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네이슨에게서 문자가 왔다.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를 스프링필드 본사에 맡겼단다. 체인락과 로드락은 거기서 맡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네이슨은 회사를 그만뒀다. 트럭을 반납하고 쓰던 용품을 내게 양도했다. 일부는 회사에서 맡아 주지 않아 샵에 팔았을 것이다. 트럭용 냉장고 신품은 500달러 가량 한다.
TNT 중간 네이슨 집에 휴가갈 무렵 그가 회사를 그만두려는 것을 알았다. 네이슨은 운전은 오래 했지만 트럭킹을 한 것은 2년이 안 된다. 그 기간 동안 사람이 소진(消盡)되어 버린 모양이다. 트럭 일이 그에게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네이슨은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 했다. 페북에도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 회사에서 알게 되면 거지 같은 화물만 줄 것이라 했다.
졸지에 나는 그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수련생이 됐다. 첫 번째 학생은 말했다시피 7개월이 넘는 수련 후 연락두절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사람은 누구나 훈훈한 마무리를 하고 싶어 하는 법. 네이슨은 남달리 내게 더 신경을 썼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나의 후진(後進)은 완벽하지 못하다. 물가에 아이를 내 놓는 심정이 아닐까. 자기가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다.
네이슨은 아직 진로를 확실히 정한 것은 아니다. 여름 동안 아이들과 보내며 휴식을 취한 후 다음 직장을 구할 것이다. 오너 오퍼레이터와 계약하는 랜드스타에 들어가 집 가까운 곳에서 보다 많은 자율권을 가지고 트럭 일을 계속할 수도 있다. 트럭킹 자체에 회의감을 갖고 있어 다른 직종으로 옮길 가능성도 높다. 네이슨은 오일 필드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험이 있다. 마침 그의 새아버지인 다윈이 아프리카 차드에서 석유 시추공 굴착(掘鑿) 일을 한다. 다윈에게 얘기해서 그쪽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아프리카에 가면 한 달 일하고 한 달 쉰다고 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낼 수 있다. 집에 가면 네이슨은 아이들과 플로리다로 놀러 갈 것이라 했다. 지난 번 플로리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관광 안내책자를 여러 권 챙겼다.
마흔 넘어 경력을 바꾸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두려움도 있고 고민도 컸을 것이다. 거기 비하면 나는 살면서 직종 바꾸는 일을 참 쉽게 했다. 그 당시 내게 닥친 일을 별 어려움 없이 받아들였다.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고 무슨 일을 하든 전공인 영화(映畫)와 관련성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하긴 영화가 걸리지 않는 분야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집에서 쉬며 솔로로 일할 때 필요한 개인 용품들 몇 가지를 주문했다. 며칠 후면 본사로 돌아가 업그레이드 교육 후 내 트럭을 받는다. 아내는 내가 집에 있으니 편하고 좋다고 한다. 새로 취직한 직장에 적응하느라 고생이 많다. 살도 빠졌다. 나도 뱃살과 볼살이 쏙 빠져 체중이 많이 준 줄 알았더니 1~2kg 정도 밖에 안 빠졌다. 허리띠는 두 칸을 줄였는데 신기한 일이다. 달리는 트럭에서 잠을 자다보니 그 진동에 지방이 분해됐다고 밖에는 해석이 안 된다. 솔로로 일하면 다시 살이 찔까?
뉴욕집에 잠시 돌아와 민권센터 차주범컨설턴트와 반가운 해후를 했다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출발
뉴욕 와서 소수의 사람들만 만났다. 화요일이 정기 동문회 모임이라 여러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주말 야유회 관계로 이번 달은 취소됐다. 그동안 조용히 집에서 휴식하며 트럭 운행 시 필요한 도구를 인터넷으로 하나둘씩 주문했다. 전화기도 용량 큰 것으로 교체했다. 내가 쓰던 전화기는 아들 녀석에게 양도했다. 딸 아이 전화기도 마침 고장 나 내것 보다 좋은 모델로 주문해줬다. 매번 떨어뜨려 스마트폰 스크린에 금을 내기에 이번에는 스크린 보호 강화 유리와 스마트폰 케이스도 함께 주문해줬다.
그저께 플릿매니저와 통화했다. 오는 금요일 펜실베이니아 핏스톤 터미널에서 업그레이드 교육에 참가하라고 했다. 매주 월요일 열리는 신규 모집 오리엔테이션과 달리 업그레이드는 일주일에 두세번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모양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어떤 내용이 있나 궁금해 페이스북 프라임 드라이버 그룹에 질문을 올렸다. 업그레이드는 교실 강의,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CBT)과 시뮬레이터 주행 실습 등으로 이뤄져있다고 들었다. 본사인 스프링필드에서는 한 일주일 걸리는 모양이다. 핏스톤은 규모가 작아 어떤 사람은 교육 참가 다음날 트럭을 받고 그 다음날 첫 화물을 받았다고 했다. 아무래도 본사는 인원도 많고 뭔가 정식으로 하는데 반해 핏스톤은 분교 개념으로 형식만 갖추는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나도 이번 주 내로 트럭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긴가? 스프링필드에서 교육을 받고 트럭이 없어 핏스톤에 가서 트럭을 받았다는 사람도 많다. 단, 핏스톤의 트럭은 모두 중고 차량이라고 했다. 새 트럭이 좋긴하지만 초보 트럭커로서 문제 없이 굴러만 가면 중고도 감지덕지(感之德之)다. 네이슨이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를 스프링필드 디테일샵에 맡겨 뒀기 때문에 본사에 가기 전까지는 냉장고 없이 지내야 할 판이다.
오리엔테이션 오피스로 9시 30분까지 가야 한다. 교육은 10시 30분 시작이지만 항상 1시간 미리 가는 전통이 프라임에는 있다. 문제는 뉴욕에서 핏스톤까지 가는 버스가 오전 8시가 첫 차다. 그 차를 타면 늦다. 최소한 전날 막차인 새벽 0시 30분 버스는 타야 한다. 새벽 4시경 버스터미널에 내려 셔틀 버스 기사에게 픽업을 요청해야 한다. 새벽 5시면 핏스톤 터미널에 도착할 것이다. 다섯 시간 가량 시간을 보낸 후 교육에 참가해야 한다.
내 트럭을 받으면 이름을 붙여줄 생각이다. 마음에 드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트럭은 내 생활 공간이자 수행공간이다. 지금까지는 석굴암을 패러디한 ‘철굴암’이 유일한 후보다. 발음이 좀 구리긴하다. 어떤 트럭이 내게 올까?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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