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끈이 풀어졌다.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다시 일어났다./ 넘어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키웠다./ 양쪽 끝을 단단히 묶어/ 웬만하면 풀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대나무 숲 사이로 여울물은 흐르는데/ 슬픔 일어나는 대지를 쿡쿡 밟아 누르며/ 고통의 간이 벤 희망의 언덕을 박차고 달린다./ 진저리 쳐지는 절정의 속도로 치달릴 때/ 운동화 끈이 풀어졌다./ 너풀대며 걸리적거리고 나를 주저앉힌다./ 구름 한 점 없는데 먼지구름이 속절없이 덮쳐온다.
바닥은 햇살 받아 달구어져도 늘 음습하고 천한 공간/ 넘어지지 않아도 뒤쳐진 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매는 손길이/ 애절한 기도가 된다.
내 허벅지에는/ 어머니가 키우던/ 거친 바위산을 뛰어넘는 표범이 산다.
오늘은 본인의 졸시로 시작한다. 유라시아를 달리면서 나는 가끔 내가 과연 무슨 힘으로 이렇게 끈질기게 달리고 있는가 생각해본다. 어머니는 언제나 부드러우면서도 강했다. 난 늘 어머니가 가슴에 표범을 키운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가 키우던 그 표범을 내가 맡아서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안에 있는 표범은 그리움을 아는 표범이다. 먹이를 쫒아 달리지 않고 그리움을 찾아 달린다. 내 마음에 그리움이 생기고부터 나는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마라톤은 그리움의 시원(始原)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여행이다. 내 달리기는 유라시아를 서에서 동으로 달리는 공간의 이동이지만 그리움을 따라가는 감정의 이동이기도 하다.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만나 평화가 온다면 끝없이 달려도 지치지 않으리! 오랜 고통과 외로움 끝에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동자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만나 부둥켜안는 순간 온전한 두 날개를 갖춘 봉황이 된 줄 안다면!
몇날며칠을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을 지났고 또 몇날며칠을 한 포기만 보이는 사막을 지났다. 사막을 지날 때는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아도 좋으니 온전히 내 그리움에 나를 묻어버릴 수가 있다. 그리고 또 몇날며칠을 더 달리니 위먼(玉門)이라는 오아시스 도시가 나타났다. 이제 오른쪽 시야에는 간쑤(甘肅) 성과 칭하이(靑海) 성을 가르는 치렌 산맥이 파란 하늘아래 하얀 만년설(萬年雪)을 이고 길게 뻗어있다. 그 만년설 위에 또 하얀 구름이 머물며 구름과 눈의 구분조차도 무의미해진다.
여기부터 하서회랑(河西回廊)의 시작이다. 아니 끝이다. 하서회랑은 남동쪽의 오초령에서 북서쪽의 옥문관에 이르는 천km에 이르는 황하 서쪽의 복도와 같이 좁은 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동쪽의 낮은 산맥 너머에는 고비 사막이 펼쳐진다. 치렌 산맥은 해발 4천~5천m가 넘는 고봉을 거느린 산맥으로 하서회랑의 오아시스 마을에 물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하서회랑은 월지족이 살던 곳인데 흉노의 침입으로 지금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일대에 해당하는 일리가 유역으로 이동하면서 그곳에 살던 사카족의 이동을 촉발시켜 이들의 북인도의 인도, 스키타이 왕국의 건국에 영향을 미친다. 이곳에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 백일홍 밭이 인상적이다. 이 꽃들이 치렌 산맥이 제공하는 물을 머금고 사막의 풍부한 햇살로 곱게 피어났다. 위먼 시는 이 만년설이 제공해주는 물로 농업이 발달했다. 이곳에는 풍력발전기가 사막의 바람을 에너지로 바꾸면서 부지런히 돌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무더위 속에 황량한 사막을 달릴 때 최고의 행복감이 밀려온다.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볼 때처럼 기쁨이 몰려온다. 빛으로 가득 찬 이곳에서 나는 더없이 맑고 찬란한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나는 달리면서 내 안에 에너지를 채우고 있다. 바람개비가 바람과 마주서서 덧없이 지나가는 바람을 전기 에너지로 바꾸듯 고통과 마주서서 그 고통을 삶의 에너지로 바꾼다.
내 안에 사는 표범은 오늘도 질주를 한다. 그리움을 찾아!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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