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두고 일방적으로 연기하는 순간 고소를 머금을 세력들이 떠올랐다. 화해와 해빙이란걸 극도로 싫어하는 남과 북의 꼴통강경파들이다.
매파는 본질적으로 냉전을 주식으로 먹고 사는 자들이다. 남과 북이 으르렁대야 국방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래야 목소리를 키우고 떡고물도 많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호전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결정적인 싸움은 하지 않고 적당히 긴장이 유지되는 상황이다.
필요하면 큰 피해가 없는 국지적인 충돌도 벌이며 아슬아슬 외줄타기로 스리슬쩍 넘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지난해 12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연초 3차 핵실험을 하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는게 아니냐는 일부의 우려가 있었지만 한반도에서 전면전은 남과 북 어느 한 곳의 정권이 돌연사(突然死) 하기전에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전면전은 어느 한쪽이 죽든가, 최소한 쌍방에게 만회하기 힘든 피해를 안겨준다. 남한 사람들은 툭하면 ‘불바다’ ‘전쟁불사’ 운운하는 북한이 정말 전쟁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북한의 지도자가 자칫 권력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선제공격을 할 리가 만무하다.
원래 말싸움은 거칠수록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反證)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세계최강대국 미국의 군대가 주둔한 남한을 선제공격하는 미친 짓을 벌이기는 커녕, 미국이 첨단의 군사력을 이용해 선제공격을 하지는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
북한이 지난 봄까지 긴장을 극대화한 것은 권력의 과도기에 있었기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은 공포감 조성으로 군부 강경파를 휘어잡고 인민들로 하여금 결사보위의 자세로 내부 결속을 다지게 하는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경제손실을 보기도 했지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지도자의 정치적 후과는 훨씬 더 컸다. 그 손해란게 북한만 본게 아니고 기실 남한의 손실액은 더 컸으니 확실히 남는 장사였다.
게다가 적당한 시기 유화전술을 시도함으로써 인민들에게 지도자가 강력한 카리스마는 물론, 이성적인 대화도 할 줄 아는 경륜을 겸비한 난세의 영웅이라는 것도 인식시킬 수 있었다.
그럼 미국과 남한 은 당하기만 하는 바보인가? 물론 아니다. 남한도 미국도 짭짤한 수익이 있다. 보수 강경파의 입지는 더없이 공고해졌다. 한반도에 엄청난 재래식 무기체계를 팔아먹어도 반대할 목소리가 나올 명분이 없으니 미국의 군산복합체도 어깨춤이 절로 난다.
까짓것 경제는 여전히 어려워도 ‘고삐풀린 망아지’같은 북한을 상대했다는 것만으로도 지도자는 점수를 딴다. 국정원 대선개입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직무 수행의 적합성을 의심받아야 할 대통령의 지지율이 60~70%로 나오는 미스테리가 무엇때문인가. 모두가 북한의 으름짱덕분이다.
박정희가 소위 ‘시월유신’으로 영구(永久) 총통제(總統制)를 들여와 민주주의를 압살(壓殺)하고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의 남침위협을 흘러간 유행가처럼 삼았기 때문이다. 6.25의 그 끔찍한 비극은 그 시대 우리 국민들에게 공포의 트라우마였다. 박정희의 정권유지를 위해서라도 김일성은 꼭 필요한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다.
물론 김일성도 ‘냉전(冷戰)의 장기판’을 주고받아야 할 상대가 선거에 의해 자꾸 바뀌는 것보다는 적당히 욕을 먹는 ‘스트롱맨’이 붙어 앉는게 낫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북의 독재자끼리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쇼도 했던게 아닌가.
이산가족 상봉의 일방 연기는 남한의 보수정권에 또 한번 힘을 실어주었다. 네티즌의 댓글들은 북한 비난으로 홍수를 이룬다. 눈이 짓무르도록 그리워한 가족을 며칠뒤면 볼 수 있다는 흥분감에 잠 못 이루던 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잔인무도한 행위 아닌가.
우리도 개성공단을 영구 폐쇄해 북한을 아프게 하자는 네티즌도 있다. (정말 누가 더 손해인걸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도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며 눈치없이 내세웠다간 ‘에라이 종북 좌빨같은 개쉐이들’이라는 융단폭격을 받을 판이다. 기실 북한 혼자 북치고 장구쳤을뿐, 한게 아무것도 없는 대통령인데 “북한 하나는 잘 다룬다”며 칭송(?)이 쏟아져 나온다.
북한이 왜 이럴까. 원하는대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좋고, 그게 아니라도 개성공단은 이미 돌아가게 됐으니 카드 하나를 어설프게 줄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북한이산가족의 낙담과 실망? 그거야 남조선 괴뢰정권의 탓으로 돌렸으니 사무친 원한은 오늘도 남한정권에게로 향할 뿐이고.
북한의 조변석개(朝變夕改)를 보면 아직은 자리가 굳건치 않은 지도자가 보수강경파를 장악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남북해빙이 권력에 누수(漏水)를 가져온다면 생트집을 해서라도 막아야 할 일이다.
북한의 지도자와 남한의 대통령은 아무리 봐도 잘 통한다. 한쪽은 선무당이요, 다른 한쪽은 불통고집으로 보이지만 ‘하느님이 보우하사’ 동시대의 동반자(同伴者)가 되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냉전의 장기판을 척척 두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