신인 암판 형은 어렸을 때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80년대 초였는데 처음에 이민와서 영어도 못했지만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너바나(Nirvana) 라는 그룹이 ‘The man who sold the world’ 라는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했다는군요. 저도 그의 음악들을 유투브에서 들어봤는데 몇몇은 제가 아는 음악이구요. 정말 그당시에 파격적인 의상과 노래들 특히 가사들이 아주 마음 깊숙한 곳에서 적시는 듯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음악계의 큰 별이 졌다는게 아쉽습니다.
Rest in Peace David Bowie!!!
데이비드 보위에 관한 위키피디아 자료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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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카멜레온' 보위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인 데이비드 보위는 ‘NME’ 매거진이 2000년에 뮤지션을 대상으로 한 앙케이트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에 뽑혔다.
2000년에는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 수훈자, 2003년에는 Knight Bachelor(기사작위) 서임자 명단에 올랐으나 두 번 다 고사했다.
그는 1947년 1월 8일, 런던 남부 브릭스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데이빗 로버트 존스(David Robert Jones)이다. 어렸을 때, 친구와 싸우다 잘못 맞아 왼쪽눈의 시력을 거의 잃어버렸다(왼쪽 동공이 열려있는 상태가 되어, 이후, 양눈의 색이 각각 달라 보이게 된다).
1964년 6월 5일에 "데이비 존스 앤 더 킹 비즈" Davie Jones and the King Bees" 란 이름으로 싱글 ‘리자 제인’을 발표해, 음악활동을 개시한다. 한동안 히트를 치지는 못했고, "더 매니시 보이즈 The Manish Boys" "데이비 존스 앤 더 로어 서드 Davy Jones and the Lower Third" 등으로 이름을 바꾸다가 1966년 4월 싱글 ‘Do Anything You Say’ 부터 "데이빗 보위 David Bowie" 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1967년 6월, 데뷔 앨범 ‘David Bowie’를 발표했는데 앨범 제작중에 티베트 불교에 심취해서 티베트난민구제활동을 하는 티베트 소사이어티에 참가한다. 같은 해 9월에 단편영화 ‘이미지’(The Image) 촬영중에 린제이 켐프와 만난다. 1968년 1월부터 3월까지 린제이 켐프의 극단에서 생활하면서, 판토마임 실력을 쌓았다.
1969년, 전년도에 공개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를 모티브로 해서 앨범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를 기획,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맞춰서 착륙직전에 싱글 발매했다. 영국 차트 5위, 전미 차트 15위까지 올라 인기 뮤지션으로 꼽히기 시작한다.
1970년, 믹 론슨과 의기투합해 "세계를 판 남자 The Man Who Sold The World" 를 발매. 가사에 철학, 미학적 요소를 다분히 포함시켰고 1971년의 앨범 "헝키 도리 Hunky Dory" 에서 더욱 깊어져 사운드에도 철학, 미학적 요소를 집어넣어 보위는 카운터 컬처의 기수로서 지위를 확립시킨다.
1972년, 앨범 "지기 스타더스트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를 발매하며 가공의 록스타 "지기 스타더스트 Ziggy Stardust" 로 자칭하고 백 밴드인 "스파이더스 프롬 마스 Spiders From Mars"를 이끌고, 전 세계를 무대로 1년반정도 긴 투어를 시작한다. 초기는 앨범의 설정을 따른 것이었으나, 서서히 기발한 의상, 기발한 메이크업으로 변모해 갔다. 미국 투어 중에 녹음된 "알라딘 세인 Aladdin Sane" 은 가공의 록스타 지기 스타더스트를 연기하는 보위가 아니라 가공의 록스타 "지기 스타더스트" 자체의 앨범이 되었다. 1973년 7월 3일의 영국에서의 최종공연을 최후로, 보위는 이 가공의 록스타 지기 스타더스트를 영원히 매장했다. 이를 통해 보위는 글램 록의 대표적인 뮤지션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지기 스타더스트" 를 연기하는 것을 그만두고, 얼마간의 휴식을 취한 그는 어린시절 즐겨 들었던 악곡을 중심으로 구성한 커버 앨범 "핀-업스 Pin-Ups" 를 발표함으로써 지기 스타더스트 시대의 유일한 유산인 백 밴드 "스파이더즈 프롬 마스를 해산시켜 절친한 친구 믹 론슨과도 헤어지게 된다.
1974년, 그러한 상황중에 심기일전해 원점으로 복귀해서 앨범을 제작하게 되었다. 작사중에 윌리엄 버로우즈를 유명하게 한 "컷 업" 의 수법을 도입한 콘셉트 앨범 "다이아몬드 독스 Diamond Dogs"를 발표한다. 조지 오웰의 SF소설 "1984년" 을 모티브로 만든 앨범이었는데 오웰의 유족으로부터 정식 허가는 받지 못하고 조건부 계약을 하게 된다. 1974년 6월에 시작한 북미 투어로는 록 사상 공전의 거대 무대 세트를 도입해서, 큰 호응을 얻었지만 계속되는 기자재의 말썽, 보위의 컨디션 불량으로 2개월 정도로 투어는 중단된다. 그 사이에 보위는 필라델피아 소울에 심취하게 되어 6주간 중단후에 재개된 북미 투어는 완전히 무시하게 된다.
1975년, 카를로스 아로마를 파트너로 받아들여 "영 어메리칸즈 Young Americans" 를 발표한다. 전미 1위를 획득한 존 레논과의 합작 싱글 "페임 Fame" 을 포함한 이 앨범은, 필라델피아 소울에서 더욱 파고들어서 "백인은 얼마나 흑인음악인 소울에 근접할 수 있을까" 라는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이 앨범 직후, 첫 주연영화 "지구에 떨어진 남자 The Man Who Fell to Earth" 의 촬영을 시작한다.
1976년 스스로 주연영화의 내용에 영향을 받아, 또 오랜 기간 동안 약물사용, 중독으로 정신면으로 피로가 극에 달했었던 보위는 스스로 아이덴티티를 재점검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결국 그것은 전작에 이어 "백인이며 유럽인인 나는 어떻게 흑인음악을 받아들여야 할까" 라는 방향으로 바뀌어 새 콘셉트로 만들어진 앨범 "스테이션 투 스테이션 Station to Station" 을 내놓게 된다. 이 앨범에서 보여 준 새로운 캐릭터인 "The Thin White Duke" 는 시각적 측면에서 그가 주연한 영화 The Man Who Fell to Earth(지구에 떨어진 남자)의 캐릭터인 토머스 제롬 뉴튼(Thomas Jerome Newton)의 연장선에 있었으며, 음악적으로는 전작인 "영 어메리칸즈 Young Americans" 에서 보여준 소울 음악이 이어지는 한편, 이후 베를린 3부작에서 나타날 크라우트록과 신시사이저 음악을 예고하는 일종의 과도기적인 앨범이었다.
보위는 다시 가상 캐릭터 씬 화이트 듀크"(Thin White Duke)"를 자칭하며 그것을 연기했다. 독일에서의 라이브는 나치즘을 강하게 의식한 무대로 구성되었다. 1975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는 히틀러를 옹호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발언을 하고 팬들 앞에서는 지크 하일(나치 경례) 같은 손짓을 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미디어에서 격렬한 비난을 받아 지기 스타더스트 이상의 위험 인물로 간주되었다. 투어 종료 후 약물 갱생 목적도 있고 베를린으로 이주해 조용하게 음악 제작을 시작했다.
2016년 1월 8일 25번째 스튜디오 LP이자 고인의 유작 앨범이 된 블랙스타(Blackstar)가 발매되고 이틀 후에 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70세였으며, 18개월 동안 암투병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