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가 방송가에서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정상급 가수들의 경연장이라는 신선한 기획과 초반 제작진의 자체 원칙 위반으로 '논란 마케팅'까지 더해 대단한 화제를 몰아가고 있다.
일단 기성세대로서 음악성과는 무관하게 기획된 소위 ‘아이돌’ 가수들의 가벼움에 지쳐 있던 터라 노래 하나는 끝내주는 진짜 가수들을 전면에 내세운 제작진에 고맙다는 생각이다.
알려진대로 최초의 기획자인 김영희 PD가 자진사퇴하고 그 바톤을 신정수 PD가 물려받았다. 최근 방송에서 임재범의 감동적인 열창과 사연이 전파를 타면서 나가수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나가수가 어필하는 것은 이미 검증된 가수들에게 점수를 매겨 탈락을 시키는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점, 가수들의 진지한 열창(熱唱)과 새로운 면모를 발견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제작진이 요즘 ‘스포일러’ 때문에 큰 고민이라는 기사를 보게 됐다. 스포일러(Spoiler)란 ‘영화나 소설에서 줄거리 등 내용을 미리 공개하는 행위’를 말한다. 미처 보지 않은 예비 독자나 관객에게 스포일러는 반갑지 않은 존재다. 특히 그것인 반전이 거듭되는 서스펜스 미스테리 물이거나 결과가 중시되는 드라마일수록 재미와 감동이 훼손되기 마련이다.
나가수가 고심하는 것은 사전녹화방식 때문이다. 가수들의 순위가 매겨지고 꼴찌가 탈락한다는 것이 미리 알려지면 그만큼 재미가 반감되기 마련이다. 나가수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사전녹화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만큼 각종 매체를 통해 이런저런 소식들이 스포일러 형태로 나가고 있다.
특히나 500명의 청중평가단이 점수를 매긴다는 제도상의 시스템은 애당초 나가수가 스포일러를 각오하고 출발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제작진이 스포일러 때문에 걱정한다는 것은 뜬금없다. 당연히 예상된 후유증이기에 말이다.
안그래도 무한도전 등 인기 예능프로들이 오래전부터 스포일러로 인해 잡음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프로가 망쳤다고 원망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극적 재미가 일정부분 줄어들긴 하겠지만 도리어 스포일러는 그것을 엄청나게 홍보하는 이익을 제공한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면 긍정적인 면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에 대해선 항의를 할 생각이다.” “이런 글을 써선 안된다.” “시청자들이 방송을 즐길 권리를 방해해선 안된다.” 나가수 제작진은 스포일러로 인해 재미와 감동이 줄어든다고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예정된 녹화를 전격 취소하며 미디어들의 스포일러 보도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애당초 이 프로가 가진 문제를 남에게 떠넘기는 행위에 불과하다.
요즘처럼 네티즌 개별이 마음만 먹으면 단독기사, 특종기사를 순식간에 퍼뜨릴 수 있는 1인 미디어의 시대에 죽느냐 사느냐 치열한 경쟁을 하는 수많은 온오프라인 미디어들에게 무슨 명분으로 자제해달라고 하는 것인가.
국민이익에 반한다고,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하고싶을까. 어차피 상업적인 목적에서 출발한 프로가 창의적인 기획과 공룡같은 미디어의 힘으로 자리를 잡았다면 지나친 욕심으로 안비치도록 자중할 필요가 있다.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만 포획(捕獲)해도 커다란 성공인데 매주 방영되는 프로가 비밀유지를 통해 극적인 긴장까지 가져가겠다는 것은 욕심을 넘어 오만(傲慢)이 아닐까싶다. 스포일러가 걱정이라면 생방송으로 바꾸면 될게 아닌가. 그러나 나가수 제작진은 해당가수의 노래전후 심경을 함께 담는 등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위해 사전제작을 고집하고 있다.
시청자에게 감동의 극대화를 주기 위한 방편이지만 억지스런 희열을 안기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이미 나가수는 독창적인 기획만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정상급 가수들의 혼신을 다한 열창만으로도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제공하는 것이다.
소수의 스포일러에 의해 결과나 내용이 일부 알려진다고 나가수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시청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흥미를 유발하는 측면이 강화될 수도 있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가수가 차제에 생방송으로 가면 좋겠다. 사실 초기의 파문도 생방송이었다면 원천봉쇄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청중평가단만이 아니라 '아메리칸 아이들(American Idol)'처럼 시청자들의 전화투표를 통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이런저런 장치들로 억지 감동을 주기보다는 보다 진솔한 가수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라는 것이다.
기왕이면 다른 방송사, 프로덕션들도 나가수를 부러워만 할게 아니라 보다 신선한 아이디어로 나가수 류의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하면 좋겠다. 그리하여 참을 수 없이 경박(輕薄)한 프로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시청자들을 부디 구원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