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것들과의 만남이다. 특히 심장이 뛰는 속도만큼만 달리는 마라톤 여행은 자동차를 타고 급하게 지나치면 만나지 못할 아름답고 풍성하고 속 깊은 것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아리조나와 뉴멕시코의 사막을 달리면서 인상적인 것은 버섯 같이 솟아올라서 에너지 자장(磁場)이 마구 흘러나올 것 같은 붉은 바위들이다. 신비로운 기운이 전신을 감싸오는 것 같는 기분이 들게한다. 사막의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 그 산 속에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가는 전나무 숲. 전나무 외에는 다른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그 절대적인 배타성(排他性)이 왠지 기분 나뻤지만 그 자체로는 장관(壯觀)이었다.
척박(瘠薄)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른 생물들의 모습은 초췌(憔悴)한데 유난히 살이 찌고 검은 털에 윤기가 돌아서 처음에는 독수리인지 착각(錯覺)을 했던 사막의 까마귀들. 사막에서 무얼 먹고 살이 쪘는지 통통한 토끼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눈만 빛이 나던 사막의 여우, 그리고 며칠 전 Gallup에서 Continental divide로 향하던 중 마주쳤던 코요테 한 쌍은 나로 하여금 손삽을 꺼내들게하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도 연출했었다. 저들은 목이 마르면 목을 적실 샘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이다. 시골에는 개를 보통 놓아서 기르는 데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 때는 등에 땀이 나곤 한다.
예기치 못한 아름다운 만남들도 있어서 나의 여행의 추억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번에도 또 길을 잘못 들어서 6.5 마일쯤 가다 다시 돌아왔다. 달리는 것이 좋아 이렇게 끝없이 달리면서도 헛걸음질을 치면 왜 그렇게 분하고 화(火)가 나는지 모르겠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참을 더 달리다 주유소를 만나서 커피나 한 잔 하고 쉬었다 가려고 들어가니 부부가 말을 건다. 어제 달리는 나를 보았다고 어디까지 가는지 어디서 출발했는지 이것저것 묻는다. 그리고는 자기들이 Albuquerque까지 가는데 거기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한다. 나는 힘들다고 차를 타면 나를 속이는 것이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라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곳에 지나갈 때 잘 숙소가 있냐고 물어봐서 없다고 대답하니 자기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라고 한다.
나의 이번 여행은 내시경(內視鏡)으로 미국의 속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속 깊은 여행이 되었다. 누군가 농담처럼 이야기를 했다. 김태희도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더러운 것들로 가득찼다고.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의 속을 이렇게 발로 뛰면서 헤집어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찼다. 내 것과 네 것의 경계를 조금만 허물면 세상은 더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워진다.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고 물질을 나누면 삶의 흐름은 자유로워진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겼다고 자기가 다 독차지하겠다는 욕심이 끝없는 화(禍)를 불러일으킨다.
지나다 차를 돌려 다시 와서 물과 주스를 전해주는 사람, 저녁이라도 한끼 사먹으라고 얼마 안 되지만 온정(溫情)을 표하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 격려의 말 한마디를 따스하게 건네주는 사람, 안전에 조심하라고 야광 조끼를 전해주던 사람들, 그 아름다운 사람들의 눈동자가 눈에 선하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한 가슴으로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다시 가슴 벅차해야 했다.
Charlie와 Chris 부부는 내가 온다는 전화를 받고는 나를 위해서 한국 음식점을 알아보았는데 일요일이라 모두 문을 닫았다고 아쉬워했다. 한국 음식을 먹은 것보다 그 마음이 얼마나 배부르고 포만감(飽滿感)을 갖게 하는지 아마 다른 사람은 모를 것이다. 결국 오늘 먹은 피자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피자가 되었다. 그리고 아침에 Charlie가 직접 만들어준 계란과 감자볶음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되었다. 맛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어서 이렇게 정성이 곁들이면 특별한 맛이 되고 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