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乙未年) 새해가 밝아온지 벌써 열흘이 지나갑니다. 지난해도 그랬지요. 새해를 맞았나 싶더니 봄이 되고 여름의 신록이 우거지더니 낙엽의 성찬이 부는 가을, 그리고 겨울이 쏜살같이 이어진 느낌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나이에 따라 세월의 속도가 오른다는 말을 하지요. 20대엔 20km의 속도로 천천히 가던 세월이, 30대엔 30km로 조금 빨라지고, 40대는 40km, 50대는 50km..이렇게 60.km, 70km 빨라진다고 말입니다. 그러고보면 어릴 땐 그렇게 더딘 세월이 나이를 먹을수록 빠르게 지나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 수록 세월이 빨리 흐르는 이유가 과학적으로 입증(立證)이 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지난번 서울에 들어갔을 때 친구의 얘기인즉슨, “나이를 먹으면 기억이 쇠퇴(衰退)하기 때문에 세월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어라, 이틀전에 내가 뭘 했지?’ ‘지난 월요일에 어딜 갔더라?’..한달 두달 처럼 오래 된 일은 말할 것도 없고 단 며칠전의 일을 곰곰 돌이켜봐도 잘 생각이 안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젊을 수록 기억이 오래가고 명료하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이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죠.
아닌게아니라 제가 스무살 성년이 될 때까지 20년은 참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들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세 살 때 기억도 선명합니다. 밖에 나가 놀다 집에 왔더니 툇마루에 있던 네 살 위 누나가 쉿 조용히 하라고 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엄마가 해산(解産)의 진통을 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대개 집에서 산파(産婆)의 도움으로 아이를 낳았지요. 세 살때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도 당시 상황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어느날 어린 동생이 마당에 있던 재래식 변소에 살짝 빠지는 일이 있고난 후 엄마가 고사떡을 앞에 놓고 삼신할머니에게 고사를 드리던 모습, 아현동 판자촌에 사는 친구집에 갔더니 좁아터진 방에 예닐곱명이 누을 공간이 없어 발을 엇갈린채 양쪽에서 누워 자던 모습, 두 살 위 벙어리 여자친구와 ‘말없이’ 놀던 어슴푸레한 장면들이 모두 다섯 살 이전의 기억들입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다양한 추억의 편린(片鱗)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비단 저만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렸을 때 일들이 유달리 선명하게 많이 떠오르는 것도 기억의 뇌세포가 건강하기도 하거니와 어른처럼 시간에 구속되지 않고 나 자신의 삶을 온유할 수 있었기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스물이 될 때까지는 그렇게 많은 일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갑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스무살부터 마흔살까지는 사정이 다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무렵 일들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실 수 있나요? 이십대초반까지는 그럭저럭 생각은 나지만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십대 후반부터 사십까지는 쏜살처럼 빨리 지났다는 느낌이 안드시나요?
하물며 사십이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마흔살부터 육십살까지 겪은 일들은 첫 스무해의 십분의일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지났는지 실로 기함(氣陷)이 날 노릇입니다. ㅠㅠ
그동안 대체 한 일이 무엇인가, 돌이켜보면 허무하기도 하구요. 그냥 앞만 보고 열심히 산 것도 같고, 남들처럼 아이들 키우며 먹고 살다보니 어느날 문득 하얗게 세어버린 귀밑머리에 머리털 숭숭 빠져가는 중늙은이가 거울속에서 처연한 모습으로 바라보는게 아닙니까.
나이 스물엔 마흔살이 되는게 까마득한 먼 훗날로 여겨졌는데, 그 마흔이 참 부러운 젊음으로 보일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아마도 또다른 십여성상이 훌쩍 지나버리면 지금의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지겠지요. ^^
궁하면 통한다더니 저는 요즘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실 분들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아직 늦지 않았거든요. 영화 ‘인터스텔라’ 마냥 웜홀을 통해 시간여행을 한다 해도 시간의 절대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이제부터라도 세월의 흐름을 천천히 하고 싶다면 시간에 맞춰 딱딱 하는 습관을 버리는 겁니다.
먹고 살아야 할거 아니냐구요? 맞습니다. 먹고 살아야지요. 그런데 먹고 사는 데 얼마나 필요할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적어도 여러분이 자녀들도 다 장성한 오십대 이상이라면, 달랑 두 부부 사는데 그리 많은 돈이 필요치 않습니다.
내가 바쁜 이유는 먹고사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벌어대느라 그런 겁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벌고 더 호화롭게 살고 싶은 욕심에 좋은 자리 좋은 벌이를 탐내고 쉬지도 못하고 노동의 바다에 빠져 허둥대는게 아니겠습니까.
다람쥐 쳇바퀴마냥 도는 일에서 헤어나와 동네 주변 산보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시간도 더디 가고, 기억의 저장창고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 느껴질 겁니다.
딱 자신이 먹고 사는데 필요한 농사일을 하면서 독서와 저술, 강연활동을 한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평화주의자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은 소수 권력층의 집안에서 인생을 시작했지만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100세를 맞은 해 품위와 존엄이 있는 방식의 죽음을 맞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일체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의학적 배려도 거부하고, 고통을 줄이려는 진통제와 마취제의 도움도 물리치며, 물과 음식조차 끊고,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죽음을 맞은 것입니다.
스콧 니어링이 인생 목표로 삼은 열두가지의 길을 소개합니다.
-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 미리 계획을 세울 것
- 일관성을 유지할 것
-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멀리 할 것
-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 그날 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 계급투쟁 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할 것
-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끝으로 ‘너 늙어봤냐’ 노래를 링크합니다. 가수 서유석의 28년만의 정규앨범인 이 곡은 정식 발표하기도 전에 지난 가을 ‘60대 어르신 자작 뮤비’라는 제목으로 유투브 조회수가 60만회를 돌파하는 등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너 늙어봤냐 가사
http://blog.daum.net/ys1340/8486413
너 늙어봤냐 뮤비
http://blog.daum.net/csp9211/7820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