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 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에는 / 정한수 더 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전선야곡’은 1951년 전쟁의 한복판에서 태어났다. 군 수사관 앞에 끌려간 작사가 유호가 즉석에서 써내려 간 가사에 수사관이 먼저 눈물을 흘렸다는 그 노래. 총을 들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스무 살 청년들이 어머니를 떠올리며 목놓아 울던 그 노래다.
2026년 대구 동성로에서 김부겸이 전선야곡을 부르다 울었다. 군중이 그 눈물을 받아 함께 울었다. 그것은 단순한 유세의 피날레가 아니었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을 노래한 그 목소리에는 지난 수십 년 세월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체취가, 그리고 끝내 다 허물지 못한 지역주의(地域主義)의 벽이 한꺼번에 실려 있었다.
김부겸의 정치적 서사에는 아버지가 있다. 공군 예비역 중령으로 전선야곡을 18번 삼았던 그 아버지는 정치를 시작한 아들의 대구행을 결사반대했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뼛속까지 경상도 사람인 그는 알고 있었다. 아들의 도전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어데 니는 벽을 문으로 알고 대가리를 박노."
아버지는 결국 군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아들과 함께 앞산 충혼탑을 오르며 "250만 대구시민의 수장이 되려면 먼저 호국영령께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장면에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깊은 층위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김부겸. 그는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에서 진보의 깃발을 들고 외롭게 서 있었고, 끝내 눈물을 쏟았다. 그 눈물을 보며 우리는 문득 20여 년 전 부산의 거리를 누비던 한 사람을 떠올린다. 낙선을 반복하면서도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벽을 향해 묵묵히 정면 돌파를 감행했던 ‘바보’ 노무현이다.
눈물 속에 겹쳐진 두 개의 초상
종로라는 탄탄한 지역구를 버리고 자신의 고향 부산에서 내리 세 번의 낙선을 기록했던 그는, 영특한 계산보다는 우직한 원칙을 택했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은 단순히 패배자의 낙인이 아니었다. 계산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신뢰, 기득권(旣得權)의 야합에 눈감지 않고, 지역주의의 사슬을 끊어내려 했던 한 인간의 소신에 대한 시민들의 뜨거운 헌사였다. 김부겸의 마지막 유세 현장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은 바로 그 ‘바보’의 유산이 대구라는 토양에서 다시 발아하고 있다는 동질감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정치인들에게 마음이 움직이는가. 아마도 너무 영리한 정치에 지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득실을 따지고 계산하는 정치 속에서, 손해를 감수하면서 자기 길을 가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오히려 신뢰를 느낀다. 그것이 노무현이 ‘바보’라는 이름으로 사랑받았던 이유이고, 김부겸의 눈물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다.
시련에 머무를 용기를 가진 사람이 역사를 쓴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여전히 뜨거운 이유는 그가 승리했기 때문이 아니라, 패배조차 자신의 철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상원의원 선거에서 두 번 낙선했고, 사업에도 실패했으며, 신경쇠약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당대의 기준으로 그는 실패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반복된 패배는 그를 벼려냈고, 가장 어두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지도자를 만들어냈다. 링컨이 노예제 폐지라는 '비효율적'인 선택을 고집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패배들이 그에게서 두려움을 걷어냈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은 더 극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직후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박탈당했다. 전쟁의 영웅을 평화의 재건자로 인정하지 않는 유권자의 냉정함 속에 처칠은 야당 지도자로서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며 역사의 두 번째 막을 완성했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패배는 종종 ‘끝’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노무현의 삶은 패배가 어떻게 역사의 동력(動力)이 되는지를 증명했다. 부산에서의 거듭된 낙선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토양이 되었고, 그의 ‘바보 정신’은 한국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도덕적 이정표가 되었다.
김부겸 또한 마찬가지다. 그가 기록한 지지율은 대구 시민들의 마음속에 생긴 ‘정치적 균열’을 의미한다. 그 균열은 박정희의 산업화 기억과 김대중의 실용주의, 노무현의 지역주의 타파가 섞인 ‘김부겸식 정치’가 대구에 남긴 족적(足跡)이다. 그는 선거에서 졌지만 다시 한번 ‘패배하지 않는 정치’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바보’라는 이름의 희망
그는 낙선 인사에서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 여러분의 패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변화를 원했던 대구 시민의 마음은 투표함 속에 기록되었다. 때로는 가장 비효율적인 선택들이 가장 먼 곳까지 도달한다. 그래서 김부겸의 패배는 패배가 아니다.
이제 대구 시민들도, 우리 국민도 바보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이해타산에만 밝은 정치가 아니라, 비효율적이고 고통스러워 보일지라도 묵묵히 자신의 소신(所信)을 지켜가는 ‘바보 같은 정치인’을 키워내는 것. 김부겸의 눈물을 보며 우리가 다시 노무현을 추억하는 이유이자, 대한민국 정치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의미있는 성찰(省察)이다.

<사진 김부겸TV 캡처>
동성로의 밤, 그의 눈물은 하나의 문장처럼 남았다. 다음 이야기를 예고하는, 잠시 멈춘 호흡 같은 것이었다. 노무현의 시간이 그랬듯, 김부겸의 시간 또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다.
역사는 계산하는 자들의 연대기가 아니라 진정성을 보이는 사람들의 묵직한 기록이다. 노무현이 그랬고, 김부겸이 그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소곤이의 세상 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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