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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 18

기억하고 애통해 하자!
글쓴이 : 강명구 날짜 : 2022-11-07 (월) 02:29:30

기억하고 애통해 하자!

 


 

이제 다낭도 지나고 호이안도 지났다. 어느덧 베트남의 중남부 꽝응아이까지 왔다. 네이팜탄과 고엽제(枯葉劑)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됐던 강산이다. 베트남을 달리며 내가 본 것은 어떤 첨단 전쟁 무기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인간 정신의 위대성이었다. 후손들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산화시키면서 흘린 피와 땀의 기록이 나의 발걸음을 유혹했다. 제국주의의 무모함과 야만에 저항하는 역동적인 흔적이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아픈 역사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는 문을 활짝 열기 위해 달리고 있다.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드러내기 싫은 치부이자 환부와 같은 것이다.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부끄럽고 낯 뜨거운 우리의 잘못을 드러내고 눈물의 고백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성하지 않으면 잘못된 경험을 자꾸 반복한다.

 

우선 베트남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이 결코 우발적이지 않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것의 뿌리는 해방 이후 자행된 4,3항쟁을 비롯하여, 여순항쟁과 한국전쟁 중에 자행된 수많은 학살 사건이 아니었을까? 거기서 수백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사킨 경험이 있다.

 

반공교육은 빨갱이를 악마화하였다. 빨갱이는 악마이므로 죽여도 죄의식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었다. 4,3항쟁, 여순항쟁의 빨갱이 대량학살 경험이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재현되지 않았을까? 피를 보았고 미쳐서 물불 안 가리고 쏘아댔다. 생존과 죽음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전쟁터에서 억울한 희생자 발생은 불가피 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내재된 경험이 판단을 빠르게 한다.


전쟁은 시작할 때는 그러듯한 명분을 들이대지만 한번 시작하면 누가 시작했는가, 누가 옳은지는 필요 없게 된다. 전쟁의 한가운데 내던져진 병사들에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서 고향의 가족에게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 지상최대의 명분이 되는 것이다. 전쟁은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자유를 지속적으로 억압한다. 그것이 어린 병사들을 광기로 내 몬다.

 

다낭과 호이안 중간쯤 있는 투본 강과 바다가 가까운 한적한 마을이었다. 19682월 베트남 파병 한국군 해병 청룡부대 3개 소대가 하미 마을 30여 가구 비무장한 주민 135명을 학살했다. 그날 오전 9시 무렵 마을을 에워싸고 진입한 군인들은 주민들을 한 데 모은 뒤 소총과 수류탄, 유탄발사기 등으로 무차별 학살했다. 희생자는 대부분 노인과 여성, 아이들이었다. 군인들은 이를 은폐하기 위하여 네이팜탄으로 마을을 불사르고 불도저로 밀어 흔적을 지우려 했다.


북베트남의 구정(舊正) 대공세로 전투가 격렬하던 때였고, 이 지역은 최정예 청룡부대의 작전 지역이었다. 다낭 호이안 등 중부 도시들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점령지였거나 영향력이 커져가던 지역이었다. 지금껏 한국군의 학살 행위가 공식 작전이었는지, 명령 계통이 어떠했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조헌정 목사님과 나의 베트남 일정 중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대량학살 현장을 찾아 억울한 영령들을 위로하고 혜원상생의 시대로 넘어가는 조그만 디딤돌이라도 놓기 위한 것이다. 원한을 풀고 상생의 화평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정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투본 강과 바다와 연한 하미 마을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었다. 위령비의 담 한켠은 이번 태풍으로 무너져 방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자책의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소주 한 병밖에 못 들고 왔지만 미안한 마음은 마음 가득 안고 왔습니다.

 

언제나 가장 위험한 곳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던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가장 힘 없고, 돈 없고, 배경 없는 하층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좀 있는 집안 자식들은 무슨 이유든지 군 면제를 받았다.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은 3년 내내 형편없는 급식에 배를 주리고 낮에는 온갖 훈련과 부역, 밤이면 의례처럼 이어지는 줄빠따를 맞으면서 군생활을 이어갔다.


미군들 수준의 급식을 먹으면서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외국의 전쟁터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멋진 군인의 모습을 상상했으리라! 전쟁영웅이 되어 금의환향(錦衣還鄕)해서 아름다운 여인과 2차 대전 후 해군 병사의 타임스퀘어에서처럼 로맨틱한 키스를 꿈꾸었으리라! 상하의 나라 베트남은 더 이상 젊은이들은 암담한 현실을 벗어나 모험과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로 여겨졌으리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었다.”라는 말이 있다. 베트남 파병은 악마의 매혹적인 유혹이었다. 그 유혹은 젊은이들에게 암담한 현실에서 희망의 빛을 비추는 십자성 별빛만큼 치명적인 마력이었다. 힘 없는 사람들은 가끔 세상이 뒤집어져 새로운 세상이 되기를 꿈꾸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총과 무기는 전쟁이라는 미친 공간에서 이제껏 누리지 못한 힘 아닌 힘을 가졌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병사들은 극도의 공포심에 노출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욕구불만은 무절제하게 발산된다.

 

베트남에 도착한 한국군은 용감하게 싸웠다. 다낭 인근은 미군 최정예부대가 있던 곳이다. 미군은 자기가 수행하기에 위험한 임무만 한국군에게 떠맡겼다. 미군은 주로 하늘에서 폭격하고 후방에서 지원포를 날려주는 일을 하는 동안 한국군은 마을과 정글을 수색하는 일을 싫은 내색 없이 잘도 수행하였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반전 시위와 나빠져 가는 여론과 전황에 교묘히 한국군을 앞세워 설욕전을 펼쳤다.


베트남 전쟁은 기존의 전쟁의 통념을 깨는 이상한 전쟁이었다. 전선도 없고 후방도 없는 전쟁이었다. 마치 두더지 게임처럼 여기저기에서 느닷없이 출몰하는 베트콩들로 인해 병사들은 극도의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베트콩은 비정규군이라 마을 주민들과 구분이 되지는 않았다. 평화스럽게 보이던 마을 한 귀퉁이에서 총알이 날아오고 선량해 보이던 농부가 저고리에서 수류탄을 꺼내 던지곤 했다. 적대감은 극도의 공포에서 극대화 된다. 보이지 않는 적은 병사들의 극도의 공포감과 불안감을 몰고 왔다.


양민과 베트콩의 구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최정예 해병용사들은 한낮 철부지 어린 병사들일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적에 의해서 동료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 넘어지고 있었다. 안 보이는 적. 알 수 없는 적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피를 본 어린 병사들에게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모두 죽이는 것이다. 미친 듯이 불을 지르고, 총을 쐈으며 혹시 적이 사용될 식량과 가축, 물자 등 모든 것을 소각했다. 전쟁은 위험한 광기를 내포하고 있다.

 

50년 전 우리가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적은 아이러닉하게 그들의 오랜 숙원이요, 우리의 오랜 숙원이기도 한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운 숭고한 민족주의자들이다. 그들은 100여 년에 걸쳐 프랑스, 일본,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주의와 맞짱뜨며 저항하며 쌍코피 터진 끝에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였다. 자존심이 높아 외세의 간섭은 참을 수 없던 민족이 가야 했던 길은 우리가 하늘같이 의존하며 스스로는 살아갈 수 없다며 머리 숙이는 미국에 선방 맞으며 대든 길이었다.

 

어두운 역사를 스스로 드러내고 사죄하는 일은 데는 전쟁에 뛰어드는 용기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사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떤 불이익이나 온갖 수모를 당해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눈물어린 고백 없이 진실하게 해원상생(解冤相生)’할 수는 없다.


4,3항쟁과 여순항쟁의 올바른 정립 없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은 무용담으로 미화되면서 광주학살사건으로 다시 망령이 되살아난 것을 깊이 통찰해야 한다. 모든 역사는 홀로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불행했던 과거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뼈를 깎는 고백과 사과는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전쟁의 광기에 휘말리게 되어 그 사악한 망령이 되살아나 대량학살의 피를 뿌릴지 모를 일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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