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이민 온지 얼마 안 된, 그렇지만 거의 15년 전 쯤, 노회의 존경하는 선배목사님이 후배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신 일이 있었다. 식 후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던 중, 나는 미국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들의 의식이 궁금해서 이런 질문을 했었다.
"목사님께서는 '사회정의', '사회구원(社會救援)', '예언자적인 설교'를 얼마나 하시는지요?
"나는 가끔씩 하고 있지." 식사를 대접하신 대 선배목사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그런 거 안해" 두 번째로 답변하시는 선배목사님은 그 이유를 설명하셨다.
"신목사~, 그런거 설교하면 교회가 안돼~, 그러니까 신목사도 그런거는 설교하지 마~~"
이민 목회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 후배를 위한 고마우신 배려이심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렇게 목회해서 대 교회를 이룩한다 한 들 그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일까? 예언자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목회를 하나님은 좋아 하실까? 그런 교인들을 가지고 이 땅 위에 어떻게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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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원 재학 시절 나는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처럼 되는 것이 꿈인 적이 있었다. 한가한 산골짜기에서 양이나 치다가 "내가 할 말이 있으니 예루살렘에 가서 왕에게 고하라." 하시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전해주고 다시 와서 뽕나무를 치고 양을 돌보는 그런 목자를 꿈꾼 것이다.
그래서 나의 아들의 미국 이름은 'Amos' 이다. 그 아들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의 이름은 '아모스 주니어'라고 했단다. 아들이 또 아들을 낳았는데 이번에 그 아이의 미국 이름은 '미가(Micah)'라고 했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나의 아들 Amos 가 목사안수를 받기로 예정되었던 날, 나이가 두 달이 모자란다고 안수가 보류되었다. 어쨌거나 법정날 수를 채우고 아들이 목사안수를 받게 되니 이 아비의 마음은 기쁘기 그지없는데 안수(按手)를 받던 날 아들의 인사말씀이 이내 아비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어렵게 이민목회하는 아버지를 곁에서 보면서 결코 목사가 되지는 않을 것임을 몇 번 다짐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끝내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산골짜기에서 양이나 치면서 양고기나 구워먹고 양젖이나 짜 먹으면 딱 어울릴 내가 한국사람으로서는 최고로 기가 세고 똑똑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의 목회가 어찌 뜻대로 되리오마는 그래도 아들이 아비의 뒤를 이어주고 그 아들들도 역시 목사와 신학자로 키우고 싶다는 고백을 들으니 또 눈물구멍이 간지러워진다.
신대원에 가서 예언자 Amos에 관해서 공부를 하면서 이런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에게 감사를 드린다는 말 또한 이 아비의 콧등을 자극한 바 있지만 아모스라는 이름이 내게 크게 각인(刻印)된 것은 1973년인가 4년인가 한국에서 임택진 목사님이 예장통합의 총회장으로 재임시 발생했던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유신정부의 검사요, 소망교회의 장로였고 나중에는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낸 이진우가 구약성경본문 미가서 2장을 법정에 고소한 해괴하기 이를 데 없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은 예언자에 대한 연구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 간사를 경영하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찐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 <미가서 2:1-2>
이 본문을 천주교와 공동번역한 성서로 읽으면 더 실감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백성을 후리는 악한 권력자들에게 하나님의 재앙을 선포하는 참 예언자(預言者)가 있는데 반해서 '그런 것은 예언하지 말라' 고 참 선지자(先知者)들에게 훈계하고 겁을 주는 거짓 예언자들도 당대에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어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미가서 2:6>
그들은 소위 말하는 궁정 예언자들이다. 왕을 위하여 예언해 주며 왕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자들이다. 세상적으로 말해서 그들은 당대에는 가장 잘 나가는 예언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왕의 심기(心氣)만을 살필 뿐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망해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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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이나 미국에서 예언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교회와 언론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 사명을 거부한다면 그 사회는 어찌 될 것인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모든 것이 잘 되어간다는 축복의 예언을 하는 동안에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을 읽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는데도 그들은무조건 축복과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만을 선포하라고 한다.
나의 설교학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신대원에서 설교학으로 박사학위(STD)를 받은 정장복 교수 이셨다. 지금은 한국의 어느 신대원 총장으로 계시는데 상당히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셨다.
그 분의 이론에 의하면 설교는 크게 넷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케리규마틱 프리칭(복음전도설교) 둘째는, 디닥틱 프리칭(교훈적인 설교) 셋째는, 패스토럴 프리칭(위로와 격려의 설교) 그리고 프러페틱 프리칭(사회정의, 예언자적인 설교)이다.
그분 자신이 사회정의 구현에 관심이 많았는데도 예언자적인 설교는 한 달에 한번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신대원을 마치고 시골에서 단독 목회로 목회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촌 교인들에게 사회정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못했었다. 아니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대자연을 상대로 농사를 지어 먹는 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것이 목사라는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나는 유신치하(維新治下)에서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어리버리하게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슬~쩍 넘어가려는 신학대학의 교수들과 목사들을 보면서 참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시골에서 5년간 어영부영 지내며 목회경력(?)을 쌓은 후 나는 서울의 Y 교회로 영전(?)되었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구더기가 바지위로 기어오르는 것을 털어내며 일을 보았는데 안방 옆에 화장실이 붙은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고 경운기를 타고 심방(尋訪)을 가야 했는데 자가용이 주어지고 심방가면 가는 곳 마다 강냉이로 만든 엿을 주어서 엿이나 먹고 다녔는데 서울시내 고급식당을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대접을 받았으니 내 생애 최고의 순간들이었다. 가는 곳 마다 왜 그리 촌지는 또 많이 주는 지.....
나의 육(肉)은 즐거웠으나 그러나 영(靈)은 별로 개운치 못한 시절이었다. 나는 거기서 분명히 배운 것이 있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는 진리 말이다. 권력을 가진 자와 돈을 가진 자는 참 성도가 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본 것이다.
그들은 목사 갈아 치우기를 닭모가지 자르듯 쉽게 한다. 원로가 은퇴하신 후 그들은 한국 최고의 목사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담임목사를 모셔오지만 자기들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또 한국 최고의 사악한 자요, 치사한 자로 만들어서 내치는 것이다.
그 교회를 세계적인 교회로 만들 수 있으리라 여겨졌던 박목사를 구두 밑창에 달러나 숨기는 치사한 인간으로 조작(造作)했으며 최고의 구약학자요 걸출한 인품의 김목사 또한 그 비슷한 이유를 대어 내치고 또 내가 직접 모셨던 임목사님은 스스로 말이 안되는 핑계를 대시고 사임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결론은 이렇다. 대형교회는 헌금(獻金)이 많이 들어온다. 그런데 그 돈의 용처(用處)를 목사가 알면 안 된다. 목사는 그저 신령하게 설교준비하고 기도나 하면 된다. 단 생활비는 넉넉하게 대준다, 그러니 알려고 하면 다친다. 그래도 알려고 하면 할 수 없이 자르는 것이다.
어찌 양심있는 목사가 교인들의 피땀어린 헌금의 흐름을 외면할 수 있으리오?
그렇다면 그 돈을 가지고 장로들은 무엇을 하나? 이자놀이를 한다. 장로들끼리의 패거리를 만드는데 사용한다, 그러니 재정부장은 양 패거리가 돌아가면서 맡는다, 재정부장 정도 되면 은행에서 신용대출도 받을 수 있다. 엄청난 특혜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뭐가 어쩌는 식이다. 나는 보았다. 그런 자들의 참담한 말로(末路)를...
최고의 설교를 그렇게 오랫동안 듣고도 변하지 않는 돌짝 밭 같은 심성의 소유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이야 말로 무늬만 신자들이다. 그들의 진정한 하나님은 돈이요 권력인 것이다. 그런 자들이 당회를 장악(掌握)하고 있는 것이 한국 대형교회의 현실이다. 그러니 어찌 대형교회 목사들이 이명박 정권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들을 맞서, 오늘 날, 예언자의 소리를 외칠 자 그 누구랴!
글=신재영 (포트리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mone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