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에 일어나 준비 후 3시가 안 돼 출발했다. 오늘 갈 거리는 510마일. 배달 시각은 내일 새벽 2시다. 10시간 휴식을 생각하면 오후 3시 전에는 근처 트럭스탑에 도착해야 한다.
캄캄한 도로를 따라 달렸다. 이른 새벽, 도로에는 다니는 차량은 거의 없다. 익숙한 축산 오물 냄새에 주변을 보니 지난번 물건 받으러 와서 한참 기다렸던 JBS가 있는 Catcus를 지나고 있었다. 출발하고 100마일을 더 달리고서야 텍사스를 벗어나 오클라호마에 도착했다. 다시 50마일을 더 가니 콜로라도가 나왔다. 아직 날이 어두워 속도는 55마일에서 58마일을 유지했다. 왼편으로 지는 달이 나를 따라오고 있다. 그 옆 빛나는 천체는 인공위성이리라. 저렇게 크고 밝은 것을 보면 우주정거장일지도 모르겠다.
날이 밝자 속도를 60마일까지 높였다. 다니는 차량도 늘었다. 1차선 국도라 뒤따르는 차량은 나를 앞지를 기회를 보느라 분주하다. 간혹 나오는 추월차선에서는 오른쪽으로 빠져 속도를 늦춰주기도 했다. 마을을 지날 때 30마일까지 속도를 줄인 것 외에는 막힘 없이 달렸다.
덴버 가까이 오니 만년설에 덮인 설산이 보인다. 콜로라도를 통과해 와이오밍에 들어섰다. 텍사스에서 콜로라도, 와이오밍까지 수직에 가깝게 평원을 달렸다. 산맥과 평지의 경계선을 따라온 길이다.
오면서 중간에 시골 트럭스탑에 들러 30분 휴식을 취한 후 논스탑으로 목적지까지 왔다. 원래 한 번 더 쉬려고 했던 휴게소는 폐쇄됐다. 그 덕분에 정오도 안 돼 Cheyenne의 플라잉제이에 도착했다. 180대 규모의 큰 곳이라 널널한 주차장을 예상했는데 웬걸, 90% 이상 자리가 찼다. 이 시간에 이럴 수가. 프라임 트레일러도 몇 대 있다. 나처럼 월마트에 배달왔나?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여기서 쉬다 새벽 1시에 떠날 예정이다.
오늘 분양받기로 한 새끼 고양이가 집에 도착했다. 진회색 수놈이다. 아내가 아는 사람이 소개해 얼마 전 태어난 네 마리 중 한 마리를 얻었다. (사진에서 한 마리는 다른 사람이 데려갔는데 남은 녀석이 누군지 모르겠단다) 생후 6주 정도 됐을 것이다. 아내가 비디오를 보내왔는데 휴대폰 화질이라 흐릿하고, 아들이 보낸 사진에는 얼굴이 안 나왔다. 딸아이 침대 밑으로 들어갔는지 안 보인다고 한다. Pet이라고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동물을 처음 들였다. 그동안 내가 길렀던 동물은 햄스터, 토끼, 거북이, 물고기 등 크기가 작고 주인을 알아보는지 의심스러운 녀석들뿐이었다.
유타의 첫 사고
12,422마일 만에 첫 사고가 났다. 나는 유타로는 사고가 없을 줄 알았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내가 신도 아니고 어찌 앞날을 알겠나.
새벽 1시, 트럭스탑에서 발송처로 가기 위해 주차공간에서 나오다 왼쪽에 주차한 트럭의 사이드미러를 내 트레일러 뒷부분이 건드려서 상대방 트럭에 손상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트레일러는 멀쩡하다. 트레일러는 보기보다 단단하다.
이런 사고는 처음이다. 아니 그동안 냈던 사고는 뭐냐 싶겠지만 이번 사고는 그동안의 사고와 다르다. 그동안은 닥이나 트럭스탑에서 후진하거나 주차공간에 들어가다 난 사고다. 오늘은 멀쩡히 주차 잘해 놓은 공간에서 나오다 사고가 났다. 이런 형태의 사고를 유튜브에서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내가 낼 줄이야.
사고의 원인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맞은 편 주차열과의 거리가 너무 짧았고, 좌우 트럭과의 간격은 좁았다. 그런 상황에서 하필 내 트레일러의 텐덤 슬라이드 핀은 4번에 위치했다. 가능한 앞쪽으로 당긴 것이다. 보통은 6번 이후로 걸고 다닌다. 텐덤 슬라이드가 앞쪽에 있으면 회전할 때 트레일러 타이어가 안쪽으로 도는 오프 트랙은 줄어들지만, 트레일러 뒷부분이 회전하는 스윙바이 현상은 커진다. 야구방망이 휘두르듯 돌아간다.
그런 면에서 오늘 사고는 다소 불가피한 면도 있었다. 트럭을 주차공간에서 최대한 빼서 핸들을 돌렸을 때 맞은편 트럭에 걸려 회전이 불가능했다. 두 번 짧게 후진 후 각도를 만들어 돌렸지만 트레일러 꽁무니가 옆 트럭을 건드렸다. 나는 오른쪽만 신경 쓰다 왼쪽을 놓쳤다. 그동안 좁은 트럭스탑에서 여러 차례 빠져나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어쩌면 옆 트럭이 너무 내 쪽으로 붙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살살 움직였기 때문에 주의 깊게 듣지 않았으면 사고가 난 줄도 모르고 갔을 수도 있다. 그나마 이상한 소리에 멈춰 다행이었다. 상대방 트럭으로 다가가니 운전자는 자다가 일어나 나왔다. 그의 조수석 사이드 미러는 앞으로 접혔고 아래 볼록 거울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 외 약간의 스크래치와 타이어 장식 볼트 덮개가 몇 개 떨어졌다. 나는 사진을 찍고 침착한 태도로 사고를 수습했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나는 회사에 앱으로 보고했다. 고기도 많이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가 아니잖아 지금. 아무튼, 사고를 하도 자주 쳐서 사고 보고도 익숙하다. 배달에 늦으면 안 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사고를 수습했다. 상대방 운전사도 차분했다. 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게 생겼는데, 내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그도 뭐라 할 여지가 없었다. 사고 보고가 마무리되자 나는 일이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뭐 그럴 수도 있지라며 내가 나갈 수 있도록 자기 트럭을 움직여 주었다. 수리 전까지는 볼록렌즈가 떨어져 우회전할 때 조금 불편할 것이다.
주유 펌프에서 리퍼 연료통을 채우고 발송처로 달렸다. 사고를 냈어도 배달에는 늦지 말아야지. 오전 2시 5분 약속인데 오전 2시에 도착했다. 305번 닥을 배정받아 트레일러를 대고 트럭과 분리해 놓았다. 사무실로 가 서류 접수하니 끝나면 전화 준다고 했다.
안전부서에 전화하려니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 전화하라고 적혀 있다. 아침에 해야지.
앉아서 사고에 대해 復棋(복기)했다. 사고 원인은 알았고 방지책을 세워야 했다. 텐덤 슬라이드를 적정 위치에 두기. 주차 간격이 좁은 트럭스탑은 피하기. 내려서 살펴보기 정도다. 사실 아까도 내려서 살펴봤다. 단지 왼쪽은 생각도 못 했다. 이젠 알았으니 앞으로는 자는 사람을 깨워서라도 트럭을 움직여달라고 협조를 구할 것이다. 사고보다는 서로에게 백번 낫다.
시간이 지나도 짐 내릴 기미가 안 보였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금방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곧 탑 200 위험 드라이버에서 빠질 줄 알았는데 이젠 글렀다. 프라임에서 리즈 드라이버를 할 팔자가 아닌 모양이다.
한숨 자고 일어나 안전부서에 전화로 사고를 보고했다. 다음부터는 잘 보고 주의해서 나오라는 당부를 들었다. 당연하다.
아내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통화도 했다. 고양이가 아침에 삐악삐악 울더니 똥을 쌌단다. 리터박스에 앉히려다 손등도 할퀴었다. 조그마한 녀석이 화나면 울버린 손톱이 된단다. 아직 어려서 배변 훈련을 못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환경까지 바뀌었으니. 조만간 잘 적응할 것이다. 아내는 밤새 새끼 고양이가 죽었을까봐 걱정했단다. 깨어나 보니 활발히 뛰어놀고 있더란다. 아침에는 아들의 침대에 못 올라가던 고양이가 오후에는 침대에서 자고 있더란다. 변화하는 것이 하루하루가 다른 게 아니라 아침, 점심이 다르다 했다. 넘치는 에너지로 활발히 움직이는 모양이다.
오늘 제대로 된 사진을 보니 귀여웠다. 몸집은 아직 아기인데 얼굴은 형아 고양이처럼 보여 사진만 보면 더 자란 녀석 같다.
고양이 이름을 정했다. 아들은 심슨 가족의 아빠 이름인 호머(Homer)를 제안했고, 딸은 먼지, 뭉크를 추천했다.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한자씩 따서 수성의 영어명인 머큐리를 냈다. 아내는 라이언킹의 주인공 심바를 밀었다. 고양이가 새끼 심바처럼 생겼다는 이유다. 딸 아이는 모르겠고 아들과 나의 찬성으로 심바로 결정했다. 그래 심봤다.
어느 페친이 러시안 블루 같다고 말했는데 사진을 보니 닮긴 했다. 하지만 눈색깔이 다르다. 러시안 블루는 파란색인데 심바는 검은색이다. 그리고 심바 어미 사진을 보니 일반 줄무늬 고양이다. 심바 아비가 러시안 블루였는지는 모르겠다만. 최소한 혼혈은 분명하다. 흔히 잡종이라 부르는.
정오를 넘겨 짐을 내리고 서류를 받아서 나왔다. 그 사이에 10시간 휴식은 지났다. 사실 이런 경우가 좋다. 새벽에 배달 마치고 갈 데도 없었다. 화물 내리는 동안 10시간 휴식하며 잠도 자고, 하차가 늦어진데 따른 디텐션 페이도 따로 받는다. 꿩먹고 알먹고다. 다음 화물은 이미 들어왔다. 캔자스에서 뉴욕으로 간다. 빈차로 가는 캔자스 홀콤(Holcomb)까지만 390마일이다. 웬만한 화물 운반거리다. 또 거기서 뉴욕주 시라큐스까지는 1,500마일이다. 도합 약 1,900마일이다.
오늘부터 내일 오후 6시 사이에 픽업하면 된다. 육류 운반이라 오늘은 화물이 준비 안 됐을 가능성이 크다. 콜로라도 리몬(Limon)의 플라잉 제이 트럭스탑에 일찌감치 멈췄다. 남은 250마일은 국도길이라 마땅한 트럭스탑이 없다. 오늘 보니 러브스 트럭스탑 샤워 크레딧은 모두 사라졌다. 3개 중에 하나 밖에 못 썼는데. 처음 두 번만 러브스로 주유소를 지정해주더니 다시 파일럿 플라잉제이로 지정해준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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