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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不惑)에 평생의 꿈인 조종사가 되어 경비행기로 미대륙 횡단종단을 4차례나 했다. 비행경력 28년에 비행시간만 5천시간이 넘는다. 쌍발기부터 보잉747 등 모든 종류의 비행면허를 갖고 있으며 ‘조종의 예술’로 꼽히는 매뉴얼 비행의 일인자로 꼽힌다. 오늘도 '애기(愛機)' 파이퍼 워리어를 몰고 하늘을 나는 ‘60대 청년’ 신상철 기장의 파란만장한 항공인생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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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이국의 첫날 밤(下) 세상에 어떻게 이런일이

글쓴이 : 신상철 날짜 : 2011-11-28 (월) 06:48:13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는데 내 눈에 뜨인 어느 한 젊은이, 아! 분명 한국 사람이다.

나도 모르게 “여보세요, 한국분이시지요?” 하고 물었다. 그도 역시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기분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재민’이라는 이름의 젊은이를 만난 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 (그 친구도 지금쯤 60이 다 되가는 중년의 나이가 돼 있을 것이다)


www.en.wikipedia.org 

그 젊은이의 도움으로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텔로 옮겼다. “제가 오늘은 일이 있으니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약속대로 그 다음날 다시 찾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사시려면 우선 살 집부터 마련하셔야 될것 아니냐”며 방을 얻으러 가자고 한다.

해서 시내 Bus를 타고 한시간여를 달린 후 도착 한 곳이 알젠틴의 한인의 고향 소위 ‘백구촌’이라는 곳이었다. (시내 Bus 노선 번호 109번 종점이라 이렇게 불린다.)

 

재민군을 따라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세놓을 방이 있냐고 물었으나 없다는 대답뿐이었고 더군다나 한여름 뜨거운 태양빛에 하수구가 막혀 넘쳐나온 오물(汚物)들이 떠다니는 길 위를 어린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노는 것을 보고는 엄청난 허탈감을 느끼고 아무리 좋은 상황이 벌어진다해 도 이곳은 아니다,,,!

이보다는 조금 나은데는 없겠느냐는 나의 부탁에 재민군도 동의하여 다시 Bus를 타고 또 한시간여를 달려간 곳이 ‘씨우다델라’라는 곳으로 ‘뻬론’ 정권당시 우범지대(虞犯地帶)였던 판자촌을 헐고 제법 아파트다운 건물들로 지었으며 아파트 촌 중앙으로 Bus도 지나가며 약 천 세대에 공중전화까지 한대씩 설치되어 있었다.

십여층 고층 아파트 일층에 칸막이를 해서 만들어 구멍가게를 하고 계신 초로(初老)의 할머니가 재민군을 보며 반가운 인사를 주고 받는다. 이동네 빈 방이 있겠느냐고 묻자 그 할머니 왈 “아이구 빈방 없어! 딱 한군데 이층 빈방이 있는데 어린아이들이 있으면 그집에서 못살거야! 그집 아이들이 너무나 별나서 들어갔다 한달을 못살고 나와” 하시는 것이다.

이제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재민씨. 그집이라도 가 봅시다.”

한참을 걸어서 건물 외벽을 타고 설치해 놓은 계단을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얼마후 “누구세요?” 하는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 여인과 나의 눈이 마주칠 때 우리는 서로의 눈을 의심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음처럼 탄성이 터져나왔다.

“어! 아주머니,,,,”

“어! 아저씨,,,,,,,,,,,,,,,,”


.....

.....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3년전쯤, 서울의 성북동 아파트에 살 때 아래층에 살던 그분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눈이 왕방울 마냥(죄송한 표현) 크고 아들 둘, 딸 하나가 연식도 다르지 않게 우리와 일치했고 툭하면 우리 아이들을 때리고 싸워서, 아이들 싸움 때문에 어른들이 항의성 인사를 하다 알게 됐던 사이. (이 아주머니는 10년도 넘는 세월 저편에서 안타깝게 암으로 명을 달리하셨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러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졌는데 지구 반대편에 와서 이렇게 딱 마주치다니!!!!!!!!!!!!!!

“아저씨 이게 웬일이세요?”

그동안 여기까지 오게된 자초지종(自初至終)의 이야기를 대충 끝내자, “아저씨 가 계셔요! 우리 아이 아빠 내일 그곳으로 보낼께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를 어떻게 타고 왔는지, 아무 기억도 없다.

그 다음날 아침 그집 아빠가 자기 차를 몰고 호텔에 우리를 데리러 오더니, 구수한 충청도 억양으로 “어여 갑시다.” 하며 우리 짐을 싣고 그 집으로 향했다.

한국인 백여가구가 모여 사는 이곳의 동포들 대부분이 유태인들에게서 받아오는 삯바느질을 하거나 빈민가에서 식료품장사, 혹은 행상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빈곤한 생활이었지만 서로 어려운 살림에도 우의(友誼)들은 좋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달픈 이국에서의 외로움을 주말이면 교외에 나가 그 유명한 Asado(알젠틴식 갈비구이)를 굽고 Vino(포도주)를 마시며 시름을 달랬는데 첫 주말 우리 식구도 동네분들과 같이 교외에 나가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아뿔사! 그 달콤한 Vino가 문제가 되고 말았다. Iran에서 온 일가족이라고 이사람 저사람들이 반갑다고 한잔! 앞으로 잘 살아보라고 한잔! 주는대로 연거푸 받아 마시는 바람에 형편없이 취해 공원 잔디밭에서 몇시간을 자게 만든 혹독한 신고식이 되었다.

바야흐로 이곳에 온지도 2주가 지났다. 주인집 허드렛 일이나 봐주며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하던 참, 동네 전기수리상을 운영하던 젊은 총각이 Venezuela로 재이민을 가기위해 가게를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가게를 내가 인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그분이(서울서부터 알던 집주인) 자기가 들던 계를 나에게 돌려주며 차액을 내가 지불키로 하고 팔자에 없는(분명이 없음) 아무것도 모르는 장사를 생애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의 운명은 아무리,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불과 한 달도 안되는 사이에 이토록 엄청난 변화 앞에서 또 그것에 적응해 나가는 인간은, 인간이기에 할 수 있고, 인간이기에 쓰러지지 않고 걸어 갈수 있지 않는가!

이곳 생활의 결론부터 되는 것 같으나, 앞으로 4년반 동안 이어지는 이곳에서의 이야기들을 계속 써내려가고자 한다.

우리 가족 다섯명에게 생존을 이어가게 해준 알젠틴이라는 나라에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또한 지금 미국 어딘가에서 살고있을 재민군도 잊을수 없는 은인이며, 부인과 둘째 영식까지 앞세우고는 외롭게 알젠틴과 미국에 사는 막내딸 집을 오가며 여생을 보내시는 김한주 형께도 아울러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더불어 Iran이 지금은 회교공화국으로 국제적인 말썽을 일삼는 나라로 전락(轉落)했지만 아무튼 우리 가족에게는 어둠에서 빛을 보게 해준 고마운 나라(특히 팔레비 왕)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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