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

우리 일행이 제주시 오동동의 은퇴 사제의 숙소 현해관(玄海館)을 찾은 건 여름 소나기한 한차례 지나가고 햇빛이 내리쫴서 무덥고 습한 오후였다. 평생을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곁에서 큰 그늘을 드리우며 살아온 성직자의 온화한 미소와 조곤조곤한 음성과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도 넉넉한 기품 있는 몸짓에서 무덥고 습한 날 거목 아래 평상에 드러누운 시원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볼썽사나운 시멘트 빌딩을 짓기 위하여 다 베어져서 도시에서는 시원한 느티나무 그늘이 없듯이, 느티나무처럼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어른도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어른을 만나고 싶었다. 고목나무처럼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어른의 그늘에서 편하게 코를 골며 낮잠을 자고 싶었다. 오늘 강우일 주교님을 만나 뵙고 오니 여름날 느티나무 그늘 평상에서 코를 골며 낮잠을 자고 일어난 듯 몸도 마음도 개운하고 뿌듯하다.
어른을 만나고 싶었다. 꿈과 희망을 나무에서 과실 따주듯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과수원 집 아저씨 같은, 폭풍의 한가운데서도 중심을 잡고 파도를 헤쳐나가는 선장 같은 어른. 분쟁이 있는 곳에 화친의 중재자(仲裁者)로, 영혼이 메마른 이에게 영감을 주고, 넉넉한 미소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이. 온실 같은 아늑한 삶을 찾아 영혼을 팔지 않고 진흙투성이의 삶의 바닥에서도 무언가를 꽃으로 피워낼 줄 아시고 푹 페인 주름마저도 잘 다려진 의상처럼 단정해 보이는 분.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지 않고,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진정 값진 삶이라는 걸 알려주시는 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풍채가 나는 정자나무처럼 나이가 들면서 더욱 꿈을 키우고 나이가 들어감에 연연할 틈도 없이 봉사하면서 스스로를 불가마 속의 명품 도자기처럼 달구며 아름다워지는 사람, 그런 분이라면 나이 든다는 것이 젊음의 상실이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이 완성되는 것이다.


생태, 환경 문제와 평화를 증진시키고 통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기쁘게 할 생각이라며 이번 ‘더 뜨겁게, 더 간절히 평화!’ 행사에 고문을 맡아달라는 부탁도 흔쾌히 수락하셨다. 그는 제주교구장을 은퇴한 뒤에도 생태 문제와 평화 관련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핵발전은 핵폭탄을 잉태하는 자궁과도 같다.”그의 핵문제의 대한 의식은 단호하다.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한번 사고가 터지면 수습도, 통제도 불가능한 종말적인 상황이 야기되고 누구에게 책임 소재를 물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책임질 역량을 가진 사람도 없다”
그의 통일에 관한 비전도 명쾌하다.“사람 죽이는 무기에 엄청난 돈을 낭비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북한 주민의 식량과 복지에 할애하면 남북 긴장 완화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고 강조한다.
고목나무는 키가 커서 삼투압작용만으로는 수분을 머리끝까지 빨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새벽에 이슬을 먹고 부족한 수분을 보충한다고 한다. 이슬 먹고 자라는 고목나무의 기품에 넋을 놓았더랬다. 가난한 이웃에 대한 연민, 생명 존중, 평화를 취한 발걸음을 때로는 조곤조곤 옮기다가도 때로는 단호하게 실천해 온 힘이 느껴졌다. 그가 걸어온 사랑과 평화의 길은 자연을 파괴하고 생명에 역행하는 자들에게는 거침없는 회초리였지만, 마음이 가난하고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격려와 희망이었다. 성하지 않은 몸으로 극한의 먼 길을 떠나려는 나도 어른의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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