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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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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린 네이슨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18-06-29 (금) 13:53:26


0622 나를 울린 네이슨1.jpg

      

펜실베이니아를 통과하는 고속도로의 거의 전 구간이 산악지형이다. 록키산맥처럼 엄청 높은 고개는 없지만 완만한 언덕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사방이 탁 트인 평지에서 직선으로 달리다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을 수백 마일을 달리려니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대관령 고개길로 가는 셈이다.

 

베드포드(Bedford) 월마트에 도착했다. 마지막 배달을 완료했다. 끝까지 후진은 네이슨 도움을 받았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방향을 지시하는 네이슨의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웠다. 이제 집에 가나 했더니 다른 배달이 들어왔다. 그것도 하이 밸류다. 오하이오로 역진(逆進) 후 코네티컷으로 가는 화물(貨物)이다. 오하이오로 가서 저녁에 화물을 실은 후 내가 밤새 운전해 핏스톤 터미널까지 가기로 했다. 내일 아침에 핏스톤에서 나는 내려 뉴욕행 버스를 타고 네이슨은 계속 운전해 배달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어 오하이오 모리스타운 트럭스탑에서 샤워를 했다. 출발하려는데 디스패처가 하이밸류라서 내가 배달 마칠 때까지 있기를 바랬다. 고가품을 운송할 때는 한 명은 항상 트럭에 있어야 한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조금 늦어지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

 

오하이오 레이놀즈버그(Reynoldsburg)에서 이미 물건이 실려 있는 트레일러를 연결해 오후 8시에 출발했다. 14시간 운전거리다. 네이슨은 70번 도로 대신 80번 도로로 경로를 잡았다. 80번 도로는 톨비가 없다는 이유였다. 운전도 70번 도로에 비해 편했다. 산길을 달리니 도로 위로 구름이 몰려오고 조금 내려가면 비가 되어 내렸다.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세차게 쏟아 붓는 경우도 있다.

 

 

 

0621하루더1.jpg


  

TNT 종료

 

 

고가품을 운송할 때는 출발해서 200마일 이상을 운전한 후 쉬어야 한다. 도착지 200마일 이내 거리에서 쉬어서도 안 된다. 시간과 거리를 따져보니 400마일 남은 거리에서 한 번 쉬고 200마일을 더 간 다음 네이슨과 교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GPS로 가까운 트럭스탑을 찾아 들어갔다. 비가 좀 세게 와서 출구를 나갈 때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런데 몇 번 출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가품 운송 시 차량이 멈출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도로, 출구, 지명, 휴식 예정시간을 적어 퀄컴 단말기로 회사에 보낸다. 할 수 없이 구글맵을 찾아 봤다. “, 너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지. 도로 표지판 안 읽었어?” 네이슨의 호통이 이어진다. “비가 넘 많이 와서 못 봤어.” “그건 변명이 안 돼. GPS에 나와 있었을 것 아냐. 내가 항상 얘기하잖아.” 맞는 말이다. 내가 아직 서툰 탓이다.

 

30분 휴식 후 트럭스탑을 빠져 나와 고속도로로 들어가기 위해 우회전 하려는데 네이슨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좌회전을 하란다. 왜 이러나 내가 뭘 잘못 알았나 싶어 주저하며 좌회전을 했다. 사거리에 가니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다. 네이슨은 어? 여기가 진입로 아니네 한다. 나는 얼른 유턴했다. 사거리에서 트럭이 웬만하면 하지 말아야 할 운행 중의 하나가 유턴이다. 심야에 차량 운행이 드문 곳이니 가능했다. 네이슨은 내가 잘못 했네한마디 한다. 내가 또 다른 네이슨이었으면 엄청 쏟아 부었겠지. 네이슨도 사람인지라 운전하다 간혹 실수한다. 이런 경우 나는 거봐 내 말 맞지?’ 하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침묵(沈默)한다. 그러면 알아서 반성한다.

 

얼마 후 갑자기 비가 강해졌다. 와이퍼 속도를 최대로 올렸다. 자는 줄 알았던 네이슨이 소리친다. “!, 너가 와이퍼를 얼마나 빨리 작동시키는 지는 상관 없는데 와이퍼 속도를 최대한으로 했다는 것은 잘 안 보인다는 뜻이고 속도를 줄여야 해.” “안 그래도 속도 줄이려 그랬다.” 저 인간 왜 자다가 이때 깨서는 잔소리야.

 

목적지 200마일 이내에서는 스탑 안 하게 돼 있지만 예외 상황이 있어. 두 운전자가 바로 교대할 때는 예외야.” “그런 거였어?” 그럼 아까 쉴 필요가 없었다. 내가 갈 수 있는 시간까지 최대한 가보기로 했다. 뉴저지 마와(Mahwah)까지 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 다음 트럭스탑은 너무 멀었다. 마와에는 몇 곳의 트럭스탑이 있는데 대부분 규모가 작았다. 게중 가장 큰 곳으로 했는데도 트럭 주차 공간이 10대 정도에 불과했다. 북동부에서는 제대로 된 트럭스탑을 찾기 어렵다.


0621 하루더.jpg

 

동틀 무렵이 다가오니 도로에 차량의 댓수가 많아졌다. 아침 일찍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이다. 속도가 느려졌다. 트럭 운전을 하면서 별로 본 일이 없는 현상이다. 주변에 차가 많으면 불편하다.

 

10마일을 남겨 두고 네이슨을 깨웠다. 마와 트럭스탑은 예상과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지도를 확인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고속도로를 나와 유턴한 다음 다시 남쪽으로 들어가 다른 길로 빠지고 거기서 다시 P턴을 해서 다른 도로로 들어간 다음 중간길로 빠지고 어쩌고 거의 미로(迷路) 수준이다. 네이슨 아니었으면 분명 길 잃었다. 물론 네이슨의 잔소리는 덤으로 들어야 했다. “, GPS 화면 쳐다보지 말고 도로 표지판을 보란 말이야. 고속도로 중간에 서지 말라고.” , 수련이 끝나는 날 아침까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간신히 찾은 트럭스탑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공간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일반 승용차 주유 공간으로 들어가 트럭을 뺐다. 나는 여기서 나가려고 했는데, 네이슨은 겨우 하나 남은 공간에 대려고 했던 모양이다. 이리저리 좁은 공간에서 간신히 트럭을 돌리게 하더니 후진을 시켰다. 이런 어려운 후진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스탑! 뒤를 보라고. ! 다른 차 거의 칠 뻔 했어. 한쪽만 보지 말라고. 그러다 사람도 칠 수 있어.” 네이슨 이 녀석 이럴 때는 정나미 떨어지게 얘기한다. 그래놓고 나중에는 또 해맑게 웃는다. 으이그.

 

트럭스탑에서 뉴욕식 델리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계란, 베이컨, 치즈를 롤빵에 끼워 먹는 것. 그동안 간간이 택시 운전하며 먹던 할랄 푸드가 생각났다. 트럭 운행 반경에서는 그런 음식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운전 교대 후 나는 뒷칸으로 들어가 잤다. 길은 아까보다 더 막혔다. 근처에 사고라도 난 모양이다. 일어나니 목적지인 커네티컷 East Hartford였다. 네이슨은 닥에 트레일러를 대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가품은 튼튼한 봉인(封印)을 설치한다. 이번 경우에는 두 개나 달렸다. 커다란 절단기 아니면 끊을 수 없다.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시간을 보니 한두 시간 이상을 기다린 것 같다.

 

봉인을 절단하고 트레일러 문을 여니 예상과 달리 팰릿에 실린 짐이 아니라 그냥 박스에 담긴 짐이 절반 가량 쌓여 있다. 직원들 여러 명이 장비를 설치하고 작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은 닥 내부에는 외부인 출입 금지인데 여기서는 내가 화장실 가기 위해 닥 내부로 들어가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고가품이라며?

 

물건 내릴 동안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가져갈 가방이 4개다. 그나마 가져온 음식은 거의 다 먹어서 그 정도다. 네이슨은 이것저것 물건을 챙겨줬다. 자물쇠며 트럭 운행에 필요한 것들이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을 네이슨에게 줬다. “아 이 헤드셋 챙겨가. 너 준다고 했잖아.” 수련 기간 중 내가 사용했던 헤드셋이다. 사려면 50달러 넘는다. 갑자기 창문에서 가민 GPS를 떼서 내게 내밀 때는 적잖이 놀랐다. “가져가. 너 이것에 익숙하잖아.” “너도 필요하잖아. 나는 퀄컴 보면 돼.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은 다 알고 있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3~4백 달러 넘는 트럭 GPS를 내게 준 것이다. “그리고 이거 주유 포인트로 산 거야. 돈 안 들었어.” 구입한 지 얼마 안 되는 물건이다. PSD 수련 중에 네이슨이 트럭스탑에서 새 물건으로 교환 받는 것을 봤다. 영수증만 있으면 물건 하자(瑕疵) 시 한달 내 어디서도 교환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대쉬캠도 주고 싶지만 이건 나도 필요해. 사고 났을 때 화면이 있어야 하니까.”

 

배달처에서 나오는데 거의 주택가에 인접해 있었다. 도로는 좁고 운행은 불편했다. 이런 곳에 배달 오는 것 달갑지 않다. 밀포드까지 한 시간 가량 고속도로로 이동했다. 가는 길 왼쪽으로 바다가 보였다. “, 바지 벗고 저기 뛰어 들자고”. 농담을 한다.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 우리 미대륙 횡단했네.” “그래 남서부에서 북동부까지 왔지.” 트럭으로 둘이서 온전히 대륙 횡단했다. 가면서도 네이슨은 이런 저런 팁을 알려주었다. 내가 로그아웃 하지도 않았는데 회사에서 내 이름을 이미 퀄컴 단말기에서 뺐다. 솔로 드라이버 모드가 되니 운전 중에 문자 메시지를 읽을 수 없었다. 대신 음성 메시지로 변환해 들을 수 있었다. 네이슨이 사용법을 알려줬다. 불편하다. 마지막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항상 미리 운행 계획 세우고, 운전할 때 표지판 잘 살피고, 익숙해질 때까지 후진할 때는 내려서 꼭 뒤를 확인하라는 얘기다.

 

밀포드에 도착해 트레일러를 세척하고 옆의 파일럿 트럭스탑에 주차했다. 한낮인데도 무료 주차공간은 다 찼고 유료 공간만 남았다. 주차 요금이 거의 20달러 가깝다고 했다. 네이슨은 우버 택시를 불러주었다. 기다리며 같이 사진을 찍었다. 몇 달을 같이 다니면서도 이렇게 둘이서 찍은 적은 처음이다. 악수와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0622 나를 울린 네이슨.jpg

 

밀포드 기차역에 도착해 표를 사고 기다렸다. 문자가 왔다. , 아까 찍은 사진 좀 보내줘. 10/4 트럭커들의 은어(隱語). 알았다는 뜻이다. ‘고마워 친구. 순두부 찌게 엄청 맛있었어.’ 하나 남은 순두부찌게 햇반을 주고 왔다. ‘벌써 먹었어?’ ‘엄청 배고팠어. 진짜 맛있더라.’ 지난 번 집에 왔다 갈 때 두 개 샀는데 사실 기대보다 맛은 별로였다. 맛있게 먹었다니 좋다. ‘기차 도착했어?’ ‘몰라 언제 올지. 좀 늦어지나봐.’ ‘그럴 줄 알았으면 아까 같이 밥 먹을 걸 그랬다.’ 그 사이 기차가 도착했다. 내가 보낸 사진을 네이슨은 자신의 페북에 올렸다. 새로 솔로 드라이버의 경력을 시작할 나의 앞날에 행운을 빌었다. 지인들의 축하 메시지가 이어졌다. 네이슨 엄마와 빌도 있었다. 다윈은 나중에 메신저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다윈은 나중에 가족과 함께 꼭 오라고 했다.

 

짐이 많았지만 누가 도움이라도 주듯 차편이 수월하게 연결돼 집까지 잘 왔다. 지하철에서는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집에 거의 도착해 네이슨에게 집에 거의 도착했다고, 짐 받았냐고 문자를 보냈다. 내일 받아서 모레 펜실베이니아로 가는 물건을 받았다 했다. 집에는 월요일 쯤 갈 것 같다고. 혼자서는 절반의 속도로 밖에 이동 못 한다.

 

생각해보니 마지막까지 어려운 코스와 실수가 많았던 것이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다. 실수를 했고 지적을 받았기 때문에 실전에서는 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당장 마지막 운행만 봐도 오하이오 레이놀즈에서 트레일러 연결할 때 킹핀이 fifth wheel에 걸리지 않고 위에 얹힌 일이 있었다. 네이슨이 없었으면 나는 그대로 계속 후진했을 것이고 트럭 후미 연결부와 트레일러 머리가 부딪치는 사고가 날 뻔 했다. 이 경우 어떤 느낌이고 어떻게 조치하는 지를 배웠으니 앞으로 같은 사고가 날 일은 없다.

 

네이슨은 트레이너로서 해야 할 일 이상을 내게 했다. 수련생의 성취는 아랑곳 않고 필요한 거리만 채우면 터미널에 수련생을 던지듯 버려 놓고 가버리는 트레이너도 있다고 들었다. 네이슨은 나를 친구로 가족으로 받아 들였다. 그는 진실한 우정(友情)과 열정(熱情)을 보여줬다. 내 실수에 화를 낸 것도 나를 염려하는 마음의 표시였다. 그가 그토록 내게 정성을 쏟은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지금은 말할 수 없다.

 

 

 

0510-1 드라이빙.jpg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g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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