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국가가 유지되는데 필요한 ‘정치(政治)’는 신성한 행위다. 국민들의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질서를 바로하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토록 하는 역할을 맡기때문이다. 정치가 종종 지탄을 받는건 그걸 직업으로 하는 자들이 탐욕을 부리고 패륜적 행위를 하는 탓이다.
언제부터 이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을까. 상상을 불허한 박근혜의 국정대농단으로 이골이 날 법도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놀라야 할 일이 더 남은 모양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그것도 한때는 집권여당 후보자의 '강간모의' 말이다.
차마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홍준표 돼지발정제 파문. 본인은 자서전에 돼지흥분제라고 썼으나 흥분제(興奮劑)의 어감이 부담스러운지 돼지발정제라고 표현하고 있다. 발정제(發情劑)가 뭔가. 동물의 교미를 위해 성적 충동을 일으키게 하는, 사실은 배란을 촉진하는 호르몬제다.
홍준표가 12년전 자서전 ‘나 돌아가고싶다’에 떡하니 써댄 ‘돼지흥분제 이야기’는 짝사랑하는 여대생을 자기것으로 만들기 위해 돼지흥분제를 부탁한 친구에게 다른 친구들과 공모하여 구해줬지만 여성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한 내용이다.
보통의 상식과 교양을 가진 사람이 들었다면 눈살 찌푸리며 귀 씻어야 할, 잡범 우글대는 교도소 '빵간'에서나 어울림직한 이야기다. 그런데 소위 사학의 명문 고려대생 홍준표와 하숙집 동기 S대(서울대로 추정된다) 친구들이 벌인 짓거리라니 놀랍기만 하다.
홍준표는 이 책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자 “이미 45년전 이야기다”. “잘못했다고 12년전 낸 책에 고백을 한 것 아니냐”고 둘러대고 있다.
하지만 자서전에선 결코 참회와 속죄가 느껴지지 않는다. 어찌보면 무용담(武勇談)이라고 할까? 치기어린 젊은 시절 허세 쩐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실 그 일은 허세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범죄를 모의한 전형적인 공동정범(共同正犯)의 몰골이다.
“하숙집 동료들에게 흥분제를 구해달라”는 말에 “궁리 끝에 흥분제를 구해주기로 했다”고 썼다. ( "야 이놈아 미쳤냐?"고 야단쳐야 정상 아닌가? )
즉 강간의 실행은 S대 친구이지만 실행의 결정적 수단인 돼지흥분제를 홍준표를 포함, 하숙집 인간들이 적극적으로 모의, 조달한 것이다.
그다음 나오는 대목이 가관이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비장한 심정으로 출정한 그는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목숨걸고 독립운동이라도 했나? 순진한 여대생 몰래 약물을 먹여 강간(强姦)하려는 "또라이"를 두고 ‘결전의 날’, ‘비장한 심정’ 운운하는 홍준표의 글에 어디 반성과 속죄의 여지가 있는가. 오직 여자를 성욕과 배설의 대상으로 보는 추악한 마초들의 모습이다. 돼지 흥분제를 몰래 타먹여 여성의 순결을 거침없이 유린(蹂蹸)하는 폭력과 외설의 상상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홍준표는 여관방에서 죽을 힘을 다해 저항했을 가련한 여성은 안중에도 없다. 강간미수범의 얼굴에 할퀸 상처와 찢어진 와이셔츠, 대성통곡 운운하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놓고 있다. 그가 밑줄친 본론은 술과 약물을 이용한 강간범죄의 경고문이 아니다. “흥분제가 엉터리”라서 실패했다는 친구의 항의에 “그럴 리가 없다 진짜다”라고 펄쩍 뛴다. ‘암컷 돼지’에 쓰는 흥분제를 ‘수컷 인간’에게 썼기 때문에 듣지 않았다는 과학적(?) 분석까지 해대고 있다.
최후의 코멘트는 가히 충격이다.
“다시 돌아가면 절대 그런 일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장난삼아 한 일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검사가 된 후에 비로소 알았다.”
약물을 먹여 강간하는게 장난삼아 한일이라고? 여성이 ‘순결(純潔)’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매도되던 70년대초였다. 강간은 설사 미수에 그친다 해도 죄질이 극히 나쁜 정신적 살인행위이다. 명문대 학생이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큰 범죄인지 의식하지 못한 것도 놀랍지만 자서전을 쓰면서 장난삼아 한 일이라고 간단히 치부한 것은 더욱 놀랍다. 그러나 진짜 경악할 일은 ‘검사가 된 후에 비로소 자신의 행동이 큰 잘못(실제로는 장난삼아 한일이라고 생각하지만)이란 것’을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검사가 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잘못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론(推論)을 가능케 한다. 홍준표는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검사도 모욕해버렸다. 검찰을 유치원아 수준의 인지능력이 필요한 곳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홍준표는 검사가 되고보니 자신의 과거가 약물까지 활용한 대단히 악질적인 특수강간 범죄라는 것을 인지했을 것이다. 검사를 하면서 자신의 과거보다 훨씬 못한 일들로 체포되고 옥살이하는 잡범들을 무수히 보지 않았겠는가.
홍준표가 뒤늦게 범죄임을 깨달았다는 검사직을 언제 시작했는지 찾아 보았다. 행정학과 출신의 그는 최연소 소년급제한 우병우와는 달리 사법고시에서 여러번 미역국을 먹다가 28세에 비로소 합격의 기쁨을 안았다.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내용을 보자.
“대학 시절부터 사법시험에 몇 차례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한때 학생운동에 전념하던 그는 사법시험에서 떨어진 어느 겨울밤, 아버지가 있던 울산에 내려갔다가 바닷가 모래밭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 있는 일당 800원짜리 현대조선소의 경비원이었던 아버지를 보고서 눈물을 흘리며 불공평한 세상을 바꿀 결심을 했다고 한다. 1977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이후에도 몇 차례 사법시험에 응시했지만 낙방했다. 홍준표는 군에 입대했지만 체중 미달로 인해 14개월간 단기사병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처가가 있는 전라북도 부안군의 해안초소에서 단기사병으로 근무했다. 일병으로 전역하여 한때 그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자 "한나라당 대표의 계급이 면제에서 일병으로 두 계급이나 뛰었다"는 풍자가 나오기도 했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시보로 임관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홍준표가 대선포스터에 ‘서민 대통령’을 쓴 것은 어렸을적 가난했던 집안 형편을 갖다 붙인건데, 강력검사와 잘나가는 정치인이 되고도 줄곧 서민처럼 살았을까. 그가 어떤 학생운동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일용직 경비원이었던 아버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불공평한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한 뒤로 정말 공평한 세상을 만들었을까. 사법고시 패스로 개천에서 용난 존재로 신분상승이 이뤄지고, “검사님”, “영감님” 소리 듣고나니 비로소 공평한(?) 세상이 된게 아닐까.
사내다움을 강조하고 설거지를 한낱 여성의 일로 폄하하며 쎈 척하는 이 시대의 마초가 체중미달로 현역을 면하고 14개월 보충역(방위) 판정을 받은 것도 갸우뚱해진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그시절 체중미달 혹은 과체중으로 현역을 빠지려 했던 무용담(?)도 꽤 되기 때문이다. 그는 영남고시절 태권도 유단자였는데 어쩌다 허약한 체중미달 방위가 되었는지 요령부득(要領不得)이다. 안그래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마초가 현역까지 마쳤다면 허세의 강도가 더욱 세졌을테니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불공평한 세상을 바꾸는데 진력(盡力)한 검사 홍준표는 1995년 10월 사표를 냈다. 검사 사퇴는 마지막 1년간 안기부 파견 검사(안기부장 특별보좌관) 생활을 한 것과 95년 초 공전의 히트를 한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델검사로 유명세를 얻은 것이 계기가 됐을 터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는 안기부에 파견된 1994년 11월부터 1995년 9월까지 월정직책금 385만원이 서울지검과 안기부로부터 이중지급되었으나 자진신고하여 반납하지 않고 착복했다. 나중에 국가로부터 반환을 요구받고도 버티다가 부당이익금반환청구소송을 당했고 1심, 항소심 모두 패소했다. 월급을 두군데서 수령(受領)하는 것도 우습지만 국가가 반납하라는데도 항소하며 버티는 멘탈은 실로 대단하다. 정의파 검사라는 ‘모래시계’의 후광(後光)을 갖고 있는 그가 말이다.
변호사 개업직후 방송에 출연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은 그는 당시 대통령 YS의 영입제안에 따라 정치판에 뛰어들었고 이듬해 신한국당 후보로 송파구에서 금배지를 다는데 성공했다. 1999년 8월 선거법 위반(허위지출보고서 제출등)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했으나, 2001년 10월 서울 동대문구 을선거구 재보궐선거에서 신한국당 후신(後身)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 제16대 국회의원으로서 정치권에 복귀했다. 2004년엔 같은 선거구에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당선됐다.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박탈(剝奪) 당했다가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는 등 그냥 흔한 한국 정치인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가 자서전을 펴낸 2005년은 좀더 큰 꿈을 꾸기 시작한 때였다. 이듬해 서울시장 예비경선에서 오세훈에게 석패했고, 2007년엔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에 나가 4위로 탈락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권력형 비리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2007년 그는 대중들의 관심을 끌만한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는데 당시 '반값 아파트'(토지임대부 주택정책) 법안과 이중국적 보유자의 병역 회피를 금지한 '국적법'과 '재외동포법' 개정을 이끌어 낸 것이다.
다분히 국민의 정서를 파고드는 포퓰리즘적 법안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적어도 재외동포들은 홍준표를 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홍준표 악법’으로 불리는 국적법과 재외동포법의 무차별적인 적용은 재외동포 자녀들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족쇄(足鎖)로 작용해 큰 원성을 사고 있다. 사회지도층의 원정출산 등으로 인한 병역기피나 특혜를 막기 위한 취지와는 달리 수많은 재외동포자녀들의 앞날을 막는 등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막말 정치인 하면 김진태를 따라가기 힘들지만 홍준표 또한 잦은 막말로 물의를 빚은 장본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3년 5월 홍준표는 "야당(한나라당)은 경제 잘 되게 하는데 신경 쓸 필요 없다. 경제가 나빠야 여당 표가 떨어지고 야당이 잘 된다"고 말해 "홍준표가 대한민국 국민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민주당의 비난을 받았다.
2008년 10월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홍준표는 "(노무현대통령 사저 뒷산의) 웰빙숲 조성은 쌀 직불금 파동에 버금가는 혈세 낭비의 대표적 사례"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집 앞에는 주차할 데도 없다. 노 전 대통령처럼 아방궁을 지어서 사는 사람은 없다"고 발언해 큰 논란이 됐다
서울의 복잡한 상도동 주택과 김해의 농촌 봉하마을을 단순 비교하는 화법도 어이없지만 전직 대통령이 기거할 대지 1천여평의 시골집을 무려 1만명이 앉는다는 중국 진시황의 아방궁(阿房宮)에 비유하는 것은 어떤 정신세계로 해석해야 할까.
그는 문제의 자서전에 대해 페이스북에 “어렸을 때 저질렀던 잘못이고 스스로 고백했다. 이제 그만 용서해주시기 바란다”고 사과 코스푸레를 하면서도 “이제 와서 공개된 자서전 내용을 다시 재론하는걸 보니 저에 대해서는 검증할게 없기는 없나봅니다”고 비꼬는걸 잊지 않았다.
그가 ‘철없던 짓’을 했다는건 45년전, 우리나이 스무살때 일이다. 대한민국의 얼마나 많은 보통 청년들이 스무살에 강간을 공모했다가 28살에 검사가 되고나서야 큰 잘못인줄 깨닫는다는 말인가. 끔찍한 흑역사를 무덤까지 안고 가기는 커녕, 무용담처럼 자서전에 버젓이 펴낸 12년전의 그는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하고 서울시장의 꿈도 꾸던 중후한 50대였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것은 지금 이순간까지 피해 여성에게 단 한마디의 위로나 사과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잘못한걸 뒤늦게 깨달았다는 후회뿐이다. 월미도 야유회에서 끔직한 희생자가 된 그 여성은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른다. 홍준표의 자서전이 공론화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돼지 흥분제까지 먹었다는 기막힌 사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돼지 흥분제는 사람이 잘못 먹을 경우, 몸을 상하게 되고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박근혜 못지않게 대한민국 국격을 형편없이 말아먹은 홍준표가 진짜 용서를 구하고 싶다면 오직 한가지 길이다. 대선후보 사퇴는 물론, 정치판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여생을 조용히 속죄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들도 소름 돋는 귀하의 잔상(殘像)을 떠올리지 않고 애면글면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끝으로 새누리당 조원진 선대위의 전략기획본부장 변희재의 성명서를 소개한다. 보수 표를 갉아먹는 홍준표 사퇴가 유리하다는 전략적 계산이겠지만 오죽하면 변희재도 이런걸 발표하겠는가.
[논평] 자서전을 거짓으로 썼다는 홍준표 후보, 국민을 발정제 먹인 개돼지 취급하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어릴때 저질렀던 잘못이고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이제 그만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라며 돼지흥분제 특수강간 관련 처음으로 사과를 했다.
뒤늦게라도 사과를 하니 다행스럽지만, 이상한 일이다. 홍준표 후보는 21일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자서전이라는 특성상 전해들은 이야기를 내가 관여한 것처럼 썼다. 그것을 책에 기술하기 위해 간접적으로 관여했던 것처럼 쓰고 마지막에 후회하는 장면을 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여대생에게 작정하고 돼지흥분제를 먹여 강간을 시도했다는 것보다, 이런 황당무계한 해명이 더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특수강간 중범죄를 자신이 했다고 적고, 후회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그런 자서전이 있던가. 오늘의 페북 사과도, 남이 한 일에 대해 자신이 대신 사과하는 연출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홍후보가 2005년에 발간한 <나 돌아가고 싶다>라는 자서전 내용 중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이란 말인가. 저런 중범죄도 자기가 했다고 꾸며낼 정도면, 자신이 하지도 않은 정치적 업적이나 선행 등에 대해선 거짓 폭탄을 퍼부었을 것 아닌가.
자서전 하나 진실로 쓰지 못하며, 거짓으로 쓴 것을 자랑하는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국가적 대혼란은 어찌 감당할 건가. 이런 홍후보는 대선토론에 나와선 “지도자의 덕목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 떠들었다.
자서전마저 거짓으로 썼다고 떠벌리며 남이 한 짓을 대신 사과한다는 홍준표 후보는 더 이상 국민을 발정제 먹인 개돼지 취급하지 말고 즉각 후보직에서 사퇴하기 바란다.
새누리당 조원진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 변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