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뜰 때 아직 피로가 가시지 않았지만 다시 기지개를 펴고 달리기 시작하니 몸이 가뿐했다. 아침 기온은 쌀쌀하다. 북한강 위에서 물안개가 솟아오르고 내 입에서도 안개가 새어나온다. 강 건너 마을에서 들려오는 소울음소리가 우렁차다. 아침 새 목청 고르는 소리도 경쾌하고 내 발자국 소리도 경쾌하다. 아침 평화를 깨고 이 산 저 산에서 커다란 확성기 소리가 들려와 놀랐는데 안내방송이다. ‘지금 발전을 시작합니다. 강물이 급속히 물어나고 유속이 빨라져 위험하오니 강 안에 계신 분들은 밖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파로호 안보전시관에서 나와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소나무 가지의 떨림 사이로 파로호의 절경(絕景)이 한눈에 보인다. 순간 나의 가슴이 멎어버리고 말았다. 파로호가 내게 준 선물은 물결의 떨림이었다. 물결의 떨림이 지금껏 내가보지 못한 신비한 떨림이 되어서 내 눈에 들어왔다. 먼 옛날 미팅에 나갔다가 맞은편에 앉아서 흘깃흘깃 나를 보는 그 여학생의 눈떨림 같은 것이었다. 그때도 나의 가슴은 멈춰버렸었다. 지금 이름도 얼굴조차도 기억할 수 없지만 그때의 떨림은 아직도 가끔씩 전해져 온다. 사실 청춘의 그 떨림은 평생을 우려먹는 곰탕과 같은 것이다. 삶이 허기질 때마다 우려먹을 곰탕 같은 추억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이 호수가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쟁기념관을 보고 알게 되었다. 중공군 삼만 명을 수장(水葬)시켜서 오랑캐를 물리친 호수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파로호를 뒤로하고 오음리에서 점심 찌개거리를 장만하였다. 이번 여정 중에 점심은 식당에서 사먹으려고 했었다. 식당이 있는 거리를 지나칠 때는 괜찮아서 조금 더 가서 먹어야지 생각하고 가면 금방 허기가 지고 식당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점심을 해먹으면서 그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터널을 일곱 개를 지나야하는 제일 어려운 구간이 될 것 같다. 첫 번째 터널인 추곡터널 입구까지 언덕길을 올라서 860m 의 터널을 통과하고 다음 터널이 수인터널 3km 구간을 정신없이 통과하였다. 좁은 터널에 차 달리는 소리는 굉음(轟音)으로 들렀고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차들은 정말 위협적이었다. 이제 세 번째 터널인 웅진 터널을 통과하기 위하여 바로 앞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경찰차가 다가온다.
경찰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누가 위험하다고 신고가 들어왔는데 짐은 자기 차에 실어서 터널이 끝나는 지점에 내려놓을 테니 조심해서 오시라고 하더니 차에 자리가 없다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어디다 전화를 건다. 잠시 후에 국토교통부 소속 픽업트럭이 와서 짐과 나를 태우고 터널 네 개가 끝나는 지점에 내려주었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이렇게 친절한지 처음 알았다. 처음에는 경찰의 친절함에 오히려 어색함까지 느껴졌었다. 공무원들은 어딜 가도 사무적이고 불친절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제 양구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속초 쪽으로 가는 31 번 도로를 타니 500m 되는 작은 터널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마치 100m 선수처럼 질주하여 터널을 벗어났고 한낮의 뙤약볕 아래 한참을 더 가다 광치령 올라가기 바로 전 광치자연휴양림이 있는 곳 펜션에서 하루의 고단하고 우여곡절이 많은 일정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