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한 리듬 속에 던져진 삶에서 벗어나 느림의 세계에 들어가 본다. 아직도 걷는 것보다는 빠르게 그러나 심장은 격렬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런 특별한 여행에는 덤으로 얻어지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 홀로 길 위를 끝없이 달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독이지만 아름다운 상상과, 생각만 해도 멋진 추억과 동행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 돌이켜보니 내게도 이렇게 몇 달씩 곱씹어도 계속 이어지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다. 미친 사람처럼 홀로 웃음 짓게 만드는 추억 말이다. 달리면 발걸음보다 훨씬 앞질러 뻗어나가는 상상력은 일상의 불안, 초조, 우울, 번뇌 그리고 잡념 등으로부터는 멀리 달아날 수 있다.
어제 저녁부터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밤새도록 비가 오더니 아침이 되어도 그칠 줄 모른다. 오랜 가뭄 끝에 오는 단비를 맞으며 뛰는 것도 좋겠다. 홍성을 출발하여 가을비를 맞으며 토굴새우젖과 광천김으로 유명한 광천을 지난다. 또 다른 단비 같은 소식도 있다. 달리는 스님으로 유명하신 진오스님이 나와 동반주(同伴走)를 해주시러 일부러 지리산 실상사에서 그 먼 길을 운전하고 11 시 반 쯤 예산으로 오신단다. 스님은 달리며 모금을 하셔서 결혼이주여성 돕기를 하신다. 모자원을 운명하시며 베트남 학교에 해우소 마련을 위한 모금 운동 북한이주민지원단체 등 많은 자선사업을 하신다.
밤새도록 오고도 오전 내내 오던 비도 그치고 스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달리니 스님의 자비심이 어깨너머로 넘어온다. 스님은 군에 계실 때 실명(失明)하여 한때 좌절하기도 하셨지만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다시 스스로가 힘을 얻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러니 봉사란 남을 위한 봉사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위한 봉사이기도 하다는 말씀이다. ‘혼자만 깨우치면 뭣 하겠는가?’라는 책을 내시기도 하였다.
사람의 향기는 꽃보다 진하다. 자비심 가득한 스님에게서 풍겨져오는 향기를 맡으며 예산에서 아산시청까지 달리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아산시청 경비실에 내 애마를 맡겨두고 스님이 미리 부탁해놓으신 금오산 자락에 포근히 자리한 천년고찰 예산 향천사에서의 하룻밤은 내겐 또 다른 특별한 행운이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품 안에서 따뜻하고 안락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찾은 향천사는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졌지만 단풍이 곱게 물든 산자락에 자리잡은 사찰이 천년역사의 사찰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스님의 안내로 들어간 방은 몇 십 명도 함께 잘 수 있을 만큼 넓었고 방바닥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고 한쪽에 다과상이 가지런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진오스님과 마주앉아 따끈한 차를 나누며 진오스님의 베트남 해우소(解憂所) 마련을 위한 베트남 종주 마라톤과 일본에 쓰나미가 왔을 때 일본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일본종주 마라톤 이야기를 들었다. 스님은 나의 미국 대륙횡단마라톤 이야기도 관심이 많으셔서 그 이야기도 하였다.
독경소리 은은하게 들려오는 산사의 밤은 깊어가고 하루 종일 달린 육신의 고단함도 깊어가 따끈하게 데워진 구들에 등을 대니 잠이 저절로 몰려온다. 부처님과 함께 자는 잠이 편안하였다. 스님의 옅은 코고는 소리도 풍경(風磬)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