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前哨戰)으로 불리는 골든글로브(Golden Globe) 시상식이 지난 16일 비벌리 힐즈에서 열렸다. 아다시피 이번 시상식에선 페이스북의 창업비화를 그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가 드라마부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음악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드라마 부문 남녀주연상은 영국 왕자의 연설공포증(演說恐怖症) 치료 과정을 그린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의 콜린 퍼스와 발레리나의 삶을 담은 심리스릴러 '블랙 스완(Black Swan)'의 나탈리 포트만이 각각 영광을 안았다.
오늘 쓰고자하는건 이들의 수상 얘기가 아니다. 이날 시상식의 메인 사회자였던 영국 출신 코미디언 릭키 저베이즈의 무례한 진행방식이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시상식 다음날 뉴욕타임스 아트섹션엔 골든 글로브 수상 소식과 함께 이런 제목의 기사가 떴다.
'시상식 사회자, 예의가 없다(Master of Ceremonies, Not Civility). 알레산드라 스탠리(Alessandra Stanley) 기자가 쓴 이 기사는 릭키 저베이즈의 무례(無禮)와 일부 수상자들의 비례(非禮)를 지적했다.
골든글로브는 1943년에 설립된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제정한 상이다. 어언 6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셈이다. 역사도 오래 됐지만 골든 글로브의 영향력이 아카데미상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오스카 전초전’이라고도 불린다. 1944년 20세기폭스필름의 스튜디오에서 소규모로 최초의 시상식이 개최된 이래로 현재는 세계 영화시장을 움직일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대단한 골든 글로브의 시상식 사회자로 코미디언겸 배우 릭키 저베이즈(사진)가 선정된 것이다. 저베이즈는 2010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날 자신을 초빙한 외신기자들에 대해 경의(敬意)를 표하는 대신 일부 후보들과 주최측을 가차없이 조롱(嘲弄)했다.
가령 영화 ‘투어리스트’의 타이틀롤 안젤리나 졸리와 조니 뎁을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이들에게 상을 줄 생각도 없으면서 시상식 참석을 위해 후보에 넣었다. 쓰레기같은 짓이다. 그들은 뇌물을 먹었다”고 농담인지 비난인지 모를 험한 말을 했다.
그리고나서 본격적으로 필 버크를 조롱했다. 그는 주최측인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 회장이다. 버크 회장이 화장실에서 곤경을 겪었다는 그의 유머는 실소(失笑)를 자아냈고 당사자는 전혀 즐거운 기색이 없었다.
급기야 버크 회장은 “릭키, 다음엔 당신의 영화가 예심을 통과하도록 내가 돕기를 원하면 다른 사람한테 가보게”하고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스티브 부세미와 알 파치노, 클레어 데인스 등 많은 수상자들은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에 예의바른 수상소감을 했다. 그러나 세실 B. 데밀 평생공로상을 받은 로버트 드니로는 외신기자협회를 스타들과 사진이나 찍는 사람이라는 어설픈 농담으로 분위기를 식혔다.
최고 조연상을 수상한 크리스찬 베일은 자신을 위해 투표 해준 외신기자들을 비웃어서 청중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외신기자협회를 전에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이곳에 모인 끔찍한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겠다고 끔찍한 농담을 했다.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공공연한 농담의 대상이 된게 사실 처음은 아니다. 80년대 초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피아 자도라는 “나의 백만장자 남편인 메쉬울람 리클리스가 골든글로브를 오염(汚染)시킨 증거가 있다. 그게 바로 나의 수상 이유”라고 유명한 농담을 했다.
스파이 영화인 ‘투어리스트’가 최고 코미디/뮤지컬 부문의 후보가 된 것은 아닌게아니라 우스운 일이다. 심지어 남편 브래드 피트와 함께 앉아 있던 안젤리나 졸리도 뮤지컬 코미디 부문에 최고여우상 후보로 있는게 어색한듯 했다.
졸리는 “난 이 영화가 코미디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골든 글로브는 종종 오스카보다 볼게 더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객들이 예상치 않은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참가자들이 골든 글로브를 오스카나 백악관의 기자단 만찬처럼 생각하는 바람에 분위기를 망치곤 한다.
가령 2006년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에서 스테픈 콜버트 기자의 연설도 논란을 가져왔다. 당시 부시 대통령을 너무 심하게 농담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 골든 글로브에서 저베이즈와 베일의 과도한 조크는 시상식을 정치적 담화로 착각한 무례와 극단적 성향이 빚은 해프닝이다.
물론 대부분의 스타들은 ‘쇼 비즈니스’의 공식을 멀리 이탈하지 않았다. 톰 행크스와 팀 알렌은 이날 저베이즈에 동조(同調)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행크스는 “저베이즈가 친절한 코미디언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알렌도 단호히 저베이즈의 발언이 무가치하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의 알레산드라 스탠리 기자는 저베이즈의 골든 글로브 사회가 이번이 두 번째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필경 그는 세 번째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뼈있는 지적을 했다. 왜 아니겠는가.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또다시 돈주고 바보 될 리는 만무하니까.
한가지 관심을 모으는 것은 과연 골든 글로브의 낙점(落點)이 오스카상까지 이어질까라는 궁금증이다. 1996년 제68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앞두고, 버라이어티지는 지난 30년간 아카데미상 결과와 그에 앞선 골든 글로브상과 전미국비평가위원회상, 뉴욕영화평론가협회상, LA평론가협회상의 결과를 대조해 ‘함수관계(函數關係)’를 분석한 적이 있다. 이중 아카데미상 결과와 가장 많이 일치했던 상이 바로 골든글로브상이었다.
작품상의 경우 지난 30년간 골든글로브는 17번이나 아카데미 작품상과 일치해 적중률 57%를 기록했다. 84년부터 95년까지는 단 두번만 빼고 골든글로브 작품상이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는 ‘족집게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과연 올해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