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일어난 헬기 사고로 한국의 ‘부나비 매체’들이 요란한 보도를 하고 있다. 아침나절 서울 강남 고급아파트 단지에서 보기드문 헬기 충돌사고가 났으니 놀랄 일은 당연하지만 방송 뉴스시간의 절반을 차지한 것은 역시나 선정주의(煽情主義)에 올인하는 한국매체들 답다.
거대 언론권력인 포탈사이트 또한 헬기사고로 도배(塗褙)돼 있다. 응당 네티즌의 반응은 뜨겁다. 순직한 두명의 조종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자의반 타의반 안개속에 무리한 비행을 했을 정황, 그에 대한 분노 등등..현재로선 사고 원인이 미궁이다. 온갖 추측이 난무(亂舞)한다. 확인된 사실도 미확인 사실도 있다. 어쨌든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은 아니다.
네티즌 반응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신생포탈이라 상대적으로 마이너인 ZUM에 오른 것이었다.
“LG가 SAMSUNG동에서 HYUNDAI 아파트와 충돌...한국 대기업의 병폐를 명확히 보여주네” (zumd**** | 11.16 22:01)
‘LG헬기, 삼성의 현대 아이파크 아파트와 충돌이라..’ 참으로 공교롭지 않은가. 한번 일어나기도 힘든 사고에 삼성과 현대 LG의 3대그룹의 이름이 엮였으니 말이다. 헬기사고에 ‘대기업의 병폐(病廢)’가 왜 들어갔는지는 요령부득이지만 우리나라 재벌 대기업의 부정적 이미지를 풍자한 것이려니 생각한다.
각설하고, 처음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어느 소방대의 낡은 헬기가 응급구조를 펼치다 일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LG 보유 헬기가 잠실 선착장에 가려다 아파트와 충돌한 것이었고 그 헬기는 최신형이라는 소식에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photo by 뉴시스 조명규기자
LG의 헬기는 8인승 시콜스키 S-76 C++(HL9294)로 최첨단 장비인 E-GPWS(지상근접경보체제)가 탑재(搭載)돼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최대 8명을 태우고 시속 290㎞로 839㎞까지 운행할 수 있으며 세계 각지에서 VIP 수송 헬기로 애용되는 기종이다.
뉴시스에 따르면 기장의 25년 친구인 전모씨(58)는 “헬기에 설치된 E-GPWS가 정상 작동했다면 건물 접근 전 경고음을 내 아파트 충돌 사고를 막았을 것”이라며 “이 장비가 있는 상황에서도 사고가 난 것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더구나 기장과 부기장은 과거 대통령 전용헬기를 몰았던 경력의 최고 베테랑들이었다. 헬기의 결함이나 조종미숙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얘기다.
LG의 발표에 따르면 헬기는 LG전자 안승권 사장(CTO)과 상무 2명, 부장 1명 등 4명이 전주에 있는 칠러(냉난방 공조기기) 공장을 둘러보기 위해 탑승할 예정이었다.
이날 오전 8시48분 김포공항을 이륙한 헬기는 한강을 따라 오다가 잠실 헬기장을 1.2km 앞둔 영동대교 부근에서 기수를 오른쪽으로 틀어 삼성동 방향으로 진입한 뒤 8시54분쯤 짙은 안개 속에서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38층)의 24층 지점과 충돌했다.
이 때문에 헬기의 행선지가 잠실이 아니라 아이파크 옥상에 있는 헬기착륙장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태우기 위해 무리하게 비행한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 와중에 네티즌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인물이 LG부회장 구본준과 새누리당의원 김을동이었다. 이날 오후 1시 전북 익산에서 열리는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에 참석하기로 전날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이다.
사고기장의 아들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아버지가 아침에 회사 측과 통화하면서 ‘안개가 많이 끼어 위험하니 김포에서 직접 출발하는게 어떻겠느냐’고 상의하는 내용을 들었다”, “그래도 회사에서는 잠실로 직접 와서 사람을 태우고 (전주로) 내려가라고 한 것 같다”, “높은 사람도 같이 (헬기를) 타고 내려간다고 들은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잠실에 들렀다 전주까지 시간을 맞춰 가려면 시간이 없다고 급하게 나가셨다” 등의 얘기를 했다.
LG는 당국에 두 대의 헬기 비행 신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는 오전 9시, 두 번째는 10시반이었다. LG전자 남상건 부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사고가 난 첫 번째 헬기가 안승권 CTO등 임직원이 타기로 한 것이고 두 번째 헬기에 자신이 타고 야구대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본준 부회장은 차량을 타고 전주에 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50분이면 목적지까지 날아가는 VIP 헬기엔 아래 직급인 임원들이 타고 오너 일가인 부회장은 몇시간 걸리는 차량을 이용한다고?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안한다지만 무리한 비행의 원인이 부회장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을 모면하려는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당근 나온다. 의원을 모시고 가는데 부회장이 에스코트를 마다한다? 헬기 자리가 모자른 것도 아니고..쩝
어쨌든 정황(情況)상 사고 헬기는 안승권 CTO 등 임직원 탑승이 맞는 것 같고 두 번째 헬기에 김을동 의원이 탑승하려 했던게 맞는것 같다. 아침부터 공장까지 시찰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photo by 뉴시스 조명규기자
현대 아이파크가 작은 아파트 한 채에 25억원, 큰 것은 100억원에 달할만큼 최고급 아파트라지만 이곳에 사는 ‘썸바디’를 위해 착륙을 시도했다는 것은 억측으로 보인다. 비상상황이 아니고서야 주말 아침 헬기가 엄청난 소음(騷音)으로 단잠을 자는 최고급 아파트 주민들을 깨우며 옥상에 착륙하겠는가. 사고 직후 강남구청이 해당 아파트 주민 전체를 고급 호텔로 부랴부랴 모신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근데 구청이 왜 나서는걸까. 사고책임을 져야 할 LG는 뭐하고?)
일부에선 ‘조막만한 나라에서 무슨 헬기를 타고 이동하냐’고 힐난(詰難)하지만 시간에 쫒기는 재벌 총수나 임원들이 제 돈 갖고 쓴다는데 어쩌겠는가. 더구나 여당 국회의원을 모시는 중차대한 임무 아닌가. 기왕이면 VIP 헬기 타고 편하게 늦가을의 멋진 경치를 하늘에서 감상하며 시간도 절약하고 재벌기업과 중진의원과의 관계도 돈독히 하고, 일석삼조, 사조이거늘.
지난 2011년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기 위해 혼자서 벤츠 미니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고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신세계 관계자 왈 “시간이 돈인 그룹 오너로서 길에다 버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미니버스를 구입한 것으로 안다”고 했단다. 정용진 시간만 돈이고 일반인 시간은 똥인가? 하고 싶지만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을 되새길밖에. 정용진 미니버스 관련기사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4160735
다시 각설하구, 중요한 것은 재벌이 전용기타고 높은 분 모시고 가는게 아니라 LG라는 갑의 위치가 피고용인 을의 무리한 비행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다. 보도에 따르면 사고 기장은 안개 때문에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게 좋겠다고 했다가 한시간뒤 안개가 걷히고 있으니 출발하겠다고 했단다.
과연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면 여전히 서울엔 안개가 자욱한 상황에서 기장이 비행을 감행했을까. 갑이 오지말라고 하지 않는 이상, 을이 최소한 심리적 부담감에 무리했을 개연성(蓋然性)이 크다.
또한가지 의문은 왜 방향을 틀었냐는 것이다. 기체결함여부와 헬기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블랙박스를 조사하면 나오겠지만 문제의 비행루트를 수도없이 오간 기장이 갑자기 오른쪽으로 선회한 것은 애당초 목적지가 잠실헬기장이 아니지 않느냐는 의심을 하게 한다.
이와 관련, 천지일보는 사고 헬기의 최종 목적지가 잠실이 아닌 코엑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기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을 찾은 30년 친구 김모(58) 씨는 “평소 박 기장은 비가 오거나 날씨가 안 좋은 날은 기계비행을 한다고 말해왔다. 오늘 같은 날 시계(視界)비행을 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비행루트로 보아 목적지가 잠실이 아니었던 것같다고 의문을 표했다.
잠실 헬기장은 영동대교를 지나 잠실 종합운동장 방향으로 향해야 하는데 사고 지점은 잠실 헬기장과 정반대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고가 났다는 곳이 아이파크 아파트이길래 당연히 코엑스 헬기장으로 간다고 생각했다”며 “잠실 헬기장이 최종 목적지라는 LG전자 측의 설명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만일 목적지가 잠실이 아니라면 왜 LG는 다르게 말한 것일까. 진짜 목적지는 코엑스인가? 아니면 제3의 목적지가 있는걸까? 현 시점에서 이번 헬기사고는 많은 의문을 낳고 있다. 블랙박스는 물론, 기장과 LG임원의 통화내역 등 모든 것이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밝혀져야 할 이유다.
사족(蛇足) 하나, 제발이지 한국의 신문방송들이여. 한가지 사안으로 뉴스를 떡칠하지 마시라. 몇 년전 뉴욕 맨해튼에서 경비행기가 뉴욕 맨해튼의 주상복합 건물과 충돌해 추락한 적이 있다. 9.11의 참사가 생생한 뉴욕에서 경비행기의 충돌은 충분히 경천동지할 일이었지만 한 차례 보도로 마무리됐다. 테러의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알려야 할 일은 너무나 많지 않은가.
photo by 뉴시스 김인철기자
사족(蛇足) 둘, 이번 사고로 잠실에 세워지는 제2롯데월드 123층 빌딩이 주목받고 있다. 지상 555m의 엄청난 타워빌딩,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다는데 김대중 노무현정권때 인근 성남비행장 이착륙 비행기의 안전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건설이 불허됐다가 이명박정권때 허가받고 공사가 한창이다. 고작 24층 아파트와 충돌했는데 그보다 다섯배는 높은 건물의 안전을 믿어도 될까. 더구나 인근에 비행장까지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