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내딛는 발걸음에는 설레임이 담겨있다. 사람은 자기가 제어(制御)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융단처럼 깔린 길을 걷게 마련이다. 남들은 가시밭길로 보고 발을 디딜 엄두도 못할 때 나는 그것을 곱게 깔린 융단으로 알고 첫 걸음을 시작할 마음이 생겼다. 잠시 뒤에 몰려들 피로감이나 불편과 고통은 생각지도 않는다. 여행의 로맨틱한 환상은 얼마 후면 여지없이 깨어지리라는 생각도 첫발을 내딛을 때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대자연의 침묵과 고요 속에서 사막의 지는 노을과 깊은 산 속에 맺히는 영롱한 이슬, 대평원 떠오르는 아침 햇살과 마주하고 싶다. 그 속에다 내 마음 깊은 곳에 갇힌 슬픈 버펄로 같은 감정들을 풀어놓아 마음껏 풀을 뜯으며 뛰어놀게 하고 싶다. 별빛따라 흐르는 온갖 색채 광선에 내 몸을 맡기고 세상에서 가장 야릇한 애무(愛撫)를 받는다. 전혀 다른 기후나 풍토, 대지에 흐르는 기운마저도 다른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맛과 새로운 인정을 느끼며 마음껏 몸 속에 농축(濃縮)해 담아내는 거다.
나는 사람들의 걱정과 근심 그리고 비아냥 뿐만 아니라 호기심과 관심 그리고 부러운 시선까지도 뒤로 하고 떠나려 한다. 사람들은 음식점에서 서로 다른 음식을 주문하듯이 서로 다른 걱정과 격려를 해준다. 이별과 만남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그래서 이별을 언제나 슬퍼할 일은 아니다. 새로운 희망과 또 새로운 역경과 고난에 마주칠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길과 날씨와 시시때때로 마주칠 위험과의 조우(遭遇)일 것이다. 놀라움에 가슴 졸여야 하는 시간이다.
다른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달릴 때 엄습(掩襲)하는 두려움을 극복할 최소한의 도구들은 필요하다. 오지(奧地) 깊숙한 곳으로 뛰어들지만 사람들과의 비상연락의 끈이 되기도 하고 길을 안내하기도 할 스마트폰이 필요하고 그것에 전력를 공급해 줄 태양열 축전판이 필요했다. 추위나 비나 우박으로부터 나를보호해 줄 가볍고 다뜻한 텐트와 침낭이 필요했다. 이 모든 장비들과 체력을 유지할 음식과 물도 운반해 줄 당나귀 역할을 할 튼튼한 유모차를 준비했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가족들은 나의 이런 특별한 여행을 전적으로 이해하는 눈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묵인하면서 말없이 응원해준다. 특히 모든 장비를 구입하는데 도움을 주고 기계치인 내가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대륙횡단 마라톤은 북극탐험과 달나라여행 같이 아련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찍은 다큐멘타리 영화나 탐험기를 읽으면서 가보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 미지未知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채우다가 어느날 간접체험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허전함 때문에 그곳을 직접 탐험하려고 뛰어들면 그곳은 바로 영화나 책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경이로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끝없이 엄습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번갈아 몰아치는 추위와 더위, 배고픔, 인간들과 격리(隔離)된 고독함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대자연의 큰 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 지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륙횡단 마라톤을 통하여 사막의 모래먼지만큼 작은 인간이 도저히 버텨내지 못할 것 같은 어마어마하게 큰 힘의 대자연 앞에 당당하게 맞서는 인간정신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다.
그것은 분명 커다란 시련(試鍊)과 고난(苦難)을 내게 안겨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시련과 고난 속에 묻혀있는 기쁨의 보석을 캐어내는 숭고하고 근엄한 작업이다. 나약함에서 깨어나와 강건함으로 거듭나고, 일상의 무료함에서 박차고 나와 풍만한 세계에 들어가고, 새로운 희망을 노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