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제 때에 알맞게 맞아 들어가도록 만드셨더라.’
중학교 때, 교내 문학지에 시를 게재 했던 적이 있었는데 같은 학교를 다니던 어떤 녀석이 내 시를 당시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유명잡지에 녀석 이름으로 응모(應募)를 했고 내 시가 당선작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녀석이 누구인지 또 내 시가 당선 되었다는 것도 알지 못 했지만 친구들이 흥분해서 이야기 해 준 덕에 알게 되었고 친구들이 누구라고 알려 주었지만 나는 그 녀석에게 한 마디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그저 쓸쓸하다는 생각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갑자기 중학교 때, 반세기도 더 넘은 날의 기억이 지금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제 때에 알맞게 맞아 들어가도록 만드신’ 것이었는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코헬렛은 이어서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마음을 주셨지만,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을 시작하여 어떻게 일을 끝내실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정녕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 시를 훔쳐간 녀석의 멱살이라도 잡고 면상이라도 한 대 갈겨 주었어야 했던 것인지...
내 것을 도둑맞았을 때,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제 때에 알맞게 맞아 들어가도록 만드신 거야”라고 해야만 하는 것인지가 하는 생각이 가슴을 섬뜩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저 입 닥치고 엎어져 있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예수는 결코 그리 죽지는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사순절 아홉 째 날에
2022 사순절 이야기
‘결국 좋은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잘 살며(개역번역은 ’선을 행하는 것‘) 즐기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떤 말은 칭찬이 되고 어떤 말은 욕이 되며, 어떤 말은 축복(祝福)이 되고 어떤 말은 저주(咀呪)가 됩니다, 똑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마치 ‘You're right!'이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코헬렛은 ‘잘’살며 즐기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지만 ‘잘’이라는 말 역시 그렇습니다.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말이 축복이 되기도 하지만 저주나 빈정거리는 욕이 되기도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헬렛은 ‘잘’이라는 말의 뜻을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는 일’이라고 이야기 해 줍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라는 속담이 있지만 ‘There is no FREE lunch'라는 말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아파트 값 올라가는 것이 결코 공짜가 아니듯 말입니다.
결국 ‘잘 산다’는 것은 ‘수고’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잘살기 위해 나는 어떤 수고를 해야 하는지, 좋은 세상을 위해 우리는 어떤 수고를 해야 하는지 물끄러미 비 뿌리는 흐린 하늘을 바라봅니다.
사순절 열 째 날에
삯꾼 장호준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장호준의 Awesome Club’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jhj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