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휴식을 위해 뉴멕시코의 한 트럭스탑에 들렀다. 네이슨은 휴대폰으로 주차 공간이 있는 트럭스탑을 찾았다. 같은 출구고 바로 옆인데 Pilot은 빈 공간이 없고 TA는 자리가 있다. 야간 후진 주차 연습할 기회다. 공간 여유가 있는데다 네이슨이 뒤를 봐주니 비교적 수월하게 주차했다. 아직 디테일에서 부족한 점이 있지만 후진 주차의 큰 흐름은 파악했다.
5시 45분경 트럭스탑에 도착했다. 내게 남은 시간은 30분. 이곳은 주차장선이 사선(斜線)으로 나있다. 직각 주차보다 사선 주차가 더 어렵다. 부족함을 다시금 절감한다.
후진 습득이 더딘 이유 중에는 언어 문제도 있다. 내 영어 이해 능력의 한계로 미묘한 디테일까지 접근하지 못 한다. 한국 사람에게 배웠으면 조금 더 진도가 빨랐으리라. 네이슨의 잘못이 아니다. 네이슨은 이해 못 하면 얼마든지 다시 질문하라고 했다. 문제는 이해했다고 착각한 내게 있다.
네이슨은 그동안 옆에서 봐왔으니 내가 종종 사람들의 말을 대략은 알지만 100%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때로는 네이슨이 말하는 것도 못 알아들으니 당연하다. 한국말도 조리 있게 하는 사람이 있고 횡설수설(橫說竪說) 하는 사람도 있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길, 이제 일주일 남았어. 너는 대체로 잘 하는데 몇 가지가 문제야. 그리고 그 몇 가지가 심각한 것이야. 네이슨은 진지하게 얘기한다.
도로 표지판 읽기와 못 알아들으면 질문하기다. 도로 표지판이야 읽는데 어제처럼 상황인식이 안 되는 경우가 문제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 차츰 해결될 문제다. 상대방 말 이해하기는 단시간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상대방이 한 말을 내 식으로 풀어서 다시 상대방에게 확인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하다. 문제는 상대방이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전혀 안 들릴 때다. 때론 단어는 들리긴 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를 경우도 있다. 대충 문맥과 뉘앙스, 눈치로 이해하지만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다. 내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고 어린 아이가 말을 배우듯 해야겠다.
깨어 보니 배달지에 도착했다. 후진 연습을 할 기회다. 짐을 내리고 나서는 내가 운전했다. 늘 그렇듯이 트레일러 세척부터 해야한다. 트럭 세차장이 1.5마일 거리에 있어 off duty 상태로 갔다.
다음 배달은 북동부로 가는 화물을 받기로 했다. 나는 이미 TNT 과정에 필요한 3만 마일을 채웠다. 업그레이드를 하기 전에 집에서 일주일 정도 쉴 작정이다. 처리할 일도 있고 휴식도 필요하다. 펜실베이니아 핏스톤 터미널에 나를 내려주면 거기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집에서 가까운 핏스톤 터미널에서 업그레이드를 할 지 스프링필드 본사로 가야 할 지. 트럭이 없어서 일주일 넘게 기다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화물 받으러 출발했다. 캘리포니아 Oxnard와 Ventura에서 각각 레몬 상자를 실어 인디애나 Auburn과 펜실베이니아 Bedford의 월마트 물류센터에 배달하면 된다. 날짜는 넉넉하다. 지도를 보니 벤추라는 LA보다 더 서쪽에 있는 바닷가 도시다. 여기서 출발해 뉴욕 집까지 가면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 미대륙 횡단이다.
Oxnard로 가는 길에 캘리포니아의 교통정체(交通停滯)를 제대로 경험했다. 퇴근 시간에 걸린 것인지 1시간 반이면 갈 거리를 3시간 넘게 걸렸다.
오늘따라 네이슨이 더 신경질적이다.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인다. 평소에도 가르치는 방식이 다소 고압적인데 교육생을 위축되게 만들어 덜 효과적이다. 본래 성격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냥 넘어간다. 그런데 오늘은 운전하는데 옆에서 뭐라 해서 더 헷갈린다. 이번 트립 끝나면 교육이 끝인데 아직도 내 솜씨가 미덥잖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조급한 모양이다. 하나라도 더 지적해주려고.
발송처에 도착하니 문이 닫혀 있고 공장에 사람도 안 보인다. 다 퇴근했나? 정문 앞에 트럭을 대니 사람이 나와 문을 열어준다. 알려준 곳으로 가서 트레일러를 닥에 댔다. 실을 물건은 선키스트 레몬이다. 보통은 SLC라서 발송자가 물건도 싣고 갯수도 세는데 오늘은 SLDC다. 발송자가 싣지만 갯수는 운전사가 센다. 덕분에 닥 내부에 들어가 하적 과정을 볼 수 있었다. 11개 팰럿을 실었다. 레몬 상자가 쓰러지지 않도록 화물 지지봉도 세웠다.
두번째 발송처에 왔는데 앞에 트럭이 다섯 대가 있다. 두 대는 닥에서 대기 중이고 세 대는 줄을 서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네이슨은 오늘 중으로 LA를 벗어나면 좋다고 했는데 가능할까?
중량 초과
짐을 싣기 까지 오래 걸렸다. 지게차 기사 한 사람이 서류 작업과 화물하적까지 도맡았으니 그럴 수 밖에. 네이슨이 자는 동안 나는 밖에서 작업을 지켜봤다. 새벽 3시에야 하적이 끝났다. 지지봉을 두 개 설치하고 트레일러를 잠궜다. 네이슨을 깨워 출발을 알렸다. 각 바퀴 축의 무게를 측정해보니 트레일러 바퀴 축이 한계 기준을 초과했다. 전체 화물 중량은 괜찮았다. 바퀴 축을 더 뒤로 물리면 무게 균형을 맞출 수 있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불법이다. 캘리포니아는 트레일러 바퀴 축을 6번 핀홀 이하로 규제한다. 트럭에 설치된 자체 저울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 고정 트럭 저울이 있는 주유소에서 재보기로 했다. 트럭 무게 다는데도 11달러 정도 든다. 30분 정도 가서 무게를 달아보니 역시 바퀴 축 중량 초과다. 화물을 실은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짐을 몇 개쯤 내려야 하는 줄 알았다. 짐 정렬(整列)을 다시 해야 한단다. 첫번째 화물을 실은 곳에서 앞쪽으로 약간 여유를 두고 실었다. 냉동장치가 앞에 있어서 너무 가까이 있으면 얼거나 냉기 순환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네이슨이 지게차 기사에게 팰럿을 홀수, 짝수, 홀수 순으로 실어 달라고 요청했다. 짐을 모두 꺼내 모두 짝수로 맞춰 화물을 앞쪽으로 보내야 한다. 그렇게하면 트렉터 바퀴축에 무게가 더 실리고 트레일러 바퀴축에는 무게가 덜어진다. 나는 피곤해 트럭에서 눈을 붙였다. 작업이 끝나고 출발할 때 보니 오전 6시가 넘었다. 계획으로는 지금쯤 캘리포니아를 벗어나고 있어야 했다. 수련기간 중에 이런 일이 생겨 다행이다.
트럭을 탄 이후로 운행 중에 가장 오랜 시간을 깨지 않고 잤다. 일어나니 애리조나였다. 현지 시간으로 2시경이었다. 중부시간으로는 4시다. 네이슨은 4시간 정도의 운전 시간이 남았고, 내 휴식 시간은 2시간 반 정도 남았다. 70시간을 살펴보니 나는 배달지까지 문제가 없었다. 네이슨은 시간이 빠듯했다. 네이슨의 운전 시간을 줄이고 내 휴식이 끝나자마자 출발하는 식으로 운행해야 할 것 같다.
40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달린다. 40번 도로는 비교적 가파른 고개도 있다. 애리조나 언덕 구간을 네이슨이 어떻게 운전하는지 살펴봤다. 나는 엔진 브레이크를 많이 쓰고 풋브레이크를 가급적 쓰지 않으려는 편인데 네이슨은 풋브레이크 사용 빈도가 나보다 잦았다.
내가 운전할 차례가 돼 언덕길을 내려갈 때 네이슨은 제이크 브레이크를 먼저 사용하라고 했다. 제이크 브레이크 1, 2, 3단을 순차적으로 사용하고도 모자라면 풋브레이크를 쓴다. 엔진브레이크가 메인이고 풋브레이크는 보조다. 어느 한 쪽만 집중 사용하기 보다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트럭의 엔진 브레이크는 일반 승용차와 달리 두 종류가 있다. 저단 기어를 사용한 브레이크와 배기 가스의 저항을 이용한 제이크 브레이크다. 일반 승용차는 엔진 rpm을 3~4천씩 올려도 무리가 없지만 트럭은 2천 rpm 이상을 올리지 않는 것이 좋다. 계기판에도 3천 rpm까지 밖에 표식이 없다. 그래서 저단 기어를 사용한 감속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트럭이 지나갈 때 기관총 쏘듯 부바바방 소리를 내는 경우가 제이크 브레이크를 사용한 때이다. 소리가 요란스럽기 때문에 시내에서는 제이크 브레이크 사용을 금하는 곳이 많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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