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옥살이를 24년하고 풀려난 그는 여전히 작은방에서 홀로 지낸다. 주변사람들이 모은 돈으로 집세를 내고 있지만 그마저도 거의 바닥이 났다.
자기 딸을 방화살해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24년을 지낸 이한탁씨가 자유의 몸이 됐지만 가족과는 단절된 채 홀로 어렵게 생활하는 현실을 뉴욕타임스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11일 플러싱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홀로 지내는 이한탁씨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저간의 사정과 사법부에 대한 분노, 노년에 겪는 곤궁(困窮)한 처지를 집중 소개했다.
타임스는 "올해 81세의 이한탁은 퀸즈의 작은 방에서 홀로 지낸다. 부엌과 욕실만 딸린 1층의 작은 스튜디오는 기차역 바로 옆에 있다. 그는 자기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인생의 4분의1이 넘는 기간을 펜실베니아의 감옥에서 보내다 2년전 항소 재판부는 기소이유가 된 증거들이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풀려났다"고 소개했다.
이한탁씨는 "난 너무나 불공정한 재판으로 24년을 감옥에 있었다. 난 결백하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오랫동안 감옥에 집어넣은 사법체계에 분노하고 있다. 감옥에 있을 때 이혼한 전처는 물론 둘째 딸과 다른 가족과도 단절됐다. 그는 검찰조사를 받을 때 자신을 충분히 방어(防禦)해주지 않은 교회를 원망했다.
크리스장 대변인은 "이한탁씨는 수형생활로 인해 사람들을 의심하고 무슨 동기를 갖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한 모습이 사람들과 거리를 두도록 만들었다. 그는 마치 폭발직전의 화산과도 같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나도 그런 문제를 알지만 그동안 교도소에서 겪은 많은 일들 때문에 생긴 것이다.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런 죄가 없기 때문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타임스는 "아파트에서 가진 두차례 인터뷰에서 그는 쾌활해 보였고 자주 웃기도 했다. 전처와 딸에 관한 얘기가 나올 때만 표정이 어두워졌다.
구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손경탁 씨는 "솔직히 이한탁씨는 대단히 특별한 성격이다. 아주 성격이 급해서 사람들이 그의 말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나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그를 큰 형처럼 느낀다. 그래서 그를 돕고 뭐라고 말하든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다"라고 전했다.
한국에서 이민온 이한탁씨는 1989년 포코노의 교회 수련원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퀸즈 서니사이드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며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브루클린의 프랫인스티튜트에 다니던 큰딸(당시 20세)은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었다. 딸의 안정을 위해 그는 자신이 다니던 교회 수련원에 갔지만 새벽 그들의 통나무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은 이씨가 불길이 치솟은 통나무 집 바깥에서 두 개의 가방을 들고 망연자실(茫然自失)한채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큰딸의 시신은 다 타버린 통나무 집에서 발견됐고 이씨의 행동은 경찰의 의심을 샀다. 경찰은 그가 통나무집에 불을 질렀다고 생각했다. 한 전문가는 이씨의 옷에서 화학물질이 발견됐고 방화 가능성을 구체화했다.
이씨의 변호사는 이씨의 결백을 주장했다. 불이 났을 때 잠에서 깬 그가 딸을 구하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심원은 검찰의 손을 들었고 그는 살인 및 방화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사건은 미주 한인들은 물론 한국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뉴욕의 한인들은 구명위원회를 만들어 재판비용을 보태기 위해 기금을 모았다.
2014년 펜실베니아 해리스버그의 윌리언 닐런 판사는 기소이유가 된 검찰의 증거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유죄평결과 종신형 평결을 무효화하고 검찰에 새로운 증거가 있다면 120일내에 재기소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풀려났고 검사들은 그 재기소에 실패했다.
현재 그가 사는 집은 롱아일랜드 철도가 지나는 머레이힐로 중산층 한인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그는 롱아일랜드 사는 누이동생과 가까워서 이곳을 택했다고 말한다.
일주일에 네번 그는 시니어센터에 가서 운동을 하고 식사도 한다. 이따금 저녁엔 교회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아파트에서 지낸다.
그의 방엔 침대와 책들과 잡지들이 놓인 작은 책상이 있다. 작은 성조기와 태극기가 있고 빈 스타벅스컵과 약통, 종이로 된 버거킹왕관이 보인다. 벽엔 시민권증서 액자가 걸려 있다.
펜실베니아는 잘못 기소된 경우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아직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를 위해 15년간 법정에서 싸운 피터 골드버그 변호사는 "당장 진행할 수 있는 (법적) 도움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구명위원회가 지원하는 1천달러 렌트비와 700달러 생활비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한인사회가 모았던 수만달러의 기금은 재판비용으로 소진(消盡) 됐고 이제 거의 동이 난 상태이다. 구명위원회는 좀더 싼 아파트로 옮길 계획이다.
최근 이한탁씨는 뉴욕주 하원의원 론 김(김태석)을 통해 영세민 주택에 거주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김 의원은 "이한탁 씨가 남은 여생을 인간답게 살기 원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오랜 세월 세상과 단절된 채 감옥에 갇혔다가 마침내 풀려났지만 지금 그는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싸움을 하고 있다. 이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씨는 포기라는 걸 모른다. 그는 "정신집중이 중요하다. 그것은 인내(忍耐)"라고 말했다.
Locked Away for 24 Years, an Exonerated Man Still Feels Imprisoned <NY TIMES>
http://www.nytimes.com/2016/03/11/nyregion/locked-away-for-24-years-han-tak-lee-still-feels-imprisoned.html?_r=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