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wnee에서 출발하여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과 밀 밭 목화 밭 그리고 소 목장을 바라보며 하루종일 롤러코스트의 구릉지대를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진이 다 빠지는 것 같다. 또 하나의 징검다리가 될 목적지인 Okemah까지는 이틀이 걸린다. 도시의 이름이 거의 인디언 말이다. 인디언들의 슬픈 아리랑의 역사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중간에 하루는 노숙(露宿)을 하여야 하는데 저녁부터 비가 오는 것으로 예보가 되어 있어 지나다가 빈집이 있으면 들어가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점심을 먹으러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중간에 한 여자가 들어오더니 어제 Yucon에서 봤는데 여기서 또 보게 되었다고 반가와 한다. 그녀는 내게 힘들게 달리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무엇보다도 달리기가 좋아서 달리고, 달리기는 건강에 좋고, 더 좋은 것은 정신 건강에 좋아서 달리면서 명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한국의 남북평화통일을 위해서 달리고, 내 나이가 57 살인데 이 나이에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달린다.”고 대답을 했더니 너무 감명(感銘)을 받았다고 바로 자기 Facebook에 이런 인상 깊은 사람을 만났다고 올렸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격렬하게, 이렇게 치열하게 이렇게 정열적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주 흥미롭다. 생각해보면 달린다는 것은 하찮은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찮은 일에 열광을 하고 때로는 하찮은 일에 목숨을 건다. 그것이 동네를 한 바퀴 달리든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여 달리든 미대륙횡단 마라톤을 달리든 다 하찮은 일인지 모른다. 손흥민이 골대에 골을 넣는 일도 하찮은 일이다. 골대에 골을 넣는 것을 보고 어른들이 그렇게 체신 없이 소리지르고 환호할 일이 아닐 듯한데 사람들은 거기에 열광을 하고 혹시라도 볼이 골대를 살짝 스쳐 지나가면 안타까워하며 탄식을 하기도 한다.
골대에 골을 넣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데스리가에서 골을 넣고 월드컵에서 골을 넣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거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한다고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감격시키지는 못한다. 거기에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고통을 감내(堪耐)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진실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나 하지 않는 것도 있다. 마라톤이 그렇다.
격렬하고 치열하고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거친 운명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쳐 헤쳐나가는 나가는 당당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그 아름다움을 흉내내려고 이렿게 혼신(渾身)의 땀을 흘린다. 땀이 범벅이 된 사람들의 몸에서는 마치 오로라의 광채(光彩) 같은 것이 흐른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한참을 달려서 땀이 송글송글 나기 시작하면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잠재적인 능력들이 깨어나와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다. 내면에 깔려진 가느다란 전선이 누군가가 스위치를 올려서 오래 놓아두었던 기계가 작동을 하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나는 달리면서 심장이 벌렁벌렁 뛸 때 환희(歡喜)를 느낀다. 심장이 그렇게 요동칠 때 내가 가장 진지하다는 것을 안다. 뛰는 심장만이 나의 열정과 도전 그리고 진솔한 사랑을 내게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뛰는 심장만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 지 누구를 사랑하는 지 이야기해 줄 수 있다. 거친 심장만이 몸에서 나오는 가장 작은 소리까지도 귀를 기울여 듣는다. 그러니 길 위를 달릴 때 내면의 대화가 용이한 시간이다. 달리면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천천히 한가롭게 뛰어도 심장은 뛰기 시작한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 메말랐던 댐에서 갑자기 폭포수처럼 물이 낙하를 하여 강력한 터빈을 돌려 삶을 밝혀주는 그런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