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도가 내 성도가 됐는지 알아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옛날에 쓰던 방법 중 하나는 젊은 여집사에게 XX 내려라, 한번 자고 싶다 해보고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이다. 또 하나는 인감증명을 끊어 오라고 해서 아무 말없이 가져오면 내 성도요, 어디 쓰려는지 물어보면 똥이다.”
“성령은 1년에 50km씩 이동한다. 이것은 통성기도를 들어보면 안다. 지금은 중국내륙 지대를 통과하고 있다.” “여러분은 쪼개져야 한다. 내 강의 앞에 여러분의 이론과 신학은 없어져야 성령을 받는다. 이것은 성경에도 없어요.”
라며 성경에도 없는 자신의 강의 내용의 절대성(?)을 주장하였으나 참석자들은 “아멘”으로 화답했다. -이상 퍼옴-
연전의 일이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떠들어대는 소위 ‘빤스목사’의 집회에 한국의 보수교단(합동) 목사부부들이 2만 명이나 개떼같이 몰려와서 아멘으로 화답을 한다니.. 한국목사들의 정신이 온전한 것인가? 이런 자들의 설교를 듣고 사는 교인들의 형편이야 더 말해 무삼하리요...
그러니 대한민국은 더 매를 맞아야 한다. 앗수르를 통해서 맞든지 바벨론을 통해 터지든지 더 많이 매를 맞아야 한다. 아니면 자기들이 뽑은 이명박을 통해서 스스로 찍히든지...
케이트 밀레트의 ‘성(性)의 정치학(政治學)’이란 책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남성은 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여성은 성을 제공함으로서 어떤 댓가를 누려왔다. 성이 사랑의 방법과 목적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수단으로 이용할 때 비극은 발생하는 법이다.
돈과 권력을 가지고 성을 누리려는 자들과 성을 제공함으로서 어떤 무엇을 가지려는 자들은 역사이래로 존재해 왔다.
성상납(性上納)은 미인계의 단골 메뉴이다. 미인계는 손자병법(孫子兵法) 36계중 31계이다. 싸움을 하다가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병법(兵法)이지만 그것은 하급의 계책(計策)이고 그 으뜸이 미인계이다. 많은 군사를 일으킬 필요도 없고 막대한 전비를 쓸 필요도 없고 잘 훈련되고 빼어난 미인 하나면 적장(敵將)을 쉽게 무너뜨리고 적국(敵國)을 통째로 먹을 수 있으니 과연 계책중의 으뜸 계책이다.
사실 빼어난 미인 앞에서 돌부처같이 있을 수 있는 남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빼어난 미녀는 고사하고 치마를 입은 여자만 보면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남정네들의 속성이다. 나는 지금도 미인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 내 아내도 빼어난 미인이지만. 오죽하면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성 앞에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니 기라성같은 도덕군자들이 이놈의 성문제 때문에 하루아침에 몰락했던 것이 아닌가?
과거 한국 교계(敎界)의 거물들이 방북(防北)후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는데 그 이유가 그럴듯했다. 평양 고려호텔에 투숙중인 목사님들을 북한 당국이 미인계를 써서 흔적을 남기고는 그것으로 입막음을 했다는 것이다. 확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해서 나도 방북 할 기회가 있었지만 포기하고 말았었다. 행여나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서 말이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가 재점화되고 있다. 2년전 성접대를 강요당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꽃다운 여인. 그 명단에는 당시 정부 실세들이 포함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장양의 자필 유서라고 증명했다는데 그 유서에는 자신을 농락한 남성들의 이름을 밝히면서 이 인간들과 어울렸던 시간들이 “...악마들과 함께 한 지옥이었다...”고 했다.
장양을 자살로 몰고 갈 정도로 수치심과 모욕을 준 인물중에는 모 신문의 사장 형제도 거론되었다. 그 조부되는 회장이 조선 기생들의 머리를 가장 많이 올려준 한량이었다고 자랑을 하는 형편이고 그 할애비의 그런 것을 보고 배운 그 손자들이 그랬다고 해서 별로 이상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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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문이 자기네 사장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면서 쟁점화한 국회의원을 고소했고 더 나아가 한국사회는 그 일에 대하여는 지금부터 ‘이 건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로 하자’ 라는 묵계가 형성되었다. 검찰이 중간 수사발표를 했지만 그 발표가 제대로 된 발표문이 아닌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당시 우연히 뉴스를 보았는데 그 신문사 회장의 생일잔치에 당시 이명박 당선자가 참석해서 큰 절 수준의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회장은 마치 출세한 아들을 자랑스럽게 접견하는 자세였었고....보기가 민망한 장면이었다. 이미 그 때 그 신문과 이 정권의 ‘불가침 조약‘이 형성될 것이라는 감을 잡았지만 이렇게 비열하게 굴종(屈從)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조국의 내일이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이런 불의한 일을 보고도 침묵하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이냐 하는 것이다. 그 신문이야 자기네 사주의 일이니 침묵한다 하더라도, 다른 신문도 그 침묵의 카르텔에 동조하는 것도 사실 예상했지만, 이런 사악한 일을 보고도 침묵하는 한국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이냐 하는 것이다.
문목사의 방북에 대해서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난 교회, 촛불을 보고 아우성을 쳤던 골통보수우파들, 뉴라이트 똘마니들은 왜 이런 일에 대하여 함구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일은 그쪽 동네에서는 늘상 일어나는 일이기에 관심을 끌만한 소재가 되지 못하다는 말인가?
아니면 자기네들 보스의 프라이버시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에 비하면 이것은 티정도 밖에도 안되기 때문에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기에 그런 것인가? 아니면 권력에 길들여진 비굴한 자들의 생리때문인가?
빤스목사의 발언에 환호하는 그런 수준의 무리들이라면 무명의 힘없는 우리들의 딸이요 동생인 그녀의 자살정도는 언급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 해서 그런 것일까?
더군다나 산 권력 이명박이 큰 절을 올린 자의 집안일이 아니었나? 죽은 권력에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하면서도 산 권력에는 입도 뻥긋 못하는 인간성에 환멸을 느끼면서 ‘너희들에게 화가 있을찌어다!’ 라고 말 하고 싶지만 조국이요 모국이기에 그저 기도만 할 따름이었다. 주님이시여!
글=신재영 (포트리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mone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