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첫 번째 일정으로 18일 동포간담회를 가졌다. 뉴욕 도착 직후 유엔본부에 가서 안토니우 구테헤스 사무총장을 잠깐 만났지만 이거야 행사를 주관하는 주빈에 대한 예우 차원이자 출석부(?) 도장 찍는거니까..
유엔 총회가 개막되면 사무총장을 만나려는 각국 정상과 총리급 수반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珍風景)이 필쳐진다. 악수하고 사진찍고 정상 당 할애(割愛)된 시간은 10분도 안된다. 국력이 약하면 더 짧아진다. 그렇지 않으면 유엔 사무총장이 다른 일정을 소화할 재간이 없다. 과거 반기문 총장은 “총회가 개막하면 초단위로 끊어 써야 할 정도”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암튼 이날 저녁 인터콘티넨탈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행사 제목은 ‘한인글로벌리더 초청 뉴욕지역 동포간담회’였다. 총영사관에 따르면 약 350명이 초청됐다. 한인글로벌리더라구? 글쎄다.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촛불정신’과는 무관했다. 박근혜정권의 수구꼴통 인사들의 면면도 보였으니까. 뉴욕 뉴저지 일원의 단체장들이 많이 온걸 보면 아무라도 동네단체라도 만들어 회장하면 글로벌 리더가 될거 같다..근데 청와대가 혹시 알라나“..한인타운에서 ”회장님!“ 하고 부르면 열중 여덟명은 뒤 돌아본다는거. 개나소나 회장이 많다는거다..
혹여 나도 단체장인데 초청장을 못받았다면 분노해도 좋다..안됐지만 그들에게 당신은 듣보잡이었거나..총영사관과 친하지 못했거나다..지난 6월에 문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동포간담회에 초대받았던 사람들이 또 온 경우도 꽤 됐다. 한번도 힘든데 두 번씩 가다니 가문의 영광이겠다.
이상 photo by Zinnopark
그런데 희한한건 청와대와 총영사관이 동포언론을 무시한거다..동포간담회인데 동포언론을 빼버려? 주가 된건 서울부터 따라온 청와대 출입기자단이었다. 당초 총영사관은 동포언론 취재를 5명으로 제한했다. 언론사가 열 개도 넘는데 다섯명으로 풀기자를 구성하라니. 어이상실이다. 한국에서는 정부 출입처나 기관에 출입하는 기자들이 기자단을 구성해 필요시 풀기자제를 하고 있지만 동포언론은 전혀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총영사관 관계자에게 지난 2005년 노무현대통령이 뉴욕방문했을 때 동포간담회 사례를 귀띔 해줬다. 이명박 박근혜도 뉴욕에 여러번 왔지만 적폐 정권때는 떠올리기도 싫고 ‘노무현친구’ 문재인이니까.
노무현대통령 동포간담회는 뉴욕 뉴저지의 로컬 언론이 총출동했다. 처음부터 숫자 제한도 없었다. 물론 행사장에서 마음대로 다니면 안되니까 사진기자들을 위한 동선(動線)을 당부했을뿐이다. 그게 정상이다. 그래봐야 기자들이 떼로 몰려 올것도 아니니까. 어쨌든 그래선지 행사 사흘전 총영사관에서 1사1인 조건으로 취재할 수 있다는 수정 안내문이 텍스트로 왔다.
2005년 노무현대통령 동포간담회 <KTV 캡처>
간담회 방식도 특별했다. 스탠딩으로 한 것이다. 테이블을 다 치우고 대통령도 참석자들도 서서 행사를 했다. 테이블이 없으니 공간도 여유가 생겨 500명 가까이 참석할 수 있었다. 건배제의, 대통령 인사말에 이어 자유롭게 질의응답도 했다. 당시 인천 맥아더동상 철거논란이 있었는데 한 보수인사가 큰소리로 “맥아더 동상 어떻게 할겁니까?”하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때 노대통령 “맥아더 동상을 끌어내리는 식으로 한미관계를 관리해서는 안된다”는 우문현답(愚問賢答)으로 철거시비를 잠재웠다.
그런데 이번엔 테이블을 깔아놓고 만찬형식으로 진행했다. 뭐 밥이야 먹을 수 있지만 문제는 어렵게 행사장에 들어간 동포기자들이 대통령 인사말과 평창올림픽 관련 이벤트만 하고 달랑 30여분만에 쫒겨났다(?)는 것이다. 자리도 주지 않고 한곳에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 정작 중요한 동포간담회가 시작되는데 나가달라는 것이다.
취재 허용은 눈가리고 아웅, 보여주기 쇼에 불과했다. 결국 행사내용은 참석자들이 전하는 말과 페이스북에 자랑스럽게(?) 올린 사진들과 동영상을 통해 알려졌고 요즘 너무 인기있어 대통령도 못구했다(?)는 대통령 사인이 들어간 손목시계가 기념선물로 하나씩 주어진 것도 알게 됐다.
이하 사진 페이스북 캡처
소프라노 조수미의 공연도 있었는데 행사장 끝에서 ‘문재인 대통령님 사랑해요’ 등의 배너들을 들고 선채로 몸을 흔들며 환호하는 여성들은 연예인 팬클럽을 방불케 했다는 전언이다.
누가 기획했는지 모르지만 번지수를 단단히 잘못 잡은 행사였다. 아무리 한국이 아니고 미국 뉴욕땅에서 하는거지만 한반도가 어느때보다 전쟁위기가 증폭(增幅)된 엄중한 상황에서 무슨 잔치로 오인되도록 분위기를 잡다니 말이다.
유사시 우리 국군의 작전권을 갖고 있는 ‘천조국’ 총사령관 트럼프는 어제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희대의 공갈포를 늘어놓았다. 북녘 땅을 초토화(焦土化)하고 2500만 주민들을 깡그리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엔이 문을 열고 이런 소름끼치는 협박을 한 국가 지도자는 일찍이 없었다.
상황이 이럴진대 '천조국' 명령만 떨어지면 한목숨 초개(草芥)같이 버릴 각오하고 “돌격 앞으로!”를 할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지금 세간엔 “트러프는 낮밤으로 트윗질이고, 문재인은 낮밤으로 셀카 찍더라”는 비아냥이 떠돌고 있다.
이하 photo by Zinnopark
이날 행사에 초대된 한 참석자의 씁쓸한 소회(所懷)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기대감속에 동포간담회를 갔지만 꼭두각시처럼 마주 앉은 군상들 똑같더라. 이거 무슨 기쁨조도 아니고.. 갑질은 영원하다. 누굴 탓하겠냐. 내 가슴 쳐봤자 세상이 바뀌는게 아닌데..대통령하고 사진찍고 싶어서 안달하는데 가고 싶지 않더라..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북한도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넋놓고 있다. 싸드에 안보에 자중지란 벌이는걸 보고 미국이 웃는다. 중국의 보복에 세계무역기구에 제소안한건 굴욕보다 굴종이다. 우리가 절대빈곤을 각오하고 싸울 의병이 없고 장군이 없으면 나라 넘겨주는게 낫다..행사장에서 처절하고 결연에 찬 목소리는 전혀 없었다.. 중국 대신 북한을 타겟으로 앞세우고 있지만 한시가 급하다. 영국과 불란서, 러시아 중국, 그리고 미국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으라고 유엔총회에서 문대통령이 외쳐야 한다.. 우리가 빠개지면 지구촌에서 어느 누가 통곡해주겠냐.. 우리는 우리의 대한민국 하나뿐이다..피 토하듯 외쳐야 한다. 이렇게 대결 구도로 가선 안된다..북미전쟁은 절대 국지전이 아니다...아마겟돈처럼 세계의 재난이 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