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전범기를 연상시키는 버거킹 햄버거 포장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이를 ‘도넘는 반일정서’라고 폄하(貶下)한 기사를 보았다.
이 매체는 “붉은색 줄무늬만 들어가면 소재 불문하고 친일로 몰아붙인다”며 ‘표현의 자유 억압 위험 수위…지나친 민족주의 콤플렉스’라는 소제목도 붙였다.
버거킹이 새로 출시한 ‘붉은 대게 와퍼(Shrimp Crab Burger)’는 포장지 상단에 붉은 원(게몸통)과 끝부분을 살짝 구브린 부챗살(게다리) 모양이 인쇄됐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일본 전범기(욱일기)를 형상화 했다고 시끌벅적하다.
버거킹은 “게모양 디자인일뿐 전범기와는 상관없다”고 억울해 하고 이 매체는 네티즌들이 과도하다며 버거킹을 옹호하고 있다.
나 역시 이 디자인을 처음 봤을 때 전범기를 떠올렸다. 물론, 몸통위에 눈을 달아 게 모양을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전범기의 이미지가 더 강하고 붉은대게는 상대적으로 적다. 버거킹은 아니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이는데 어쩌랴.
버거킹이 오해(?)를 피하고 싶었다면 몸통을 게와 흡사하게 옆으로 길쭉하게 그리고 게다리도 더 길게, 색깔은 엷은 주황색으로 했어야 했다. 하지만 몸통은 원형에 가깝고 8개의 다리도 좌우로 가지런히 부챗살처럼 뻗어있다. 붉은대게 속에서 전범기 이미지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서구 기업들은 일본 전범기에 대한 이해나 지식의 깊이가 얕았다. 그들에게 나치문양은 절대적으로 금기시 됐지만 일본 전범기 문양은 관심밖이었다. 태양빛이 빗살처럼 뻗어가는 모양은 시선을 끌기가 용이한 디자인이다. 그래서 무심코 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수년전 뉴욕에서 일전퇴모(일본전범기퇴치시민모임)가 발족하고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교수 등 뜻있는 이들의 노력으로 이젠 많은 나라에서 전범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하물며 글로벌 기업 버거킹이 일본 전범기 문제를 몰랐을 리 없다. 추측컨대 버거킹은 이미지를 차용하되, 문제가 되면 대게 형상이라고 피해나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 역사를 미화하고 군사무장의 길로 치닫는 상황에서 전범기 깃발아래 수많은 이들이 살육당한 피해국가 국민들은 전범기 비슷한 문양조차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
문제의 기사에서 “욱일기 논란은 과도한 민족주의와 민족주의적 콤플렉스라는 복잡한 정서가 출발점”이라고 주장하며 “대게 문양에서 욱일기를 연상하는 건 난센스다. 민족주의에 경도(傾度) 된 빗나간 혐일”이라는 한 문화비평가의 견해가 소개됐다. 또 “늘 그렇듯 욱일기 논란도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일종의 콤플렉스 기제의 작동”이라는 서울대 이모 교수의 진단도 곁들였다.
홀로코스트의 나치와 함께 일본은 20세기 최대의 만행을 저지른 전범국가다. 독일은 전후 나치 전범들을 샅샅이 단죄하고 끊임없이 참회하고 있다. 법적 배상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역사의 반성없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부라고 모욕을 가하고 전범들의 위패를 안치한 신사(神社)에 총리 등 내각대신들이 참배하며 군국주의 부활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군국주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당사국이다. 피해당사자를 일러 ‘과도한 민족주의에 경도된 혐일’이라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전범기와 전범기 유사 문양만 봐도 소름이 돋는 것은 콤플렉스가 아니라 끔찍한 트라우마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그간 일본 전범기 문제를 지적하고 시정한 일들까지 ‘과도한 민족주의 내지 빗나간 혐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2012년 8월의 경기도 화정역 공원의 전범기 디자인을 비롯, 2014년 2월 방송인 정찬우의 전범기 의상, 2014년 5월의 부산시민공원 역사관 천정의 전범기 문양, 2014년 12월 뉴욕 브루클린 은행 담벼락에 그려진 전범기, 2015년 9월 생로랑 패션쇼에 등장한 전범기 재킷 등을 예로 들며 “사회 전 분야에서 마녀사냥식으로 전개될 때가 많다”고 비판했다.
전범기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한 의로운 노력을 ‘마녀사냥’으로 치부(置簿)한 것이다. 나아가 “욱일기 논란이 오히려 반한정서를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주장했다. 또한 “뉴욕한인학부모협회가 2014년 건물 외벽에 욱일기가 그려져 있다며 브루클린의 한 은행에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객관적으로 욱일기를 연상할 정도의 그림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당시 그 은행은 벽화를 지웠다”고도 말했다.
일본 전범기를 연상할 정도의 그림이 아니라는 평가가 많았다는 건 대체 어떤 근거로 썼는지 당시 사건을 취재한 나로선 실소가 나온다. 한술 더 떠 “뉴욕 거주 재미동포 A씨(39)는 ‘독일인이 한국 사찰의 만(卍)자를 보고 나치 문양이라고 주장하면 어떻겠느냐’며 ‘과도한 혐일은 한국 이미지를 저하시킬 뿐’이라고 우려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일본 전범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공공장소에서 전범기를 공공연하게 흔들어대고 디자인을 빌미로 상품화하며 범세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인들에게조차 낯선 표식이 되버린 한국사찰의 만(卍)자를 누가 흔들고 디자인상품으로 세계에 퍼뜨리기라도 했는가.
전범기 문양이 이른바 ‘디자인 예술’로 확산되면서 일본은 과거 전범국가의 역사를 희석(稀釋하고 전범기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데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 내부의 섣부른 관용과 빗나간 판단이 전범기 확산과 오용을 막기 위해 불철주야(不撤晝夜) 노력하는 세계 각지의 동포들과 뜻있는 세계인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각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