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74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 한때는 그런 시대가 있었다.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영광을 한마디로 응축한 말이다. 아피아 가도는 로마의 길의 시원이다. 기원전 312년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244년 완공한 남동부의의 브린디시까지 이어지는 장장 563km인 이 도로는 사각형의 박석(薄石)으로 깔려있다. 이 길을 통해 로마의 번영이 뻗어나갔다. 이후 군사, 산업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장기 계획 아래 로마의 도시들이 촘촘히 연결되었다.
고대 로마의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현대에도 의의를 갖는 문명사적 성취가 있기 때문이다. 그 핵심의 하나가 바로 ‘길’이다. 로마는 ‘길의 나라’이며, 로마제국은 ‘길의 제국’이었다. 로마의 길의 문명은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져 내려올 정도로 서양문화의 근간(根幹)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가도는 예전의 고속도로이다. 고속도로는 자국 군대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만큼 적들도 빠르게 침공해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니 양날의 검인 셈이었다.
길은 자신감의 발로로 번영의 시작이다. 성(城)은 불안감의 발로이다. 로마의 도로는 로마에 천 년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실크로드 역시 중국에 부와 번영을 구가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명나라 이후로 오랜 봉쇄정책으로 중국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렸다. 명이 해금정책을 고집하는 동안 해상실크로드의 주도권은 서양이 독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중국의 만리장성은 평화를 지켜주지 못했다. 중국의 왕조는 고작해야 2백 년을 넘지 못했다.
만년설(萬年雪) 같았던 북극의 얼음이 지구 온난화로 녹아내리고 있다. 이로 인해 균형을 이루고 있던 대륙의 판들이 움직이며 지진과 화산 폭발 등 재앙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서구가 만들어낸 만년설 같은 질서가 녹아내기기 시작하는 걸 볼 수 있다. 미국이 힘을 잃으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던 세계질서는 연쇄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이 건국 초기 ‘평등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충실할 때는 많은 나라들이 자발적으로 미국을 추종해왔지만 미국은 어느 순간 이 소중한 가치를 버리고 ‘금융’과 ‘힘’의 가치에 무게 중심을 옮기는 순간 미국은 위험한 나라로 변질되어 갔다.
크로아티아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오는 길은 한 50km정도를 슬로베니아를 거쳐야 했다. 나는 슬로베니아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이탈리아로 넘어오려고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연휴기간이라 방값은 터무니없이 비쌌고 그나마 빈방을 얻지 못해서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왔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국경의 첫 도시 트리에스타의 호텔과 민박집을 싹 뒤졌지만 몸에 피곤만 몰고 올 뿐 숙소를 구하지 못해 어디에서 차박을 하려고 돌아다니다 운 좋게 호텔 방 하나를 구했다.

부당한 특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와 압박을 하려고 애쓰는 미국과 서구의 노력은 애처롭기만 하다. 미국은 서구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승자와 패자를 함께 품었다. 물론 말 잘 듣는 그들에게 일정 부분 지분을 나누어주면서 말이다. 미국은 주축국(主軸國)이던 일본, 독일, 이탈리아를 전쟁 중에 맘껏 때려 부셔 말 잘 듣는 순한 양을 만들어버렸다. 연합국이던 영국, 캐나다도 미국의 독점적 지위를 넘볼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5년에는 세계 경제의 50%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Pax Americana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렇게 그들은 G7이 되었다. 그들은 한동안 도전받지 않고 세계를 지배해왔고 그들이 만든 규범이나 규칙이 진리인 것처럼 주장해왔다. G7이 만들어지던 당시 이들 7개 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7개 나라였다. 지금은 미국만이 순위에 있을 뿐 지금은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위스, 싱가포르, 카타르가 들어가야 맞다. 경제 규모로는 중국, 인도를 빼고 세계 경제를 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들은 스스로 G7라 칭하며 자기들끼리 모여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질서를 생산해서는 그 길을 따르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들은 이 길을 따르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한다. 직접 타격을 하기도 하지만 이간책을 사용하여 자기들끼리 싸우게 한다. G7에 반발하여 나타난 것이 브릭스이다. G7은 세계 인구의 10%에 불과하지만 브릭스는 세계 인구의 40%나 차지한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르헨티나 등이 참여하면 미국이 추구하는 빌어먹을 변질된 가치에 기초한 질서는 만년설 녹듯이 녹아 버릴 것이다.
미국은 뒤늦은 후회를 한 다음 건국 초기의 ‘평등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로 회귀(回歸) 할 것이다. 나의 발걸음은 미국이 더 이상 만신창이가 되기 전에 진정한 미국의 가치로 회귀하기를 처절히 바라는 진오기굿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유례 없는 평화의 세기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미국의 가치가 미래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것은 미래에도 의의를 갖는 문명사적 성취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길이 ‘평화의 길’이 되어서 모든 길은 미국으로 통하길 바라면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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