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북산면 청평리 청평사~ 화천군 화천읍 백암사~ 화천군 사창리 대성사
단풍이 물들어 가는 가을, 깊은 산사(山寺)에서 머무르는 한밤중에 내리는 빗소리는 더욱더 요란하게 들린다. 비는 밤새도록 내려 밤잠을 설치게 하고도 그칠 줄 모르고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침에 청평사를 감싸 안은 오봉산에 걸린 비구름이 ‘속세를 떠나 몇만 겹 들어온 것 같다.’던 옛 시인의 싯구가 떠오른다.
추억과 역사와 조상의 흔적이 담긴 물건은 유효기간이 없다. 오히려 그것들은 세월의 흔적이 더해갈수록 가치를 더한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옛것을 보존하는 것 또한 그것의 가치를 더 높이는 것이다. 그전부터 오랜 사찰을 기행하면서 그것이 지닌 값어치를 잘 드러내는 일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조금 더 준비를 하고 공부를 하고 글에 혼을 담아내려는 욕심 때문에 망설여왔다. 그러나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시작하고 배워가면서 보완해 나가려한다.
으스스하게 내리는 가을비가 순례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진오 스님은 걸망을 둘러메고 만행(萬行)을 다니는 대신 유모차에 간단한 옷가지를 챙겨서 탁발마라톤으로 사찰 순례를 다닌다. 스님은 달리기 만행을 통해서 그가 운영하는 이주여성들과 탈북 청소년들의 안정적 정착을 돕기 위한 달팽이 모자원 지원 자금을 모금한다. “스님 왜 달팽이 모자원이라고 이름을 지으셨나요?”하고 물어보니 “달팽이는 자기가 사는 집을 짊어지고 다니지요. 안정적인 정착을 할 때까지 거처를 마련해주고 싶어서요.”한다.
어제 힘들게 넘어왔던 가을비가 내리는 백치고개를 다시 넘어간다. 비 맞은 단풍은 어제보다도 더 곱게 물든 것 같았다. 고개를 힘들게 넘어 조금 더 가니 북한 이탈 주민들의 사회정착을 도와주기 위한 ‘하나원’을 지난다. 그리고는 오음리로 들어서니 곧 월남참전군인들이 훈련을 받던 곳인 ‘월남참전용사 만남의 장소’를 지난다. 점식을 먹고 나니 비는 그쳤다. 조금 더 지나니 이제는 파로호(破虜湖)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6.25 때 중국군이 이곳에서 수없이 전사를 했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전승을 기리기 위하여 원래 화천호이었다가 파로호로 명명했다고 한다.
파로호의 고갯길을 넘고 나니 산세가 깊은 화천을 평화롭게 흐르는 북한강 자전거 길을 강물 위에 떠내려가는 단풍잎보다도 더 한가롭게 빈 마음으로 달려간다. 깊고 우아한 산봉우리 사이를 골골을 이루며 북한강은 자연이 만들은 가장 아름다운 정취(情趣)를 뽐내고 그 강길을 따라 화천 시에서 만든 ‘산소길’은 사람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길인 듯하다.
호국 백암사는 화천군 화천읍에 있는 7사단 칠성부대의 군법당이다. 사찰순례 중에 미래의 희망인 청년포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군법당을 찾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특히 군인이 우리나라 어느 도시보다 많은 화천에서는 말이다. 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백암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집집마다 벽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고 그 담 위에 흙으로 빚은 인형들이 갖가지 모습을 하고 인상적으로 앉아있었다. 화천 향교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절에서 군법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뭐니 뭐니 해도 먼길을 나선 순례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살가운 환대(歡待)이다. 군법당의 요사채에서 침낭 안에 들어누우니 초저녁에 바로 곤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다시 이른 아침 공양을 마치고 순례자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길을 나선다. 길을 달리면서 스님은 이곳의 군인들이 제대하는 날까지 무사히 건강하게 근무하다가 부모 품으로 돌아가기를 빌었다. 아침햇살에 은빛으로 빛나는 북한강 길을 따라 한참을 지나 붕어섬을 지나고 이제 방향을 바꾸어 하남면을 지날 때 아침에 출근해서 우체국 마당을 쓸고 있던 우체국 직원아주머니가 우리를 보더니 “커피 한 잔하고 가세요!”하고 부른다. 커피 한 잔을 주는 손길의 울림은 대단했다. 산사의 예불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의 울림보다도 오래 가슴을 울리는 여운(餘韻)을 선사한다.
어느덧 곡운구곡을 지나고 있다. 곡운구곡은 화강암의 판상절리가 잘 발달되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자곡은 김시중이 지존천 아홉 구비마다 각각의 모습을 묘사하여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중에서 제 3곡은 하백의 딸 신녀가 머물만한 곳이라 하여 신녀협이라 한다. 그곳에 김시습을 흠모(欽慕)하던 곡운이 김시습의 호를 따 청은대라는 정자를 지었다.
이제 순례자의 발걸음은 한걸음 한걸음 모아져 목적지인 두류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호국 대성사에 도착하였다. 제일 먼저 반긴 것은 어떤 보살님을 따라왔다가 그냥 이곳에 살고 있다는 강아지 ‘용’이었다. 법당 안의 부처님의 모습도 유난히 자상한 모습이다. 이곳의 군법사님은 물론 ‘용’보다도 더 환대를 해주었다. 군법당의 요사채가 마음의 평온을 주는 밤이다. 나도 최전방에 근무하는 이곳의 군인들이 무탈하게 근무하다가 제대하기를 기도하면서 이제 오늘의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