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폭풍이 몰려온다. 오늘 아침까지 있었던 펜실베이니아는 내일과 모레 이틀간 고속도로에 트럭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지금은 인디애나에 있다. 지난번 네브라스카 가던 때와 같은 고속도로 플라자다. 남은 거리만 보면 내일 종일 달리면 배달처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울 것이다.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다. 일리노이에서부터 미드웨스트와 북동부 전역으로 겨울 폭풍이 주말 동안 몰아친다. 아이오와는 포함되지 않았다. 내일 인디애나만 잘 지나가면 괜찮을 것 같다. 지금 북동부에 있는 트럭 드라이버는 적어도 하루 이상 운행 못 하고 쉬어야 할 것이다. 인디애나도 트리플 트레일러와 하이 프로파일 오버사이즈를 비롯한 일부 화물에 대해 운행을 금지한다.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
가장 추운 날
아이오와주 어느 시골의 주유소 주차장에서 밤을 보낸다.
새벽 5시에 출발했다. 도로 상태는 괜찮았다. 밤새 내린 눈이 많지 않았고 제설(除雪) 작업도 잘 되었다. 그러나 곧 눈이 더 많이 내리면서 도로 상태도 나빠졌다. 와이퍼에 얼음이 끼면서 앞 유리가 제대로 닦이지 않아 시야를 가렸다. 다행히 얼마 안 가 트럭 주차장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얼음을 깨고 와이퍼를 작동하니 괜찮았다.
아이오와주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눈은 약해졌다. 인디애나주가 끝날 무렵에는 눈이 그쳤다. 아이오와주에 들어서니 해가 비췄다. 햇빛을 오랜만에 받는다.
오늘 인디애나와 아이오와에서 도랑에 빠지거나 전복된 많은 차와 트럭을 봤다. 회사에서도 많은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RA에서 사고 아니면 전화 걸지 말고 퀄컴 메시지로 보내라고 연락이 왔다. NJ, PA, NY 고속도로에서 운행 중인 트럭은 즉시 안전한 곳에 주차하라는 메시지도 왔다. 400달러 벌금을 받은 트럭이 있단다.
오늘도 아이오와 80 트럭스탑에 들렀다. 화장실도 이용하고 CB shop도 들를 예정이었다. CB샵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 날씨가 너무 추워 다음 기회에 가기로 했다. CB 라디오는 인터넷에서도 살 수 있지만, 최적의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튜닝이 필요하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그래서 고민이다. 지금까지 없어도 괜찮았고 앞으로도 많이 안 쓸 것 같은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왕 하는 것 조금 더 비용을 들이더라도 제대로 하는 게 좋을까?
인디애나주 트럭스탑에서 주유하며 앤타이 젤(Anti Gel) 용액을 샀다. 디젤유는 기온이 떨어지면 젤리처럼 굳는 특성이 있다. 연료 분사구가 막혀 시동이 안 걸릴 수 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연료첨가제다. 화씨 20도(섭씨 영하 6도) 이하로 내려가면 연료에 넣으라고 권장한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내가 다닌 곳 중에서는 그 정도로 추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내가 트럭 일 시작한 이후로 가장 추운 날이다. 화씨 -1도니 섭씨 영하 18도다. 리퍼는 보통 냉장이나 냉동 모드로 돌지만, 오늘 같은 날은 난방 모드다.
70시간을 거의 다 썼다. 1시간 19분 남았다. 자정 지나면 9시간 12분이 들어온다. 34시간 리셋 하지 않는 이상 매일 8일 전의 근무 시간만큼 새로 받는다. 리캡(recap)이라고 부른다.
거의 버려진 듯한 분위기의 시골 트럭스탑에 주차했다. 트레일러가 주로 주차돼있고 트럭은 몇 대 없다. 다이너가 있어 가보니 거의 손님이 없다. 넓은 식당이 텅 비고 두 노인 남녀가 식사하고 있다. 여기서 주유하는 트럭도 못 봤다. 장사가 되나? 인건비도 못 건질 것 같은데. 나라도 팔아줘야 할 것 같아서 식당에서 오늘의 스페셜인 스테이크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맛은 뭐 그럭저럭 괜찮았다.
APU에서 엄청난 연기가 났다. 평소에도 매연(煤煙) 냄새는 심하지만, 이 정도로 연기가 난 적은 없다. 아무래도 연료첨가제 때문인 것 같다. 연기뿐 아니라 APU 엔진 돌아가는 소리도 평소보다 요란하다. 페북 게시판에 물어보니 내 트럭에 장착된 릭마스터(Rig Master) 제품이 안 좋다는 얘기와 함께, 앤타이 젤을 쓰면 연기가 날 수 있다는 답이 올라왔다. 누구는 트럭에 불 난 줄 알고 사람들이 문을 두드려 깨우더란다. 이거 미안해서 복잡한 트럭스탑에 가겠나.
내일은 천천히 일어나 발송처에 가봐야겠다. 자정에 배달인데 일찍 받아줄지 모르겠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있으려나.
텍사스로 달려라
솔로 시작 이후 처음으로 텍사스 배달 화물을 받았다.
간밤에 꽤 추웠다. 히터를 중간 정도 틀었는데도 실내 온도가 60도를 넘지 못했다. 평소 같으면 80도를 넘어 덥다 느꼈을 강도다. 밤새 리퍼와 APU가 번갈아 굉음을 내뿜었다. APU에서는 작동할 때마다 연기가 계속 나왔다.
오늘 운동은 모두 서서 하는 동작이지만 야외에서 할 수 있는 기온이 아니다. 매점과 화장실 사이에 라운지로 썼던 것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창고 분위기다. 80년대 것으로 보이는 전자오락기도 있었다. 그 공간에서 운동하고 체중을 쟀다. 체중은 그대로인데 다른 수치가 안 좋아졌다. 신체 나이 50세까지 올라갔다. 시피위가 하도 쌀 먹지 말라고 해서 지난주 밥을 한 끼도 안 먹었다. 어떻게 되나 보려고. 쌀은 그저 탄수화물 덩어리가 아니다. 밥 위주의 식사는 반찬을 챙겨 먹어 영양의 균형을 이룬다. 밥을 안 먹는 시피위가 그런 것을 알 턱이 없다. 백미에 탄수화물 성분이 많기는 하나 칼로리 자체는 많지 않다. 현미를 먹으면 더 좋기는 하겠지.
배달처로 출발했다. 트럭에서도 엄청난 배기가스가 쏟아져 나왔다. 어제도 그랬나? 트럭 뒤에 휘날리는 것이 연기인지 눈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날씨가 차가워 엔진이 충분히 뜨겁지 못하면 발생하는 불연소 현상이다. 엔진이 계속 작동하면서 배기가스도 사라졌다. APU는 계속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동작과 정지를 반복하기 때문에 엔진이 충분히 가열될 시간이 없다. 그러니 계속 연기를 뿜어낼밖에.
배달처에 도착하니 일요일이라 한산하긴 해도 일을 하고 있었다. 접수도 바로 받아줬다. 12시간 이상 시간을 벌었다. 트레일러를 열어 보니 짐이 한가득이다. 무게가 가벼워 짐이 얼마 안 될 줄 알았더니 부피가 컸다. 마시멜로라도 되나? 트레일러 가득 채우고도 5천 파운드가 안 되지?
배달 마치고 나와 가까운 주유소로 갔다. 이곳은 어제 지냈던 곳보다 더 한산했다. 쉬고 있자니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미네소타 워싱톤(Worthington)에서 텍사스 포트 워스(Fort Worth)로 가는 화물이다. 발송처로 가는 경로에 트럭 세차장은 없었다. 있었다 해도 일요일이라 문을 안 열었을 것이다. 빗자루로 쓸어 냈다. 장갑을 껴도 손이 몹시 시렸다.
북쪽으로 달려 미네소타로 향했다. 발송처에 도착했다. 정문 경비는 트레일러를 옆 세차장 공터에 내려놓고 가져갈 트레일러를 끌고 와 서류를 받아 가라고 했다. 열심히 안 쓸었어도 되었구만. 리퍼 연료를 가득 채우고 와야 했는데 깜박했다. 절반 이상 남았으니 큰 문제는 안 될 것이다.
미네소타에서 다시 남쪽 아이오와로 내려갔다. 29번 고속도로는 네브라스카주의 경계면을 따라 나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오마하 건너편의 파일럿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웠다. 대도시 옆이라 한 곳도 남은 주차 공간이 없었다. 더 가서 다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멈추기로 했다. 그다음 휴게소는 300마일이 넘어야 나온다. 휴게소에 도착하니 트럭이 한 대만 서 있다. 바닥에 눈이 쌓여 주차선이 잘 보이지 않았다. 대충 비슷하게 세웠다. 다른 트럭은 곧 떠났다. 나 혼자 남았다. 밤이 깊어 다른 트럭들도 들어왔지만, 아직도 자리는 있다. APU 매연은 간단하게 해결됐다. APU가 시동이 안 걸린다. (앤타이 젤 약발도 떨어진 모양이다) 평소에도 잘 안 걸렸는데, 날씨가 추우니 더 하다. 발전기는 안 돌아가도 히터는 작동한다. 전열 기구를 못 쓰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현재 기온은 화씨 10도, 섭씨 영하 12도다. 이 정도만 돼도 살 것 같다.
남쪽은 따뜻해
살을 에는 추위에서 봄 날씨로 왔다. 배달처를 100마일 남긴 오클라호마 Ardmore의 Flying J 트럭스탑에 멈췄다. 오늘 달린 주는 아이오와 – 네브래스카 – 캔자스 – 오클라호마다.
트럭을 달려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한 시간이 다르게 기온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바깥 풍경도 달라졌다. 캔자스까지만 와도 강과 호수에 살얼음이 끼고 그 아래로 물이 흘렀다. 오클라호마에 오니 눈과 얼음은 사라졌다. 오클라호마 유전지대(oil field)를 지나왔다. 유전지대라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시추기(試錐機)들이 줄지어 있고 뜨거운 화염과 시커먼 연기를 뿜는 광경일 텐데, 밭 중간에 일명 메뚜기라고 부르는 소형 시추기가 한두 대 천천히 펌프질하는 정도다. 저기서 석유가 나오는 게 맞나 싶다. 4층 건물 높이 정도의 큰 시추기도 더러 보았다. 연기 같은 것은 전혀 안 나온다. 네이슨은 예전에 오일필드에서 일했다고 했다. 지금도 텍사스 오일필드에서 트럭을 몰면 수입이 좋다고 한다.
지나오는 길에 인디언 보호구역을 여럿 지났다. 인디언 마을을 본 것은 아니고 이름표만 봤다. 그리고 카지노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생계 수단으로 허가한 것이리라.
오늘 아침 남들 자는 시간에 일어나 화장실 건물에서 운동했다. 차가운 날씨에 몸을 쓴 탓인지 근육이 좀 아팠다. 저녁에 뜨거운 샤워를 하고 나서야 풀렸다.
가이암을 보니 온통 소금투성이다. 고생 많았다. 내일 배달 후에 트레일러와 함께 세차해 줘야겠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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