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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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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사막 마을 유배 사건 (2부)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21-07-23 (금) 21:42:31

 

 

호텔에서 월요일까지 사흘밤을 계산하고 입실(入室)했더니 어제와 딴판이었다. 냉장고도 없고, TV도 화질이 엉망이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침대와 침구도 수준이 떨어졌다. 거기다 호텔 전체 에어컨 시스템이 고장나서 수리 기사를 불렀단다. 냉장고 있는 방으로 바꿔달라고 했더니 추가 요금을 내란다. 그나마 지금은 빈 방이 없다고 두 시간 후에 오라고 했다. 냉장고가 없으면 과일을 어떻게 보관하지?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받아 담궜다. 어렸을 적 집에 냉장고가 없을 때는 큰 대야에 물을 받아 과일을 담아 뒀지.

 

두 시간 후에 갔을 때도 방이 없었다. 에어컨 고장으로 예약을 취소하고 나간 사람들 방을 청소 중인 듯했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그냥 있기로 했다. 냉장고가 뭐가 대수라고. 추가 요금 낼 돈으로 음식이나 사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장거리를 걸은 탓에 피곤했다. 샤워하고 그냥 잤다.

 

다음날,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더니 10분 정도 거리에 몰과 여러 식당이 있었다. 마트도 있었다. 아 구글맵의 위대함이여. 오전 11시 개점 시간에 맞춰 일식당에 갔다. 한국인이 하는 곳이었다. 우동을 시켰는데 엄청 짰다. 반찬도 없이 달랑 우동만 나왔다. 그 다음날은 중국 식당에 가서 해물 국수를 시켰는데 마찬가지로 짰다. 오늘 타이 식당에서 먹은 쌀국수가 그나마 가장 나았다. 여기 사람들은 왜 이리 짜게 먹을까? 더운 곳이라 소금이 많이 필요한가?

 

호텔에 있으며 종일 책만 읽었다. 이틀간 Larry HiteThe Rule이라는 책을 완독했다. 래리 하이트는 전설적인 수익을 올린 헤지 펀드 매니저다. 80이 넘은 지금도 활동하며 이 책도 몇 년 전에 냈다. 그의 투자 기법도 중요하지만, 그의 일생을 통틀어 장애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과 삶의 지침도 좋았다. 아이들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월요일 아침에 트럭센터에서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나는 일단 퇴실 후 짐을 챙겨 극장에 갔다. 9개 작품이 상영중이었다. 대부분 킬링타임용이었다. 몇몇 영화는 살인과 폭력 수위가 높아 정신건강에 유해했다. 그나마 볼만 한게 블랙위도우였다. 조조할인으로 10달러가 안 됐다. 상영관에는 나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한 사람은 중간에 나갔다.

 

내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시간이다. 그래서 킬링 타임을 무척 싫어한다. 할 일이 없어 시간을 죽이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퇴실하고 재입실 시간까지 더위를 피할 공간이 필요했다. 그 덕분에 몇 년만에 극장에서 영화도 봤다. 킬링타임이 아닌 피서였다고 자위해본다.

 

내가 묵는 호텔 맞은 편에 문들 닫은 모텔이 있다. 가서 물어보니 노부부가 영업을 했다. 테이블 있는 방으로 달라고 했더니 번호도 없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들어가보니 창문형 에어컨에 브라운관 TV가 있었다. 가구들은 낡아 갈라지고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요금도 모텔 6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뭔가 찜찜해 투숙을 포기했다. 공포영화에서 사람이 죽어나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지난주부터 주식 가격이 계속 떨어졌다. 다소 무분별하게 열어 놓은 옵션 계약들의 정리가 힘들다. 손실이 매일 약 800달러 정도다. 일도 못하고 숙식비만 쓰는데다 돈까지 잃고 상황이 왜 이리 꼬였나 싶다. 화물이 지연되고 트럭이 고장나는 상황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내 선택이다. 불운을 한탄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다른 기회로 삼을 것인가는 내게 달렸다.

 

캘리포니아에 오니 길가에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냉장고는 없을 지언정) 냉방이 되는 편안한 방에서 지내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작가가 되어 곳곳을 다니며 글을 쓰는 생활을 상상한 적이 있다. 어찌보면 그 상상이 실현된 셈이다. 낯선 곳에서 다른 할 일 없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으니까. 이곳에서의 시간이 유배냐 휴가냐는 내게 달렸다.

 

트럭이 언제 고쳐질 지 모르고, 여기서 며칠을 더 지낼 지 모르겠다만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값지게 보내자.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g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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