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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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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르면 우물파는 트럭스탑

목소리 크면 대장이다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18-09-07 (금) 13:03:53


0828 닭의죽음을 헛되이말라1.jpg

      

솔로 2, 두 번째 배달은 만만찮은 도전이었다. 10시간 휴식이 끝나자마자 발송처로 향했다. 여기는 닭고기 가공 공장인데 닭오물 냄새가 심했다. 고기 상했을 때 나는 냄새가 진동했다. 케이지에 든 닭들은 트레일러에 층층으로 쌓인채 물을 살포한 선풍기 바람을 맞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폐사(斃死)를 막기 위한 방법이다. 내가 끌고갈 화물도 닭고기라는 얘기다.

 

드랍앤훅이라서 트레일러를 내려 놓아야 했다. 미로 찾듯 꼬불꼬불 길을 돌아 트레일러 주차장에 갔다. 트럭이 간신히 회전할 수 있을 정도에 가운데 공간과 입구만 남겨두고 사방을 트레일러로 둘러쌌다. 나의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입구 쪽으로 다시 나가 후진으로 빈 공간에 대는 방법. 입구 오른쪽에 놓여진 트레일러를 어떻게 피하느냐가 관건(關鍵)이다. 앞뒤로 오가며 씨름하고 있자니 그 장애물이 된 트레일러를 누가 끌러 왔다. 내가 입구를 막고 있어 그도 어쩔 도리가 없다. 잘됐다 싶어 뒤나 좀 봐달라고 했다. 그 덕분에 무사히 트레일러를 댔다.

 

서류 수속 후 가져갈 트레일러를 찾았는데 바닥이 평평하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필 랜딩기어가 낮은 쪽에 위치했다. 트레일러 몸체가 트럭 드라이브 타이어 보다 낮아 후진하는데 걸렸다. 랜딩 기어를 올려줘야 한다. 트레일러 하중을 실은 랜딩기어를 올리는 일은 무지막지한 노동이다. 보통 사용하는 하이 기어로는 엄두도 못 내고 로우 기어를 써야 한다. 로우 기어는 힘은 덜 들지만 그만큼 많은 횟수를 돌려야 한다. 힘이 덜 든다고 쉽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내 체중을 실어 힘껏 돌려야 한다. 운동 된다. 삼사십 바퀴를 돌리고 나니 겨우 타이어가 트레일러 아래로 들어갈 정도 높이로 올라갔다. 서류도 복잡해서 준비 과정 마치고 출발은 9시가 넘었다. 오늘은 논스톱으로 8시간 정도를 갈 예정이다. 막판에 리퍼 연료 주유하느라 한번 멈췄다.

 

새벽 5시경에 배달지에 도착했다. 산의 암벽을 깎아 냉동창고로 쓰는 곳이다. 무슨 요새같다. 중간에 트럭 주차하는 곳도 있었지만 무조건 끝까지 내려갔다. 약속은 7시지만 일단 체크인은 해두자. 맨 아래 쪽에 내려가서도 트럭 주차 공간은 있었다. 다른 몇 명의 드라이버와 함께 체크인을 하러 갔다. 닥 번호는 CB로 연락한다며 채널을 열어 두라 했다. 나는 CB가 없다 했더니 7시에 다시 오라고 했다. CB를 사야 하나? CB로 연락하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전화 신호가 안 잡힌다.

 

트럭에서 자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630분이다. 야드 자키였다. 그는 메모지를 들고 있었다. 24번 닥에 대라고 했다. 24번 닥은 어디냐? 저쪽이다. 바위 절벽 아래에 닥이 있었다. 24번 닥은 가장 안쪽에서 두 번째다. 평소 방법으로는 댈 수 없다. 물리적으로 각도가 안 나온다. 나는 트럭에서 내려서 연구를 했다. 여기서 돌려서 우측으로 나간 다음 후진을 해야 한다. 이 경우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이다. 지난 번 사고도 블라인드 사이드로 후진하다 났다. 방법이 없으니 자주 내려서 확인하는 수 밖에. 생각대로 됐다. 뿌듯했다. 어제밤과 오늘 아침 모두 어려운 장소였다. 혼자서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해 성공했다.


0828 아까운 생닭1.jpg

 

기다리다 운전 가능 시간은 다 지났다. 서류를 받으러 가니 클레임이 있다. 두 상자가 파손(破損)돼 인수 거절이다. 비닐에 낱개 포장된 닭고기는 멀쩡하나 종이 박스가 찢어졌다. 도매 상품으로의 가치는 없어졌다. 한 상자에 닭고기 12개가 들었다. 판매가가 7달러 얼마니까 세금 붙으면 200달러치 정도다. 버려야 한다. 이 닭들은 어제 공장에서 본 케이지에 든 닭들과 같은 절차를 거쳤을 것이다. 그때 닭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허망했을까. 이러려고 내가 털뽑히고 목잘려서 죽었나 싶겠지. 닭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생닭을 어찌할 방법도 없다. 더구나 한두 마리도 아니고.

 

글렌에게서 다음 화물 제안이 들어왔다. 미주리에서 코네티컷으로 가는 화물이다. 내가 발송처에 오후 630분에나 도착할 수 있다고 했더니 취소하고 다른 화물을 기다리라 했다.

 

오프듀티 드라이브로 가장 가까운 트럭스탑으로 향했다. 냉방기는 계속 돌렸다. 트럭스탑 매니저에게 닭이 있는데 받겠냐고 물었다. 그는 생각을 하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서는 미안하다고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글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에 여기서 한시간 떨어진 곳에서 다른 드라이버를 만나 트레일러를 받은 후 내일 아침 10시까지 배달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리파워다.

 

회사 페북 그룹에 닭고기 사진을 올리고 닭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답글들이 곧이어 달렸다. 동물원이나 자선단체에 기부하라는 얘기다. 언제 그러고 있냐. 나는 트레일러 세차장 가서 치워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세차장 직원들이 나눠 가질 것이다. 큰 냉장고가 있다면. 회원 중 한 명이 자기 파트너가 그 근처에 산다고 했다. 그와 연락이 돼 닭을 받으러 오기로 했다. 다행이다. 그는 중간에 월마트에서 아이스박스를 사 왔다. 박스에는 닭 9마리가 들어갔다. 나머지는 그냥 실었다. 아직 차가우니까 빨리 가서 처리하면 될 것이다. 나는 마음의 짐을 덜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로 떠났다. 먼저 트레일러 내부 세척을 해야 했다. 그렇게 더럽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라 세척을 하는 게 예의다. 시간이 한참 걸렸다. 6시가 넘어 지척(咫尺)에 있는 트럭스탑에 들어갔다. 마침 누가 나간다. 앞뒤 생각 없이 그 자리에 대려고 세팅했다. 양쪽 트럭 사이로 들어가는 전형적인 트럭스탑 주차 형태다. 세팅이 약간 빗나갔다. 처음이 맞았는데 확신이 없어 조금 앞으로 움직였더니 왼쪽 트럭을 칠 판이다. 앞뒤로 끼어 길을 막고 곤란한 지경이 됐다. 아주 조금씩 움직이며 각을 틀었다. 또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이 되네. 내가 통로를 한참 막고 있으니 다른 드라이버들이 가만 있지 않았다. 나서서 뒤를 봐줬다. 양쪽에서 서로 다른 얘기를 해 헷갈렸다. 왼쪽에 있던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내 얘기를 들으라고. 알았다. 목소리 큰 놈이 대장이다. 그들 덕분에 무사히 주차했다. 나도 약간 뻔뻔해졌다. 길을 막고 곤란한 상황에서도 미안하거나 당황스럽지 않았다. 그저 운전에 집중했다. 도와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답답하니 나서서 도와준다. 그게 트럭스탑의 문화다.

 

상대방 운전사는 밤 10시가 넘어야 도착한다고 했다. 그 시간에는 트럭스탑에 자리가 없을텐데. 나는 오전 3시에 출발할 수 있다. 트레일러를 바꾸는 것이니 내가 주차한 자리에 상대방 트랙터가 들어오면 되지만 나는 어쩌나? 그때 자리가 나서 상대도 주차를 하면 좋다. 트랙터만 바꾸고 쉬다가 제 시간에 나가면 된다. 어찌되려는지 상황을 보자. 눈을 좀 붙여야겠다.

 

 

0829 트럭옆이 어둡다.jpg

 

등잔 밑, 아니 트럭 옆이 어둡다

 

 

밤운전 패턴을 오늘은 바꾸는가 했더니 도루묵이다. 발송처에서 10시간 휴식 채우고 자정에 출발이다. 모레 새벽까지 노스캐롤라이나 샐리스버리(Salisbury)에 배달 일정이지만 시간이 몇 시간 모자란다. 내일 낮에 어딘가에서 리파워해야 한다. 리파워의 연속이다.

 

오늘 아침 배달간 곳은 특이했다. 한가한데다 공간도 여유로운데 마당에 트레일러를 내려놓으라 했다. 야드자키가 닥에 댈 것이라 했다. 나야 좋지. 정말이지 어려운 거래처에서는 야드자키가 대신 좀 대줬으면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런데 여기 야드자키가 초보자인 모양이다. 젊은 친구인데 나보다 더 천천히 더 여러번 왔다갔다하며 댄다. 그것도 비뚤게 대서 나중에 다시 수정했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저럴 것 같으면 내가 댔지. 연습 삼아 일부러 시킨건가? 다른 드라이버들은 그냥 자기들이 댔다. 내가 잘못 알아 들었나? 그건 아니다. 내가 여기 처음 왔다고 해서 그런건가? 내가 중간에 받아 배달한 물건은 모빌 합성윤활유 큰 드럼통이었다.

 

배달처에서 나와 트럭 세차를 마치니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금방 싣고 나가서 트럭스탑에서 자고 아침에 출발하려고 했다. 3시 약속이지만 2시에 도착했다. 짐 싣는데 3시간 가까이 걸렸다. 운전시간은 1시간 남았다. 그냥 여기서 7시간 더 쉬고 가는게 낫다.

 

이곳이 닥킹이 은근히 까다로웠다. 평범해보이지만 닥 맞은편에 주차된 트레일러와의 거리가 가까워 후진에 방해가 됐다. 은근히 애를 먹고 있다가 다른 프라임 드라이버가 먼저 닥킹하라고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한바퀴 돌아 다시 세팅했다. 그래도 잘 안 된다. 먼저 주차한 프라임 드라이버가 와서 지도를 해줬다. 아 이런 곳에선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그 덕분에 중요한 것을 알았다. 내가 후진할 때 운전석 쪽 트럭 사이드를 잘 안 본다는 사실이다. 다른 트럭을 칠 뻔했다. 지난 번 사고도 그래서 났다. 트레일러에 온통 신경이 가 있다보니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정작 가까운 트럭에 신경을 못 썼다. 두 번이나 지적 받았다. 트럭과 트레일러가 각도가 꺾여 따로 놀다보니 생기는 일이다. 잘 명심해서 다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내가 싣고 가는 화물은 냉동피자인데 부피는 커도 무게는 별로 안 나간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g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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