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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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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연과 선택의 조합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20-01-10 (금) 22: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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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을 마치고 같은 장소에서 다음 화물을 받았다. 운이 좋다. 일요일 중으로 솔트레이크시티 북쪽의 Ogden에 배달해야 한다. 부지런히 가면 일정은 괜찮다.

 

날씨가 풀린 건지 미주리에 들어서니 포근하다. 춥다가 따뜻해지니 봄날 같다.

 

폰툰비치(Pontoon Beach, IL)에서 주유를 하는데 DEF 노즐을 꺼내 들어도 주유기에서 인식을 못 했다. DEF 용액이야 여유가 있으니 다음 주유에 넣어도 된다. 문제는 다음으로 진행이 안 되니 리퍼 연료도 못 넣었다. 리퍼 연료는 별로 여유가 없다. 가다가 넣기로 했다.

 

주유하려면 미리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경로상에 있는 주유소 코드를 알려주고 리퍼 연료를 넣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승인 메시지가 왔다.

 

히긴스빌(Higginsville, MO) 파일럿에 들렀더니 무슨 일인지 모든 연료펌프가 사용중지다. 170마일 떨어진 조셉(Joseph, MO) 러브스에서 주유하겠다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역시 승인이 났다.

 

러브스에 도착해 리퍼 연료통을 채웠다. 1시간 30분 남았는데 여기서 쉬고 가기로 했다. 규모도 크고 워낙 이른 시간인지라 자리도 많았다.

 

원래 여기서 자려던 계획은 아니었다. 앞서 두 곳의 트럭스탑에서 리퍼 연료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곳에 왔다. 중간에 다른 주유소도 있었지만, 이곳이 적합했다. 두 번의 예기치 않았던 상황과 한 번의 내 선택이 지금 나를 여기에 있게 만들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어쩔 수 없는 외부 상황의 발생과 그에 따른 나의 대처와 선택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인생은 오로지 운명에 의해서만도 아니고, 내 의지에 의해서만도 아닌 운명과 의지의 조합으로 이뤄진 것 같다. 누구나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내 인생은 내 방식대로 살면 된다. 남의 플레이를 따라 할 필요 없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살아야 행복하다. 화려해 보여도 타인의 삶을 살면 즐겁지 않다.

 

내일은 네브래스카에서 잘 예정이다.

 

 

 

자연이 그린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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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트레이크시티 프라임 터미널에 왔다. 이틀간 네브래스카와 와이오밍을 횡단(橫斷)했다. 와이오밍은 올 때마다 새롭다. 빛의 조화다. 같은 장소라도 빛의 상태에 따라 달리 보인다. 빛은 계절, 시간,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전면 유리창을 캔버스 삼아 자연이 만든 풍경화 속으로 달린다.

 

Ogden 허쉬에 배달을 마치고 솔트레이크시티로 향했다. 내일 아침 Syracuse, UT에 배달을 마쳐야 할 트레일러가 그곳에 있다. 거리는 30마일 정도라 돈은 안 되고 번거롭기만 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나도 얼마 전에 덴버에 배달하는 화물을 덴버 야드에 미리 내려놓은 적이 있다. 다른 누군가가 그 화물을 배달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빚을 갚는 셈이다.

 

야드에 온 김에 트레일러 세차를 하면서 트럭도 같이 했다. 트럭이 온통 허옇다. 일주일 전 내린 눈 제설작업으로 뿌린 소금이다.

 

네브래스카 들어선 이후로는 날씨가 온화하다. 와이오밍과 유타는 더 따뜻했다. 다만 와이오밍 구간의 바람은 여전했다. I-80 와이오밍 특정 구간은 강한 바람으로 툭하면 통행금지다. 어제는 순간 풍속 50마일 이상으로 주의보가 내려졌다. 새벽에 길은 미끄럽고 바람은 강해 갓길에 비상주차한 트럭이 많았다. 나는 30마일 정도로 서행하며 나갔다. 강풍 주의보는 저녁까지다. 쉰다고 좋아질 상황이 아니다. 허허벌판에 부는 바람은 매섭다.

 

어제 잠은 Burns, WY에 있는 TA에서 잤다. 한국에 있는 절친 P와 몇 시간을 통화했다. 대학 후배인 P는 중학교 동창이다. 중학교 때는 서로 몰랐다. 족보 조사를 하다가 알았다. 서로 가장 많은 부분을 알고 지내는 사이다. 직장도 한때 같이 다녔다. P와 얘기하면 과거의 추억이 아련하다. 한편으로는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뒤틀리고 조작되는지도 깨닫는다. 고등학교 시절 있었다고 생각한 일이 사실은 대학 때였다. 내 착각이었다. 많은 부분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는 소중하다.

 

오는 길에 Rock Springs, WY에 있는 월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전에도 온 적 있다. 이 정도면 다음 주 집에 갈 때까지는 버티리라.

 

석양에 들어선 솔트레이크시티는 아름답다. 운전하느라 사진 대신 눈으로 풍경을 담는다. 이 기억도 어느 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겠지.

 

 

시간을 다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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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에 깼다. 알람은 5시에 맞춰 놨는데.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동부보다 2시간 늦다. 몸은 평소 깨는 시간을 기억했다. 다시 잠도 오지 않아 샤워하러 갔다. 솔트레이크시티 터미널은 공사 중이라 시설이 미비한 편이다. 구내식당이 없어 직원들은 도시락을 싸거나 배달시켜 먹는다. 샤워실도 따로 없고 락커룸 안에 있다.

 

가져갈 트레일러 연결해 나갔다. 배달 품목은 양파다. 워싱턴주에서 오는 물건이다. Onions 52가 배달처다. 유타가 양파가 유명한가? 제시간에 도착해 배달 마치고 근처 트럭스탑으로 향하는 중에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고속도로 진입로 갓길에 세우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북쪽으로 향했는데 갈 방향은 남쪽이다.

 

솔트레이크시티 네슬레에서 아이스크림을 실어 피닉스에 배달한다. 트레일러 와쉬아웃을 하려고 블루비콘에 들렀더니 난리도 아니다. 진입로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도로 바깥까지 서 있다. 내가 끼어들 공간이 없다. 설령 끼어든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솔트레이크시티 터미널로 향했다. 그편이 빠르겠다.

 

터미널 인바운드에서 트레일러를 검사하더니 수리가 필요하단다. 그래 문제 좀 있어 보이더라. 야드에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트레일러샵에 빈 트레일러 받으러 갔다. ! 빈 트레일러가 없단다. 수리 끝난 트레일러가 나오면 연락 준단다.

 

오전 11시 약속인데 이미 늦었고 도착시각을 기약할 수도 없다. 브라이언에게 연락했다. 잠시 후 54번 베이에서 트레일러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트레일러를 연결하고 보니 내부가 심하게 지저분하다. 12시에 도착한다고 브라이언에게 알렸다. 와쉬베이로 갔더니 앞에 트럭 세 대가 줄 섰다. 기다렸다 와쉬아웃을 마치고 출발했다. 12시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발송처에 도착했으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지나쳤다. 다른 네슬레 공장 생각하고 방심했다. 솔트레이크시티 네슬레는 일반 상업지구 좁은 도로에 있었다. ? 하는 사이에 입구를 지나쳤다. 뒤에 차들이 따라붙어 후진도 어렵다. 여기서 회전도 장난 아니다. 우회전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교차로가 나올 때까지 직진했다. 한참을 돌아 고속도로를 다시 타고 왔다. 이번에는 아예 넓게 회전하고 뒤 차량을 막으며 천천히 접근해 발송처로 들어섰다. 여느 네슬레 공장처럼 진입로나 경비 초소 같은 것은 없었다. 바로 주차장이다. 발송 사무실도 안 보여 메인오피스에 갔더니 점심 시간인지 아무도 없다. 벨을 누르니 어떤 남자가 나와서 발송 사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간판도 없고 아는 사람이나 갈 수 있는 위치였다. 앞 트럭이 짐을 싣고 있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화물은 가벼웠다. 팰릿 9개다. 트레일러 절반도 안 찼다. 로드락 2개를 설치했다. 서류 받고 출발했다. 70시간을 거의 다 썼다. 3시간 정도 갈 수 있다. 80마일 떨어진 네피(Nephi)까지 가기로 했다. 내일 들어오는 시간은 6시간 40. 이 시간을 다 써도 배달처까지 못 간다. 배달은 모레에나 가능하다.

 

I-15을 타고 남쪽으로 달렸다. 황금빛 유타. 본래 나무가 많지 않은 산과 추수가 끝난 가을 들판은 온통 황금빛이다. 왼쪽은 험준한 로키산맥이고 오른쪽은 부드러운 능선(稜線)이다. 도로는 그 사이 계곡으로 났다. 도로를 따라 도시와 마을이 생겼다. 멀리 산등성이를 따라 주택단지가 이어졌다. 날씨도 포근하고 살기에 괜찮아 보인다.

 

 

89번 도로와 Glen Can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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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사막에서 밤을 난다. 13분 남았으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US-89 카메론(Cameron, AZ)과 그레이마운틴(Gray Mountain)의 중간 지점이다. 이 일대는 마땅한 트럭스탑이 없다. 고속도로 갓길에 트럭 한두 대 주차할 작은 공터가 간혹 나온다. 지나는 차량만 없으면 완전한 암흑과 고요다. 날이 흐려 별은 볼 수 없다.

 

오늘 새벽 1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아침까지 잤다. 샤워로 시작하는 하루도 괜찮다. 오늘은 8시간 일할 수 있다. 6시에 출발할 때는 아직 어두웠다. 서서히 여명이 터오고 날이 밝았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 우선 캄캄한 밤에 달리기에는 위험한 경로였다. 무엇보다 밤에 왔다면 경치를 못 봤을 것이다.

 

유타 남부에서 애리조나 북부로 이어지는 US-89 구간은 단연 최고다. 죽기 전에 한번은 드라이브해봐야 할 코스에 올려도 부족하지 않다. 장쾌한 스케일에 저절로 감탄사가 터졌다. 트럭에 좋은 동영상 카메라를 설치해야겠다. Glen Canyon은 압권이었다. 오늘은 종일 경치 관광 모드다. 풍경의 변화가 드라마틱했다.

 

영주씨가 이 코스를 추천했었는데 다니던 길이 아니라 잊고 있었다. 다음에 지나면 좀 더 시간을 들여 자세히 봐야지.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유타를 벗어날 즈음 통관소(Port of Entry)에 불려 들어갔다. 나름 스탑사인에 선다고 서고, 저울도 서행해서 지났는데 뒤로 빠꾸당했다. 혼자 통관소를 지키는 중년 남자가 나오더니 주차하고 서류 갖고 오란다. 서류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내가 스탑사인에 완전히 서지 않았고, 규정보다 빠른 속도로 저울을 지났단다. 시속 3마일 이하로 가야 한단다. 나는 한 5마일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 중량측정소(Weigh Station)는 그 정도 속도로 지나도 문제없다. 공연히 트집을 잡고 싶었던 것일까? 인스펙션 서류에는 위반사항이 적시됐다. 벌금이라도 나오는 걸까? 모르겠다. 다음엔 조심해서 지나야겠다.

 

 

 

비 오는 날 종일 트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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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에 출발했다. 아직 약속 시각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오전 7시에는 출근하겠지 싶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바깥 풍경 감상은 포기했다. 비까지 내려 운전은 더 힘들고 조심스러웠다. 낮에 왔더라면 경치가 좋았을 것 같다.

 

졸리고 피곤해 휴게소 입구 갓길에 세우고 10분 정도 누웠다. 그 정도만 쉬어도 피로가 풀린다. 몇 차례 높은 고개를 넘어 피닉스에 도착했다. 배달 약속 시각이 정해졌다. 10시다. ? 일찍 받아줄 수 있냐고 물어봐야겠다.

 

배달처 바깥 도로에 주차하고 접수 사무실로 갔다. 오후 8시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접수 시간은 오후 8시부터 오전 3시까지였다. 이런 젠장, 약속 시각을 미리 알려줬으면 아침까지 자고 낮에 왔을 것을. 경치도 보면서 천천히 올 수 있었는데.

 

일찍 와서 좋은 점은 한 가지다. 출근 시간 전이라 트럭 주차할 공간이 있었다. 얼마 안 가 빈자리는 출근자들의 차로 찼다. 나 말고 다른 트럭은 없었다. 피닉스 외곽이고 통행량도 많지 않아 종일 주차해도 문제는 안 될 것 같다. 나 때문에 주차 못 했을 차량 3대의 운전자에게는 미안하게 됐다.

 

피닉스는 오후 330분까지 홍수 주의보가 났다. 비가 퍼붓는다. 밤까지 종일 트럭에 있게 생겼다. 이따 저녁에라도 비가 그치면 걸어서 근처 구경이라도 해야겠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식당 몇 개가 보인다. 방향은 제각각이지만 태국, 인도, 일본 식당이 있다. 근데 비가 그쳐야 말이지. 날씨예보에는 오후 4~5시에 잠깐 그치고 내일까지 계속 내린다.

 

다음 화물 제안이 들어왔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일 아침 이 근방에서 받아서 다음 주 월요일과 화요일까지 펜실베이니아와 뉴저지까지 간다. 트레비스 말로는 제날짜에 집에 갈 수 있는 최상이자 유일한 옵션이란다. 집에 가는 날짜가 이틀 정도 당겨질 듯하다.

 

 

과식보다는 단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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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가 되어 사무실로 갔다. 내 서류를 받더니 트럭에 가 있으란다. 때가 되면 문을 두드리겠다고. 앞서 트럭이 짐을 내리면 내 차례다. 결국, 10시가 지나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곳도 좁은 장소지만 다른 트럭이 없어 후진에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다 내릴 즈음에 다음 트럭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화물을 받으러 가기 전에 트럭스탑에 들러 리퍼 연료를 가득 채웠다. 트레일러 내부는 깨끗한 편이라 그냥 갔다. 발송처에 도착하니 경비가 트레일러 내부를 보더니 청소를 하고 오란다. -20(영하 20)로 냉동했던 트레일러라 안에 문짝 가까이 얼음도 잔뜩 얼어붙었다. 아까 주유하면서 세차도 할 것을 그랬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있다. 세차하고 다시 가니 오케이다.

 

내일 아침 8시가 약속인데 화물은 준비돼 있었다. JBSTyson같이 고기를 싣는 곳들은 왜 야드가 흙바닥일까? 종일 내린 비로 진창이다. 미끄럽고 신발에 진흙이 달라붙었다. 다행히 내가 작업하는 동안에는 비가 멈췄다.

 

화물을 싣고 밤새 달렸다. 중간에 30분 휴식으로도 부족해 나중에 2시간을 쉬면서 잠을 보충했다. 어젯밤 11시에 시작했으니 오늘 오후 1시에는 멈춰야 한다. 시간이 허락하는 데까지는 가자.

 

스카이시티 트럭스탑에 도착하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같이 있는 카지노 호텔에서 뷔페라도 먹을까 했는데 식욕이 없다. 운전하면서 먹은 게 체했나 보다.

 

비는 주르륵 내리고 목줄 없는 강아지 세 마리가 주차장을 배회했다. 트럭 운전사를 따라 다니며 먹을 거라도 얻으려는 양이다. 이곳 리뷰를 읽었을 때 약 십여 마리의 개떼가 돌아다녀서 자기 개를 데리고 내리기 무서웠다는 내용이 몇 건 있었다. 내가 본 개들은 중형견 크기에 사나워 보이지 않았다. 비에 젖어 조금 안쓰러웠다. 나하고 눈이 맞으니 내게로 왔다. 달리 줄 것도 없어 식빵 몇 조각을 잘라서 던져줬다. 땅에 떨어진 식빵은 물기를 머금고 금방 축축해졌다. 개들은 기뻐하는 기색도 없이 냄새를 맡다 먹기 시작했다.

 

두통에는 자는 게 약이다. 계속 잤다. 중간중간 깼지만, 두통은 여전했다. 12시간을 넘게 내리 잠만 잤다. 오늘 새벽에 일어났을 때 약간 호전은 됐지만, 두통은 계속됐다. 단식하기로 했다. 꿀차를 끓여 마셨다.

 

운전을 시작하고 두어 시간이 지나자 두통은 사그라졌다. 4시간 후 주유한 후에는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I-40 애리조나와 뉴멕시코는 네이슨과 와봤다. 그때 나는 낮에는 자고 밤에 운전했다. 일몰, 일출 전 빛이 있을 때 풍경을 보거나 낮에 안 잘 때 조수석에서 본 풍경이 전부다. 그러니 내 기억은 드문드문 부분적이다.

 

겨울철에는 야간 운전이 불가피하다. 12시간 이상 일하는데 낮이 밤보다 짧다. 새벽 서너 시에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지기 전 주차하는 게 좋다.

 

뉴멕시코, 텍사스, 오클라호마에 왔다. 오클라호마시티는 대도시지만 트럭스탑이 여럿 있고 주차 사정이 좋다. TA에 온 이유는 컨츄리 프라이드 식당 때문이다. 샐러드바에서 부족한 채소를 보충할 수 있다. 금요일 스페셜은 무제한 생선 또는 튀김 요리다. 생선도 먹기 귀한 것이라 생선으로 주문했다. 수프에 샐러드, 생선 두 접시를 먹었더니 배가 터질 지경에 정신이 혼미(昏迷)하다. 과식보다 단식이 낫다.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혼자 사 먹는 밥은 맛없다. 귀찮아도 내가 만들어 먹는 게 맛있다.

 

오늘 법원에서 히어링이 있었다. 나는 전화 참석으로 대신했다. 진실을 말할 것을 선서하고 내 신분 확인을 마친 후 판사의 설명을 듣고 내 의사를 밝혔다. 내용은 간단했고 한국어 통역도 제공됐다. 택시 사고 4년 만에 합의점을 찾아간다. 판사는 3~4주 후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오늘은 600마일 넘게 달렸다. 평지라서 가능했다. 트럭에 속도제한이 있는지라 웬만해선 600마일을 넘기지 못한다. 내일도 부지런히 가야 한다. 최소 500마일은 넘겨야 하고 가능하면 600마일 가까이가 좋다. I-44를 타고 가기에 본사를 지나지만 들를 시간은 없다.

 

 

3분의 2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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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벽 출발. 40%는 밤 운전, 60%는 낮 운전이다. 오늘은 586마일 달렸다. 어제보다 조금 짧게 운전했으니 페이스는 비슷하다.

 

오클라호마 미주리 일리노이에 왔다. 내일은 인디애나 오하이오를 지나 펜실베이니아까지 간다. 모레 오전 7시 배달이니 근처 주차 가능한 곳에서 밤을 날 예정이다. 사흘을 열심히 달린 덕분에 내일부터는 약간의 여유가 있다.

 

미주리에 들어선 후로는 익숙한 풍경이다. 이번에 캘리포니아까지는 아니어도 꽤 서쪽으로 갔다. 미국 땅이 넓다. 며칠을 달려도 멀었다.

 

내일은 동부에 들어서니 더 일찍 움직이는 게 좋다. 그동안 서부와 중부에서 주차 걱정 없이 잘 다녔다.

 

 

물병 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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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배달도 어느덧 끝이 보인다. 내일 아침 1차 배달과 모레 아침 최종 배달을 마치면 추수감사절까지 집에서 쉰다. 다음 트립을 나가면 1월 첫째 주까지 밖에서 지낸다.

 

오늘은 펜실베이니아에 입성했고 해 질 무렵 휴게소에 주차했다. 펜실베이니아만 와도 주차가 신경 쓰인다.

 

트럭에서 생활하니 먹고 마시는 일이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물이 으뜸이다. 생으로 마시는 물은 플라스틱병에 든 물을 사서 마신다. 요리나 커피, 차를 끓이는 물은 휴게소에서 정수된 물을 물통에 담아 사용한다.

 

대부분 휴게소에는 스위치를 누르면 샘물처럼 물이 솟는 급수대가 설치됐다. 이게 은근히 불편하고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도 거의 못 봤다. 적은 숫자지만 몇몇 휴게소나 거래처에는 물병에 담을 수 있는 급수대가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면 물병용 급수대가 널리 보급돼야 한다. 여행자들이 휴게소에서 입을 대고 마셔봐야 양도 얼마 안 되고 이동 중에는 시중에 파는 500cc 생수병을 이용한다. 생수병으로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도 엄청날 것이다.

 

오하이오주가 이 부분에서는 앞서간다. 졸졸 흐르는 물을 1갤런 통에 담으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계속 손잡이를 누르고 있기도 불편하다. 물병 급수대는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물이 나오고 시간도 덜 걸린다. 사용빈도가 낮은 분수형 급수대를 대체해 물병용 급수대가 널리 보급돼야 한다. 병에 담은 물은 적어도 이물질이 없는지 정수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된다. 내 경우에는 대부분 끓여서 이용하니 세균 걱정도 없다. 휴대용 정수기도 갖고 다니지만 사용한 일은 없다.

 

 

해고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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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배달처는 종합적으로 어려운 곳이었다. 최고 난도는 아니어도 찾아가는 길, 업무 절차, 닥의 위치 등 골고루 영향을 미쳤다. 배달을 마치기까지 사무실 세 곳을 들렀다. 주차하는 곳, 일차 체크인, 배달서류 접수 등 제각각이었다. 이곳엔 처음이라 혼란이 컸다. 화물 하차는 1시간도 안 돼 끝났다.

 

다시 최종 배달처로 출발. 목표지점 18마일 앞둔 고속도로 플라자에 왔다. 이곳은 공간이 좁아 빠져나갈 때 어렵다는 평이 있었다. 와보니 과연 그랬다. 다른 차가 나가면서 자기 트럭 앞부분을 긁었다는 리뷰도 있었다. 입구 근처에 빈자리가 보이기에 얼른 주차했다. 걸어서 출구 쪽으로 갔다. 안에 빈자리가 더 많았다. 이미 주차했으니 거기로 옮길 순 없다. 끝까지 가봤다. 출구에 몇 자리가 비었다. 그곳은 나갈 때 아무 지장 없는 위치다. 게다가 지금 주차한 위치에서 이 자리로 올 수 있다. 트럭으로 돌아와 위치를 옮겼다. 그냥 앞으로 빼면 바로 진출로다. 마치 출구를 막고 도로 위에 주차한 기분이다. 주차할 때 안전하게 나갈 수 있는지도 신경 쓸 부분이다.

 

브라이언에게서 안전한 곳에 주차하면 전화하라고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서 잘릴 것 같다. 며칠 전 유타에서 받았던 딱지 때문이다. 회사 전체 6,800명 중에서 내가 무려 5위란다. 위험한 드라이버 5. 200위 밖으로 나가려고 무척 노력했고 운전도 조심했건만 결과는 나빠만 진다. 스탑사인에 서지 않고 과속으로 지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안전 담당자들이 걱정할 만도 하다. 시속 5마일이 과속이라니. 나는 그때 설설 기어갔다. 시속 3마일 제한속도에 시속 5마일로 지났다고 과속이란다. 브라이언에게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바퀴 축마다 서야 하는데 몰라서 천천히 그냥 지났다고. 그런 변명이 도움이 되려나 모르겠다. 지난달에 비록 경고였지만, 스탑 사인에 서지 않았다는 인스펙션 리포트를 받았다. 그때도 사실은 트레일러 전원 라인이 빠져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지 않아서 오해를 샀다. 나는 스탑사인에는 반드시 선다. 해프닝에 가까운 일련의 사건이 내 순위를 급상승시켰고 해고(解雇) 위기에 몰렸다.

 

억울하다기보다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생각해본다. 프라임이 나하고 안 맞나? 처음 프라임에 입사할 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최근의 일은 다소 억울하지만, 그동안 내가 쳤던 사고를 생각하면 잘려도 할 말이 없다.

 

브라이언은 추수감사절 이후에 나를 스프링필드 본사로 보내기로 했다. 거기서 브라이언과 면담하고 안전부서에서의 평가도 있을 예정이다. 해고 여부는 그 자리에서 판가름 난다. 겨우 쓸만한 트럭커가 됐는데 회사에서 잘리다니. 프라임은 기껏 드라이버 키워서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다.

 

해고를 걱정하진 않는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속담을 믿는다. 다른 회사에 취직은 어렵지 않다. 단지 이런 식으로 끝내기엔 기분이 안 좋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으니 두고 보자.

 

 

업스테이트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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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을 마치고 트레일러 세차와 리퍼 연료 주유를 위해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트로피카나에 트레일러 내려놓고 집에 갈 작정이었다. 갑자기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가까운 서비스 플라자에 세우고 내용을 확인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받아서 업스테이트 뉴욕으로 가는 화물이다. 목요일부터 쉬겠다고는 했지만, 집 가까이 온 김에 일찍 갈 생각이었다. 같은 뉴욕주라도 극과 극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수원이라면 부산까지 갔다가 다시 서울로 오는 격이다.

 

어제 내가 이번 화물 마치고 집에 가겠다 했더니 브라이언은 가능한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자기 일하는 방식이 있다며. 보통은 내 요구대로 들어주는데 이번에는 굳이 화물을 주는 걸까? 오늘 집에 가면 금요일 복귀한다. 땡스기빙데이 주말은 일하는 곳이 드물 것이다. 자칫하면 사흘을 일없이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브라이언이 그 상황을 고려한 것 같다.

 

배달할 곳이 두 곳이다. 한 곳은 내일 아침 830까지 가야 한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가능한 일정이다. 허쉬로 가는 길에 알렌타운에 들러 트레일러 세차를 했다. 허쉬에서 트레일러를 연결해 나왔을 때는 4시간도 채 안 남았다.

 

I-81 북쪽방향 마일마커 145지점에서 트레일러 전복 사고로 길이 막혔다. 내가 그곳을 지날 때는 막 수습이 돼 파손된 트럭을 옮기고 있었다.

 

뉴욕주 첫 휴게소에 들어섰다. 시간은 1시간 남았다. 둘째 열에 주차했는데 나갈 때 고생할 것 같다. 앞 열은 이미 다른 트럭이 다 차지해 어쩔 수 없다.

 

이 휴게소는 시설과 수준에서 내가 가본 아름다운 휴게소 상위 5위에 든다. 물병 급수대도 있고, 실내에 한하지만, 와이파이 속도도 빠르다. 카페처럼 앉을 수 있는 테이블도 있다. 노트북 들고 일하러 와도 되겠다.

 

8시간 휴식을 취했는데도 운전 가능 시간은 1시간이다. 어제 14시간 중에서 13시간을 썼기 때문이다. 첫 배달지까지 3시간은 가야 한다. 2시간을 더 쉬어서 10시간 휴식을 채운 후 11시간을 새로 받아서 움직일밖에.

 

기다리는 동안 첫 열에 트럭 한 대가 빠졌다. 내 바로 앞은 아니고 한 칸 왼쪽이다. 그래도 그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내 왼쪽 트럭이 시동을 켰다. 가려는 것인지 나처럼 앞 열로 이동하려는 것인지 의도를 모르겠다. 좀 기다려도 움직임이 없길래 내가 먼저 이동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잠시 후 그 트럭은 오른쪽으로 꺾어 빠져나갔다. 내가 자리를 비워줬으니 그 트럭도 나가기 수월했을 것이다. 520분을 기해 출발했다.

 

가는 길은 대부분 산악 지대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업스테이트 뉴욕도 경관이 수려한 편이다. 산에 침엽수가 많아 초겨울이어도 산세가 여전하다.

 

1차 배달처 근처에서 길을 잘못 들었지만 얼마 안 돼 복귀했다. 7분 정도 허비했다.

 

암스테르담의 타켓 물류센터인데 처음 온다. 절차가 다른 곳과 달랐다. 일단 야드에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밥테일 주차구역에 세운 후 사무실에서 서류를 접수한다. 트레일러는 야드자키가 닥으로 옮긴다. 얼핏 생각하면 편할 것 같지만, 드랍 야드의 간격이 닥보다 훨씬 좁다. 짐 내리는데 한 4시간 30분 걸리니 밥테일로 밖에 나가든지 트럭에서 기다리든지 알아서 하란다. 갈 데도 없고, 장 볼 것도 아니어서 트럭에 있기로 했다.

 

오랜만에 밥을 지었다. 어제 먹고 남긴 라면 국물에 참치캔을 넣고 밥을 지으니 맛있는 참치밥이 됐다. 따로 반찬도 필요 없고 편리하다.

 

정오가 지나야 화물 하차가 끝날 판이다. 최종 배달지는 윌튼(Wilton, NY)이다. 직선거리는 33마일이지만 돌아서 가야 해서 실제 거리는 60마일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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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다

      

 

      

닥에 있던 내 트레일러가 어느 순간 안 보였다. 좀 기다리다 사무실로 갔다. 내 트레일러 이동했더라. 서류 받을 수 있나? 하차는 진작에 끝났다. 너를 찾았는데 없더라. 창문에 붙은 안내문을 읽어보니 트럭 기사들은 드라이버 라운지에서 대기하라고 적혀 있다. 4시간 넘게 걸린다는데 어떻게 거기서 기다리나. 나는 야드자키가 트럭으로 와서 얘기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튼, 서류를 받아 나왔다.

 

내 옆에 주차한 트럭 기사가 내게 물었다. 얼마나 기다렸나? 4시간 정도. 처음에 얼마 걸린다고 했나? 4시간 반. 나는 7시간 기다리라고 한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 안 오는 건데. 혹시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 한국인이다. 아 그러세요. 저도 한국인입니다. 이때부터 대화는 한국말로. 그 아저씨는 트럭 주소를 보니 뉴저지에서 왔다. 나는 갈 길이 바빠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트레일러 찾아서 최종 배달지로 출발했다. 윌튼의 타켓 물류센터는 찾기 쉬웠다. 작업도 간단했다. 입구에서 서류에 사인받고, 트레일러 야드에 내려놓고, 빈 트레일러 찾아서 연결해 나오면 된다.

 

빈 트레일러를 찾았는데 타이어에 바람이 빠졌다. 됐고. 다른 트레일러를 찾았다. 이건 멀쩡하다. 연료도 충분하다. 내부는 더러워서 세차가 필요하다. 가장 가까운 세차장은 40마일 떨어진 알바니에 있다.

 

트레일러 세차를 마치고 저지 시티로 논스탑으로 달렸다. 밤에 비까지 내리네. 조심스레 운전했다.

 

트로피카나에 도착해 트레일러를 주차하고 나왔다. 할랄푸드 카트가 아직 문을 열었다. 손님은 아무도 없다. 팔아줄까 했지만, 점심때 지은 밥도 남았고, 집에 가면 저녁을 먹을 것이다. 다음에 팔아줘야지.

 

오늘은 트럭을 집으로 가져간다. 그동안의 관찰을 통해 우리 동네에 트럭을 세워도 문제가 되지 않을만한 장소를 찾았다. 어떤 트럭이 며칠이나 서 있는데도 티켓을 안 받은 것도 확인했다. 오전에 아내에게 연락해 우리 차로 자리를 맡아 두라고 했다.

 

저녁 9시가 넘어 도착했다. 아내가 맡아 둔 자리에 세웠다. 앞쪽에 다른 트럭도 두 대 서 있다. 추수감사절 연휴니 단속도 느슨하지 않을까. 낮에는 괜찮다. 저녁부터 아침까지가 문제다. 매일 아침 가서 확인해야지.

 

심바는 스스럼없이 내게 다가와서 엉긴다. 다른 사람이 오면 무서워 숨는단다. 볼 때마다 심바는 커져 있다. 사람으로 치면 10대 후반 정도의 느낌이다.

 

윌튼에서 일을 끝내고 몇 시간 걸려 집에 온 게 나쁜 일은 아니다. 다음 화물은 저지 시티 근처에서 받을 확률이 높다. 월튼에서 다음 화물을 받는 곳까지 거리를 계산해 준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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