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정말 몰랐다. 언제부턴가 해병대(海兵隊) 극기훈련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 전반에서 열풍처럼 불었지만 그게 다 해병대에서 위탁받은 훈련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의 참사(慘死)가 터지고 나고보니 그게 다 가짜 해병대란다. 해병대에서 민간을 대상으로 하는 위탁훈련은 포항의 1사단에서 운영하는 것만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다 짝퉁이었다는 얘기다. 전국의 30여곳에서 하고 있다는 극기훈련(克己訓鍊)이 말이다.
정말 이넘의 나라 어처구니가 없어도 너무 없는 나라다. 군소여행사가 학교와 유스호스텔과 손잡고 해병대 극기훈련을 흉내내다니. 두명의 교관은 여행사가 고용한 임시직이라구? 이게 대체 무슨 개같은 경우인가.
창졸간에 어린 자식들을 가슴에 묻어버린 부모와 가족들은 어찌하라고. 그 많은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무자격자라니 그야말로 우리 아이들은 선무당의 손에 목숨을 맡겨놓았던 셈이다.
이번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은 해당여행사와 학교측이 져야겠지만 근본문제는 해병대와 정부당국에 있다. 해병대는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 부랴부랴 해병대와는 아무 상관없는 민간업자들이 주관한 캠프라고 행여 불똥이 튈까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해병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요청했지만 들어먹히질 않았다고 변명을 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의 문패를 민간업자들이 도용하는데 쓰지말아달라고 몇 번 말하는 것에 그쳤다니.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해병캠프를 해병대가 주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귀신잡는 해병대’말이다. 당연히 해병대에 대한 신뢰가 캠프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을 것이다. 숙련된 조교들이 안전한 시설에서 아이들의 용기와 인내심을 심어주는 멋진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감으로 돈을 주고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과 상관없다니. 상관없는 무자격자들을 고발해서라도 자신들의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해야 하는게 아닌가. 필경 해병대는 여름나절 전국 각처에서 벌어지는 해병극기훈련을 해병대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해병대는 남자다운 남자들의 ‘로망’이 되고 있다. 기왕 군대를 갈바에야 ‘빡센’ 해병대를 다녀오는게 멋지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젊은 친구들한테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빈 등 연예스타들의 해병대 자원입대도 이미지를 순화(馴化)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해병캠프가 자신들과 상관없지만 돈도 안들이고 해병대를 홍보해주니 ‘불감청 고소원’이 됐을 법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 해병캠프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였어야 한다. 해병대가 직접 운영할 수는 없어도 캠프관계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교육과 훈련을 시켜줄 수는 있지 않은가. 여름 한철 열리는 캠프라면 진짜배기 교관들을 파견하는 계약이라도 맺을 수 있고 말이다.
겉은 해병캠프라 해놓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붉은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해병교관 흉내를 내는 이런 사기극이 어디 있는가. 기본적으로 해병극기훈련은 위험(危險)이 수반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소풍을 가더라도 안전사고가 날 수 있는데 육체적인 고통을 주면서 인내심을 배양하는 극기훈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위험천만한 캠프가 우후죽순(雨後竹筍)으로 열리는데 뻔히 사정을 아는 정부당국은 팔짱을 낀 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공주사대부고는 아예 학과목으로 극기훈련이 편성돼 있었다는데 많은 학교들이 대동소이하다면 무자격업체들과 학교들의 거래를 추인한(혹은 유도한) 교육당국이 근본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충남교육청에선 2010년도부터 예산까지 잡아가면서 나라사랑교육 차원에서 병영체험하기를 각 학교에 독려했다고 한다. 충남교육청은 보훈처장으로부터 감사패까지 받았고. 상황이 이 지경인데 업자들에게만 책임을 지울 것인가.
여름캠프가 벌어지면 교장 등이 학생들을 격려한다는 빌미로 현장을 방문, 술대접을 받는것도 관행화되었다니 학교와 주최측의 ‘칙칙한 거래’도 개연성이 있어보인다. 돈이 오가는 문제인데 왜 그런 것이 없겠는가.
학교속에 남아 있는 군사문화의 잔재도 이번 참사의 씨앗이 되었다. 아이들한테 극기심을 심어주는 것이 꼭 군대식, 그것도 유격 훈련과 같은 유형이 되야 하는가. 과거 고교에서 교련과목을 통해 집체교육을 한 것처럼 해병극기훈련은 변형된 군사문화의 잔재로 보인다.
노태우정권의 어느날이었다. 중구청 부근 어느 학교에서 새벽나절부터 열린 민방위 훈련 풍경이 떠오른다. 군면제를 받은 젊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예비군 연한을 넘긴 중장년 참석자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줄세워놓고 “열중쉬어” “차려”, “줄맞춰”, “앉아 번호” 뭐 이런 것들을 시키니 참 애처로웠다. 옆에 있던 쉰살도 넘어보이는 아저씨가 “이놈의 나라는 평생 잔디이불덮고 드러누을때까지(죽을때까지) 차려 열중쉬어 하고 있으니 시키면 시키는대로 참 토끼같은 국민들이여,..”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제발 이런 일좀 없애자. 무슨 문제가 나면 ‘이래선 안된다’며 냄비언론부터 부르르 끓다가 언제 그랬냐는듯 기억상실되지 말고 제도적으로 개선좀 하자. 대체 생때같은 자식들이 언제까지 희생되어야 하나.
우리 아이들 해병캠프로 극기훈련시킬 시간에 역사캠프를 궁리할 생각좀 하라. 그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진정한 극기다.
부디 어린 넋들이 다음 세상에는 절대로 이런 슬픔을 겪지 않기를 아픈 가슴으로 빌어본다..
photo by NEWSIS 홍성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