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20분, 운전 시간 30분을 남기고 오하이오 브로드뷰 하이츠(Broadview Heights, OH) 서비스 플라자에 왔다. 앞서 두 곳 다른 서비스 플라자에 들렀지만, 자리가 없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내에서 최대한 가기로 했다. 신시내티가 가까워 자리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인근에 50대 규모의 파일럿 트럭스탑이 있으니 분산 수용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 트럭커는 트럭스탑을 선호하니까.
이곳에는 빈자리가 여럿 있는데 다른 종류의 트럭을 위한 공간이었다. 공연히 그런 곳에 세우면 티켓을 받을 수도 있다. 한바퀴 둘러보니 세미트레일러를 위한 자리가 딱 하나 남았다. 운이 좋다. 거기 주차를 막 마치니, 한 트럭이 지나가다 나갈 거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니 그냥 떠난다. 조금만 늦었어도 자리가 없을 뻔했다.
내일 아침 6시 배달인데 몇 시에 출발해야 좋을까? 주차할 곳을 찾을 수 있다면 미리 가는 게 좋다. 기다리며 10시간 휴식을 일부라도 취한다면 다음 일을 그만큼 일찍 시작할 수 있다.
출발 전에 여기서 샤워는 하고 가야겠다. 북동부에서는 며칠을 샤워 못 할지 모른다. 일주일 치 몰아서 일곱 번 하고 갈까?
사람은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페친도 환경의 일부다. 담벼락에 온통 조국 얘기니 나도 이성을 잃고 휩쓸렸다. 페북을 잠시 멀리할 때다. 같이 허우적거려서는 길을 찾지 못한다.
내가 가진 생각이나 믿음도 사실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다 천성적 기질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이슬람권에 태어났으면 그에 맞는 사고방식과 도덕관념을 가졌을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는 이유가 뭘까? 종교나 사상이 다르다고 배척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군. 흥미롭네. 왜 이렇게 보이지 않는 걸까? 세상 누구도 나와 같을 순 없는데 말이다. 남들의 다른 생각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인가?
나는 한국 民草(민초)의 저력을 믿는다. 가짜뉴스와 거짓 선동이 난무하는 현실에서도 역사에 빛날 비폭력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한국의 민주주의 의식은 주변국보다 앞서 있다. 더러운 물에서 연꽃이 피어나고 온갖 세균 속에서 면역력이 세지는 법이다. 휩쓸리지 말고 한발 물러서 냉철하게 핵심 가치만 붙잡고 가면 된다. 나는 말을 아끼련다.
조국이 자한당이라면?
오후 4시, 출발했다. 새벽 2시에 도착했다. 배달지 근처에서 길이 헷갈려 잠시 헤맸다. 예상과 달리 주차할 공간이 주변에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그 반대편에는 길가에 트럭 두어 대 정도는 서 있을 자리가 있었다. 주차 후 경비 초소로 서류를 들고 갔다. 통과증을 받아 사무실로 갔더니 육류는 반대쪽으로 가란다. 앞서 두 번은 모두 농산물이었다.
바로 닥을 배정받았다. 57번 도어에 대라고 했다. 럼퍼피는 300달러였다. 수표를 여기 갖다 주냐고 물으니 다 끝나고 전화하면 오란다.
원래 이곳의 후진 난이도는 중상급이다. 다행히 나는 맞은편에 트레일러가 아직 안 서 있어 수월하게 후진했다. 이제 자자.
약속 시각인 오전 6시가 넘도록 하차는 시작되지 않았다. 상관없다. 어차피 정오나 돼야 10시간 휴식이 끝난다.
9시 넘어 하차가 끝났다. 누가 문을 두드리길래 보니 인부가 서류를 들고 있다. 나는 럼퍼피 수표를 주고 서류와 영수증을 받았다. 직접 갖다 주니 편리하다.
밖으로 나갔다. 어제 내가 세웠던 곳은 자리가 없다. 다른 길에 세웠다. 주차금지 표지판이 없으니 문제는 없으리라. 혹시 이곳에 장기주차도 가능한가? 그러면 홈타임 때 편한데. 아마도 아닐 것이다.
다음 화물은 이미 들어왔다. 커네티컷 가나안의 특수광물회사에서 일리노이 애드리안으로 가는 화물이다. 얼마 전 갔던 코스다.
특수광물회사에 도착했다. 전에는 서쪽에서 접근했는데 이번에는 동쪽에서 가니 길이 새롭다. 한번 와봤던 곳이라고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길을 막고 있던 기차도 오늘은 없었다. 닥 주변에 주차한 승용차도 없어 오늘은 후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지난번보다 후진 시간이 줄었다. 꺾인 상태에서 닥에 정확히 대는 것은 어려웠는데 요령을 터득했으니 다음에는 더 수월하리라.
하얀 가루의 정체는 무슨 라임스톤이란다. 칼슘, 마그네슘 등의 성분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화물은 오늘도 거의 한계치다. 8번핀에서 11번핀으로 옮겼다. 그래도 트레일러쪽에 더 많이 걸린 것 같다. 12번이나 13번으로 옮겨야 하나? I-90 진입로 근처에 있는 러브스 트럭스탑에서 CAT 스케일로 무게를 재봤다. 앞뒤 균형이 이상적이다. 이 상태로 그냥 달리면 된다.
I-90을 따라 서쪽으로 향했다. 전에는 밤이면 주차 걱정이 컸지만, 이제는 덜하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이다. 해가 져 어둑해지자 Iroquios Travel Plaza에 들어갔다. 자리가 한 곳 있었다.
조국 광풍을 보며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조국이 자한당 후보였더라도 지금의 태도를 유지할 것인가? 언론, 조국 지지자, 비판자 모두 그 정도나 내용이 지금과 같을까?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의 장관 후보에 비하면 조국은 청빈한 선비 수준 아닌가. 그런데도 천하의 破廉恥漢(파려치한) 취급은 어딘가 공정하지 못하다. 조국이 그만큼 상징적이고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는 반증이겠지. 이제 조국 얘기는 그만하련다. 나는 그를 칼로 본다. 칼은 도구다. 조국 개인의 인간성을 떠나 그가 해야 할 일에 주목한다.
몇 대학에서 조국 사퇴 촛불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공정한 기회를 외치고 언론은 20대의 정당한 분노라 보도한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졸업 후 그들만의 리그에서 명문대 출신이라는 기득권 자산을 마음껏 누렸는데, 그것이 폐지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 아닌가? 왜 니들만 실컷 해 먹고 인제 와서 우리는 못 하게 해? 이건 너무 불공정해. 이런 삐딱한 시선은 내가 386 꼰대여서겠지?
빠듯한 배달 시간
아침에 10시간 휴식 끝나자마자 출발했어야 옳았다. 시간 여유가 있다는 생각은 내 착각이었다. 신시내티를 지날 때 차량정체로 시간을 많이 까먹었다. 평균 속도 시속 58마일로 달린 것도 판단 착오다.
Ottawa Lake, MI의 파일럿 주유소에 8시 30분에 도착했다. 주유하니 8시 40분. 내일 오전 6시 40분에 출발할 수 있다. 약속은 7시, 남은 거리는 약 20마일. 내일 아침 배달 시각을 겨우 맞출 수나 있으려나?
이 파일럿 트럭스탑은 170대 주차 규모니 꽤 큰 편이다. 어떤 곳은 주차 대수가 많아도 간격을 좁게 만들어 주차가 어렵다. 파일럿이나 러브스나 대형 트럭스탑 중에 그런 곳이 많다. 오히려 50대 정도 규모의 중간급 트럭스탑이 공간이 널널한 경우도 자주 있다. 다행히 이곳은 앞뒤 행 간격이 넓은 편이다. 맞은편 트럭과 간격이 트럭 한 대 정도의 거리가 나와야 주차가 수월하다. 그보다 좁은 곳은 주차할 때도 어렵지만 빠져나갈 때도 힘들다.
이 트럭스탑은 늦은 시간에도 몇 자리는 비는 모양이다. 미시간주가 트럭 주차 환경은 제일이다.
내일 배달을 마치면 미주리 본사로 가지 않을까 기대한다. ELD 규정이 바뀌어 전원 재교육을 한다. 아직 강의를 안 들은 사람은 최대한 이른 기간 안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코스를 조정한다고 했다. 미주리만 해도 나거가 살던 환경과 비슷하다. 조금만 더 참아라. 나거야. 요즘 나거는 그다지 몸을 숨기지 않는다. 운전석 아래 자리를 잡았다.
코카콜라
10시간 휴식을 채우고 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10분만 더 쉬면 되는데 말이다. 오전 6시 30분, 트럭스탑을 나섰다. 7시 전에 PPG에 도착했다. 다른 트럭이 짐을 내리고 있어 기다려야 했다. 그 트럭이 떠나고 내 차례가 됐다. 여기 난이도는 상급이다. 지난번 왔을 때는 드랍 앤 훅이어서 쉬웠다. 후진에 30분도 더 걸렸다. 트럭스탑 같으면 포기하고 다른 자리 찾았겠지만, 배달처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해내야 한다. 닥에 대고 나니 지게차 두 대가 번갈아 가며 십 여분 만에 짐을 내렸다.
어제 쉬었던 트럭스탑으로 돌아왔다. 트레일러는 깨끗한 편이고 하얀 가루가 좀 떨어져 있다. 빗자루로 쓸었다. 그 사이 다음 화물 예고가 들어왔다. Paw Paw에 1시까지 갈 수 있냐고 묻는다.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거리를 계산해보니 안 된다. 배달하고 반대편으로 왔기 때문에 거리가 더 멀어졌다. 잘해야 1시 반까지 갈 수 있다고 하니 알았단다. 나는 다른 트럭에게 주려나 보다 하고 계속 청소했다. 그런데 화물이 정식으로 배당됐다. 아까 출발했어야 1시 30분까지 가는데 지금은 더 늦었다. 도착 시각은 2시로 변경돼 있었다. 죽어라 가보자.
150마일이 넘는 거리를 달려 포포(Paw Paw, MI) 코카콜라 공장에 도착했다. 2시 4분이었다. 선방했다. 드랍 앤 훅으로 알고 왔는데 화물이 아직 안 실려서 라이브 로드로 바뀌었다. 냉장화물 부서로 가니 드라이 로드라며 반대편으로 가란다. 두 번 연속 드라이 로드네. 리퍼를 안 돌리면 조용해서 좋다. 체크인하고 동그란 버저 단말기를 받았다. 그리고는 함흥차사. 연락이 없다. 기다리다 못해 사무실로 다시 가봤다. 다음이 내 순서란다.
자정이 넘어 Door 16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미 10시간 휴식은 지났다. 중급 난이도. 밤이라 조심하며 후진했다. 몇 번을 내려서 확인했다. GOAL이다. Get Out And Look. 도어에 댔지만 짐을 실을 기미가 없다. 옆 트럭이 빠지고 다른 트럭이 들어왔다. 내려서 뒤를 봐줬다.
미주리에 내일 오전 10시까지 배달이고, 8시간 거리니 늦어도 오전 3시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짐이 늦게 실려서 배달이 지연되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밤새워 가려면 잠이나 자두자.
하루를 벌었으나
오전 3시부터 짐을 싣기 시작했다. 오전 4시에 출발했다. 10시까지 가는 건 불가능하다. 넉넉잡고 오후 1시 도착으로 출발보고 통화에서 얘기했다.
가는 도중에 배달 시간이 내일 오전 4시로 바뀌었다. 뭥미? 에이 그럼 서둘러 갈 필요 없잖아. 속도를 줄였다. 잠시 후 다시 배달 시간이 오늘 오후 1시로 바뀌었다고 연락이 왔다. 다시 전속력.
어제 밤운전을 예상 못 했기에 잠을 충분히 못 잤다. 졸리고 피곤하다.
일리노이와 미주리의 경계에 있는 푼툰 비치에서 주유했다. 배달처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30분이다. 다시 메시지가 왔다. 배달 시간이 내일 오전 10시 15분이란다. 뭐야 장난하나. 내 잘못으로 출발이 늦은 것도 아닌데 꼬박 하루를 기다리라고?
일단 트럭대기장에 주차하고 정문 경비실로 갔다. 서류를 확인하니 전산에 내일 오전 10시 15분으로 뜬다. 지금 체크인할 거냐? 내일 하겠냐? 좀 생각하다 지금 체크인하겠다고 했다. 지금 체크인하면 트럭에서 대기해야 한다.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어디 가거나 우버를 불러 떠날 수 없다. 알았다. 아까 주유하면서 샤워나 할 것을 그랬네. 내일 온다 할 걸 그랬나?
트럭에 앉아 있으니 전화가 왔다. 미주리 번호네? 회사인가? 받아 보니 배달처다. 513번 도어에 대란다. 오늘 받아 주는구나. 하루를 벌었다. 아까 그냥 갔으면 어쩔 뻔했나. 닥킹하고 접수 사무실로 가 체크인했다. 짐은 금방 내리지 않았다. 거의 4시간 걸려서 짐 내리고 서류 받아 나왔다.
트럭스탑으로 갈까 하다가 대기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정문 밖에 마련된 대기장에 머물 수 있다. 단 오후 8시에는 떠나라고 한다. 그 전에 다음 화물이 들어오겠지.
오후 8시가 넘도록 화물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떠나라는 얘기도 없으니 최대한 버텨보자. 어차피 9시가 돼야 10시간 휴식이 끝난다. 본사가 여기서 200마일인데, 나는 본사로 가서 교육받으라고 할 줄 알았다. 내일이 금요일인데 교육은 아침에 있으니 이번 주는 글렀다. 화요일은 집에 가는 날이니 교육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이래서야 하루 일찍 배달한 소용이 없다. 내일부터 노동절 연휴가 시작돼 화물이 뜸한 모양이다.
나거의 체력도 바닥을 드러내는 것인가? 나거가 벙커 냉풍구 근처에서 목을 빼놓고 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죽었나 싶어 보니 눈을 감고 자고 있다. 항상 경계심이 많은데 이렇게 대책 없이 눈 감고 자다니. 체력을 아끼기 위해 동면 상태에 든 모양이다.
일단 미주리는 왔지만 좀 더 남쪽이 좋다. 내일 화물 방향을 보고 남쪽으로 가면 나거를 데려 가고 다른 쪽이면 이 근처 적당한 곳에 풀어줘야겠다. 조금만 더 견뎌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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