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나선 美대륙 5200km 횡단(4)
어제 출발할 때 남가주 달리기 회원들의 열렬한 격려와 응원 그리고 함께 하루 종일 달려주신 분들을 뒤로 하고 오늘부터는 진정한 서바이벌 게임이 되었다. 태고의 야생으로 들어가서 몸 하나에 의지하며 야생과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다. 망망대해와 같은 길을 홀로 달려가는 것이다. 홀로 달린다고 길을 나섰지만 홀로 떨어진다는 것은 역시 익숙하지 않은 일, 다시 큰 숨을 들이쉬고 각오를 다져야했다.
It has become a true survival game from today, leaving behind the enthusiastic encouragement and support of Southern California runners and those who have been running with me all day. I'm now entering the wild in the primordial, relying on only by body I should live a wild life. I'm running alone on the same path as the Great Sea. I set out to run alone with the mind to do so, but falling to be alone was also something unfamiliar to me, and I had to breathe in deeply and renew my resolve.
미국 제 2의 도시 LA는 년 중 가장 추운 2월에도 뉴욕의 6월이나 7월 초의 날씨처럼 쾌청하다. 뉴욕의 직선과 수직의 아슬아슬하고 공간이 없는 건물만을 바라보던 눈에는 산들바람에도 흔들리는 뻘쭘하게 키만 큰 종려나무 아래 가슴 트이는 공간을 안고 있는 곡선의 가지런한 건축양식들이 마음의 편안함을 주었다. 집이 없는 노숙자들에게도 LA의 기후는 뉴욕의 겨울처럼 모질지가 않아서 부자와 가난뱅이가 그리고 최고와 최저가 긴장감 없이 함께 공존하는 곳, 다양한 인종이 서로 갈등과 조화를 하는 곳으로 느껴졌다.
Los Angeles, the second largest city in the U.S., is as pleasant as New York's June or early July weather, even in February, the coldest of the year. The well-arranged architectural styles of curves holding a chest-opening space under awkwardly tall palm trees, which sway in the breeze, gave a sense of comfort to me who used to look only at the straight, vertical, narrow buildings in New York City.
현대 산업사회는 시간과 공간과 사람의 능력까지도 직선으로 나누고 숫자로 표시해 간편화시키고 사무화시키는데 큰 성공을 이루었다. 공간과 시간도 직선으로 나누고 숫자로 표시한다. 사람에게도 번호를 붙인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번호를 받았다. 몇 학년 몇 반 몇 번. 그리고 숫자는 끝없이 따라다녔다. 몇 점, 몇 등. 직선과 번호만큼 내 것과 네 것을 나누는 경계를 정하기에 효율적인 것이 없는 듯하다. 물은 리터로 표시되어 팔렸고, 다른 것들을 무게로 잘려져 팔리고, 땅은 사각형 단위로 사고 팔렸다. 우리의 삶 자체도 숫자로 매겨지거나 등급으로 나뉘고 사각형으로 정형화 되어졌다.
Modern industrial society has recorded much progress in simplifying and documenting time, space and human abilities by dividing them into straight lines and marking them in numbers. Space and time are also divided into straight lines and expressed in numbers. This society gives people numbers, too. I got the number for the first time after I entered elementary school such as What grade, what class, how many points and what order. And the numbers followed me endlessly. There seems to be nothing more efficient than a straight line and a number to define the boundary between mine and yours. Water is marked and sold by a litre, while others are cut and sold by weight, and land is bought and sold by square unit. Our lives themselves have also been numbered, divided into grades, and stereotyped into squares.
내게 이번 여행은 사각형으로 쪼개지고 등급으로 나뉘는 것에 대한 반란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곡선의 시간을 즐기면서 내 안으로 휘돌아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직선으로 흘러가는 급류 같은 시간 속에서는 좀처럼 마음의 여유를 찾아 평안을 얻기란 어려운 일이다. 직선은 급하고 잔인하면서 효율이라는 우상을 향하여는 맹목적으로 복종하며 곡선을 업신여긴다. 인디언 사회는 끝없이 돌고 도는 원의 세계이다. 원은 어디서 시작하거나 언제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간다. 하늘과 땅과 태양과 우주는 둥글다. 그래서 도시에 살면서 만날 수 없었던 인디언들의 생활과 사고 속으로 깊숙이 뛰어들고 싶었다.
For me, this trip is a rebellion against splitting into squares and dividing into classes.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I had a desire to sinkr swinging inside me while enjoying the time of curve. It is very difficult to find peace in times like the rapids that flow in a straight line. Straight lines are quick, cruel, and blindly obeying the idea of efficiency, and despising the curve. Indian society is a circle that rolls on endlessly. The circle always returns to where it has been regardlessly the place where it begins. The sky, the earth, the sun and the universe are all round. So I wanted to dive deep into the lives and thoughts of the Indians I could not meet while living in the city.
승자독식의 사회구조에서는 젊어서 한번 실수하면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를 한번 놓쳐버리면 다시는 따라잡을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사막을 달리면서 인생역전의 기회를 엿볼 것이다. 나의 역전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내 자신의 진정한 값어치를 찾아내어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혼자만 스스로 빛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삶이 풍요로워진다.
In the winner-take-all social structure, once we make a mistake when young, we are not given another chance. Once we lose our chance, we can never catch up again. But Rrun through the desert, I'll see the opportunity for a reversal of life. My reversal of life is doing what I like and doing what I can do well. Finding my own true value and loving and caring for myself are the most important things. But it is not enough to shine alone on my own way. Life is enriched only when I have a harmonious and amicable relationship with others.
세상사 모든 일이 더 좋거나 덜 좋거나 할 뿐이지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건 없는 것 같다. 집 떠나니 불편하고 아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효율과 경쟁이라는 산업사회의 끝없이 돌고 도는 컨베어 벨트에서 잠시 벗어난 것만으로도 정신이 이완되고 편안함이 찾아온다. 이런 형편없는 불편함 속에서도 마음에 평안이 깃든다는 것은 커다란 역설이다.
Everything in the world seems to be better or less good, but not all good or not all bad. Leaving home is a lot of inconvenience and shortage, but just a short break from the conveyor belt that runs around endlessly in the industrial world of efficiency and competition brings me relaxation and comfort. It is a great paradox that peace of mind nestles in spite of this terrible inconvenience.
대도시의 사람들의 행동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다. 발걸음은 급하고 눈길은 무관심하고 표정은 무표정하다. 늘 충격적인 뉴스만 접하다보니 웬만한 충격에는 놀라지도 않을 사람들이다. 오로지 나그네만이 평형감각을 유지하려 달팽이관을 최대로 작동시켜 지금껏 보아온 것들과 사뭇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The behavior of people in big cities is the same everywhere. Their steps are urgent, Their eyes are indifferent, and their faces are expressionless. They will not be surprised by most shocks because they always get shocking news. Only the traveler tries to maintain a sense of equilibrium by operating the snails to the fullest extent and to accept things that have been quite different from what he has seen.
LA와 뉴욕은 미국의 가장 상징적인 도시들이다. 이렇게 상징적인 두 도시가 하나는 태평양에 연한 대륙의 끝에 있고 또 하나는 대서양을 연한 대륙의 다른 쪽 끝에 있다. 그것은 나의 대륙횡단의 시작과 끝이 되어주는 두 도시를 잇는 길 사이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암시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L.A and New York are the most symbolic cities in the United States. These two iconic cities are at the end of the continent in the Pacific and at the other end of the continent in the Atlantic Ocean. It also seems to give me a hint that many things are likely to happen on the road between the beginning and end of my transcontinental journey.
첫 날의 일정을 마치고 오늘 첫날 같이 달려주었던 사람들과 한식당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아마도 이 저녁이 지나고 나면 나는 한동안 한식을 구경도 못 할 것이다. 미국에 이민 온 지 25년이 넘었지만 한식을 일주일 넘게 안 먹은 기억은 없다. 가발 세일즈를 하러 지방에 출장을 자주 갔었는데 그때도 길어야 2, 3일 내에는 한식을 먹었다. 한식을 며칠씩 안 먹으면 위장 안에서 화학작용이 변해서 고통을 겪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앞으로 넉 달간 한식을 먹을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니 그 고통도 어떻게 견딜까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도 식량과 물을 제 때에 공급을 받아 배고픔과 목마름에서 자유로울 지도 망막하다.
After finishing the first day's schedule, I went to a Korean restaurant to have dinner with the people who ran with me on the first day. Perhaps after this evening I won't be able to see Korean food for a while. It has been more than 25 years since I immigrated to the U.S., but I don't remember not eating Korean food for more than a week. I often went on business trips to the provinces to have a wig sale, but I ate Korean food within two or three days at the longest. If I don't eat Korean food for several days, my stomach has changed its chemistry and I suffered. As soon as I get to this point, I am worried about how I will endure the pain, for I will have few chances to eat Korean food for the next four months. Above all, it is most worried to be free from hunger and thirst by getting food and water on time.
둘째 날 일정을 마치고 최성권씨 집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다음날 어제 마쳤던 지점까지 태워다 주었다. 지금까지 모든 LA일정에 아낌없는 배려를 해주었던 최성권씨와도 이별을 했다. 그의 표정은 마치 내가 훈련소에 입소할 때 예비사까지 따라와 눈물을 머금고 작별을 나누던 고등학교 동창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별 뒤엔 언 제나 새로운 만남이 있다는 것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이다. 뜨거운 주변 도시들을 병풍처럼 감싸 안은 샌안토니오 산맥의 눈 덮인 모습을 이질적인 느낌을 가지고 저 멀리 바라보며 달린다. 샌안토이오 산맥은 사막 한가운데를 힘차게 달리며 행진가를 부르는 듯 했다.
After finishing the schedule on the second day, I slept at Choi Sung-kwon's house for another night and the next day he drove me to the spot I had finished yesterday. I also said goodbye to Choi Sung-kwon, who has so far given lavish consideration to all LA schedules. I thought his expression was similar to the look of my high school classmates who followed me to the reserve division when I entered the military training camp and exchanged tearful farewells. It is also fun and interesting that there is always a new meeting after a breakup. I run with a foreign feeling, looking at the far snow-covered view of the San Antonio Mountains, which surrounds the hot adjacent cities like folding screens. The San Antonio mountains seemed to be singing march-songs, running vigorously in the middle of the desert.
이제 홀로된 두려움을 안고 나의 ‘빛두렁길’을 캘리포니아의 그 풍족한 햇살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린다. 이미 도심의 중심은 벗어났다. 각오는 했지만 사람들의 손길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나이가 되도록 부모와도 떨어져 살은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언제나 불평했지만 언제나 사람 안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지내왔다. 과연 이렇게 순식간에 변한 환경,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불편함 속에서 나는 적응하고 극복할 수 있을까?
두려움의 외투를 벗어던지고 몸의 움직임이 최고를 향해 치달을 때 사람의 세포에서 나오는 진액, 그 진한 진액을 길 위에 뿌리지 않고 어떻게 저 담장 너머 세계의 신비함을 엿볼 수 있겠는가? 진액을 뿌리면서 시시때때로 들이닥치는 현기증 나는 절망감을 맛보지 않고서 어떻게 삶을 진솔하게 살았노라고 젊은이들에게 떠벌릴 수가 있겠는가?
Now with the fear of being alone, I run my "Lightpath-MK" sweating under that abundant sunshine of California. I already ran out of the center of the city. Though I was prepared, but getting away from people's touch was not an easy task. Looking back on my memory I have rarely lived apart from my parents until I was this old. I've always complained, but I've always been like a greenhouse plant among human beings. Will I be able to adapt and overcome this fast-changing environment and inconvenience which I’ve never experienced before? How can we see the mystery of the world beyond that fence without spraying the deep essence of human cells on the road when we take off the coat of fear and the body's movements run toward the highest? How can we tell young people that we’ve lived our life honestly without experiencing the dizzy despair that comes from time to time by sprinkling the essence?
여울물이 빠르게 흐르면 물방울이 생겨나고 사람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면 피부에 물방울이 생겨나는데 우리는 그것을 땀이라고 한다.그냥 날이 더워서 나오는 땀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오는 식은땀과 몸이 최상의 움직임을 벌였을 때 나오는 땀은 성분부터가 다르다고 한다. 우리는 담장을 뛰어넘기 위하여 더 땀을 흘려야 하고 더 갈등해야 한다. 땀을 흘리면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가벼워지고 간소해지고 벗어 던질 때 사람은 자유로워지고 완벽해진다.
The rapid flow of water creates drops of water and the rapid movement of the human body creates drops of water on the skin, and we call it sweat. It is said that the sweat from hot weather and the cold sweat from when the body is under mental stress and the sweat from when the body makes the best movement are different from the ingredients. We must sweat more and be more conflicted in order to jump over the fence. Sweat makes your body lighter and your mind lighter, too. When lightened and simplified and thrown off, one becomes free and perfect.
처음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던 날은 오십 이후의 이모작 인생의 멋진 자축연 파티가 되었었다.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심장과 튼튼한 다리로 오십 이후의 삶을 역동적으로 이곳저곳을 넘나들며 풍요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 달리는 습관은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버렸다. 마치 태양이 수평선 뒤에서 떠오르기 전 어둠의 세상에서 수평선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 밝음의 세계로 바뀌듯이 중년에 시작하는 이모작 청춘의 모든 것이 선명하게 밝은 세상으로 바뀌어버렸다.
The day of my first full-course marathon was a great self-congratulatory party for my second life later my fifties. With my heart and strong legs that can run without hesitation, I has become confident that I can design a rich life later my fifties by dynamically crossing place to place. The habit of getting up and running at dawn every morning changed everything in life. Just as the world changes from darkness to a world of brightness if the sun rises above the horizon, the second half of my life, beginning in middle age has turned into a world where everything is clearly bright with my marathon exercise.
풀지 못할 수학문제를 숙제로 받아 든 학생처럼 나는 사막을 헤쳐 나갈 아득한 일들을 조바심하고 달리다 손수레 바퀴가 그만 잔디밭으로 들어갔는데 바람이 빠지고 말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보니 타이어에 온통 가시가 박혀있다. 손으로 하나하나 가시를 뜯어내다 도저히 될 것 같지가 않아서 타이어와 튜브를 여분으로 준비한 것으로 바꾸었다. 벌써 둘째 날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앞으로 몇 달간을 단 두 개 여분의 튜브로 어떻게 견딜까?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자전거 가게가 중간에 있기를 기도하였다. 자전거 가게에 가서 타이어 두 개와 튜브 세 개를 더 샀는데 여전히 마음은 불안하다. 이것으로 사막을 건널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는데 손수레 때문에 내 모험이 망가질까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Like a student who took up an unsolved math problem as a homework assignment, I was anxious how to run through the desert, and the wheel of a cart went into the lawn and the wheel’s wind blew out. Stopping running and watching the wheels, I found one tire all studded with thorns. I tried to pull out the thorns one by one with my hands, but I thought I coul not do it. So I changed with the extra tire and tube which I had prepared. It's already happened only on the second day, and how can I survive the next few months with just two extra tubes? I prayed with apprehension that the bicycle shop was in the middle. Luckily, I found the bicycle shop soon and bought two more tires and three tubes, but I still felt uneasy. I did not seem to cross the desert with these. I was not afraid of anything, but I began to be afraid that my adventure would be ruined by the wheel of my cart.
잠시 휴식시간에 휴대폰을 열어보니 어제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헌팅턴 비치마라톤대회 전 인사를 잠깐 나누었던 박재현 발전문의가 내가 지나가는 길이 자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잠자리라든가 음식 같은, 내가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사실 오늘 잠자리라든가 음식이 만만치 않았는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나는 바로 전화를 걸어 오늘 숙소가 마땅치 않다고 말하고 내 현재 위치를 알렸다.
When I opened my cell phone during a break, Park Jae-hyun, who shortly greeted me before leaving Beach Marathon in Huntington yesterday morning, left a message that he would provide me with the convenience I needed, such as bed and food, because the road I passed wasn't too far from my home. I was very happy at that for it was not easy to find a camping place. So I called him and informed him of my location.
그 집에는 정성껏 차려진 음식이 식탁에 준비가 되어있었다. 어제 먹은 한식이 나의 마지막 한식이 아니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마라톤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보다도 고마운 건 몇 시간에 걸쳐서 나의 어설픈 마라톤학 강의를 적절한 때에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경청하며 주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내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처럼 마음을 치유해주는 건 없다. 현대인들은 내 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 모두들 자기 소리만 들어달라고 외치는데 아무도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나는 지금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길을 나섰다. 그러면 사람들의 소리를 더 세심하게 듣는 마음이 열릴 것 같다.
When I arrived at his house, the dinner was well prepared at the table. The Korean food I ate yesterday was not my last. Over dinner, we talked a lot about the marathon. Above all, I am most grateful to him that he listened carefully to my clumsy marathon lectures over several hours with , including agreeing with me at the right time. There's nothing to heal us like someone’s listening to us. Modern people are lonely because no one listens to them.
Everyone cries out for one’s own saying, but no one listens to him. I have now set out on the road, in order to listen to the sound of nature. That would open the mind of me to listen to people more carefully.
by Kang Myong-ku
translated by Song In-yeup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g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