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에 훅 갔다.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사표를 냈으니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이라고 해야겠다. ‘한국판 미투캠페인의 절정판’이라고 할 안희정의 범죄적 스캔들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를 좋아했든 싫어했든 앞길이 창창했던 정치인이 이처럼 미친 짓을 하다 고꾸라지는 사례는 전례(前例)를 찾기 힘들 것 같다.
JTBC에 나와 용기있는 고백을 한 피해자와 달리 안희정은 짧은 토막사과를 SNS에 남기고 잠적(潛跡)했다. 나흘만에 기자회견 소식이 알려졌으나 두시간전에 취소하고 검찰 조사를 받겠다는 뜻만 측근을 통해 밝혔다. 심리적 공황상태가 됐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인간적 동정은 가지 않는다. 그로 인해 겪은 피해자의 고통은 물론, 수많은 지지자들과 일반 국민들까지 받은 상처가 실로 적지 않기때문이다.
어쨌든 잠수를 탄 그의 모습은 충청남도 도지사에, 민주당 대선주자로 돌풍을 일으킨 거물정치인 치고는 너무나 졸렬하다.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충격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캠페인이 법조와 문화예술계에 이어 정치권력에 빠른 속도로 불붙고 있다.
그런만큼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뉴스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대세 언론권력 김어준이 얼마전 팟캐스트 ‘다스뵈이다’에서 돌연 미투 ‘공작예정설’을 꺼내 파문이 일었다. 그는 “예언을 할까 한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미투 운동과 같이 위계에 의한 성범죄 뉴스가 많다. 그런데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어떻게 보이냐. ‘첫째 섹스, 좋은 소재이고 주목도 높다. 둘째, 진보적 가치가 있다. 그러면 피해자들을 준비시켜 진보 매체를 통해 등장시켜야겠다.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사고가 돌아가는 것이다...올림픽이 끝나면 그 관점으로 가는 사람들이나 기사들이 몰려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의 예언(?)은 즉각 논란을 몰고 왔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어준씨의 발언으로 피해자 중에는 ‘내가 나서서 피해 사실을 밝히면 어떤 사람들은 나로 인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 지지층이 타깃이 된다고 보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김어준씨는 자신의 발언으로 상처 입은 분들에게 사과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김어준의 ‘예언’ 아흐레 만에 안희정의 성추문이 폭로되자 ‘소름돋는 예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일각에선 이미 알고 있었던게 아니냐고 갸우뚱한다. 정작 김어준은 6일 tbs ‘뉴스공장’에서 “여러모로 충격적인 뉴스다. 이 내용이 단순히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라 위계에 의한 성폭행, 위력에 의한 성폭행으로 특정돼 있지 않나"라고 했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뉴스다. 정치인 안희정으로서는 'JTBC 뉴스룸'과 함께 정치 생활 끝난거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예언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지만 정황상 그가 안희정을 염두에 두진 않았을 것이다. 왜일까? 미투의 대상을 특정하기엔 정치권의 숨어있는 성범죄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7일엔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펼쳐졌다. 더불어민주당에 복당을 신청한 정봉주 전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 선언을 하기 직전 프레시안이 현역기자 A씨가 정봉주 전의원에게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는 충격 보도가 나온 것이다. 정 전 의원은 명예훼손(名譽毁損) 등 법적 대응을 예고하며 출마선언을 예정대로 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자회견 5분전 전격 취소했다.
아직 진실여부는 두고 봐야 하지만 일단 피해자를 주장하는 A씨가 현역기자로서 구체적인 내용을 증언하고 있다는 점, 이를 보도한 언론이 신뢰할만한 진보언론 프레시안이라는 점에서 정봉주 전의원이 불리해 보인다. 무엇보다 떳떳하다면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예정대로 하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아다시피 정봉주 전의원은 김어준 김용민 주진우 등과 함께 2011년 팟캐스트 나꼼수 선풍을 일으킨 주역중 하나이다. 상당수 네티즌들은 김어준의 예언이 바로 정봉주 전의원을 염두에 두고 일종의 물타기를 한게 아니냐며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그러나 난 김어준이 꼭 정봉주를 의식해서 그런 말을 한 것으로 생각치 않는다. 사실 진보인사들의 성추행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정권교체로 권력의 축이 진보쪽으로 이동, 음지에 있던 가해자들을 포함한 많은 인물들이 양지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피해자들은 아픈 상처가 더 커졌고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때마침 미투캠페인이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다. 차마 나설 수 없었던 많은 이들이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진짜 코미디는 미투캠페인이 본격화되면서 자유한국당이 “진보의 이중성에 소름이 돋는다”고 비아냥대며 깨끗한 보수인양 자화자찬하는 행태다.
자유한국당 홍지만 대변인은 6일 ‘문재인 정권의 치 떨리는 이중성’이란 제목의 논평에서 “지금 여권엔 미투 당사자와 부역자가 판을 친다. 토할 것 같은 역겨움이 올라온다는 국민들의 반응이 밤새 전해졌다”면 “도대체 문재인 대통령 주변엔 미투 인사가 왜 이렇게 많은가”라고 개탄(?)했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자유한국당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해 “미투운동이 더 가열차게 돼서 좌파들이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고 엉뚱한 기대감도 표출했다.
성추행 문제는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는 ‘마초’들의 광범위한 병리적 행태로 봐야 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진보쪽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정권초기 현상의 하나이다. 비단 성추행이 아니더라도 역대 정권마다 초기엔 수많은 인사들의 문제가 불거졌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명박근혜' 정권시절 끊이지 않던 ‘인사참사’들을 돌이켜보라. ‘비리백화점’이라고 불릴 정도로 흠결 많은 자들때문에 기함(氣陷)할 정도였다. 과거 새누리당의 별칭처럼 불렸던 성누리당을 잊었단 말인가.
그나마 진보라서 피해자들이 용기있게 나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상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쥐고 있는 가해자의 절대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 이 순간 보수 수구의 그늘 어딘가에 겁에 질린 채 소리없는 울음을 삼키는 더 많은 피해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것일까.
하루가 멀게 새로운 미투폭로자가 이어지면서 이 나라가 성추행공화국이 된게 아니냐는 자조적 탄식(歎息)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파문의 강도만큼이나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고 성평등에 대한 인식도 개선된다면 충분히 가치있는 아픔이 될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소곤이의 세상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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