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앤 더머(Dumb and Dumber) 라는 영화가 있다. 짐 캐리와 제프 다니엘스 주연의 코미디다. ‘바보형제’라는 뜻인데 개성공단을 둘러싼 북과 남의 행태를 보면 꼭 그 짝이다.
싸움과 경쟁에 명분이 있다면 둘 중 하나는 확실한 이익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개성공단을 놓고 남과 북이 벌이는 ‘싸움’은 둘 다 손해다.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싸움을 하고 있으니 ‘덤 앤 더머’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우리 기업이 입는 피해는 약 2조원으로 추산된다. 개성공단에 쌓인 물건값이 5천억원, 가동중단에 따른 매출 손실이 5천억원, 협력업체 피해가 1조원이란다.
막말로 개성공단이 완전 폐쇄되면 투자금액까지 완전히 날리게 돼 최대 6조원까지 피해액수가 늘어난다.
북한의 직접적인 손실액은 근로자 5만 4천명의 임금 1천억원 정도이지만 가족들까지 고려하면 상당수가 경제적 혜택을 잃게 된다. 이들의 경제적 궁핍과 상실감이 사회 불안요인이 될 수 있고 계약서와 국가의 보장도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북한의 국가신인도(國家信認度)는 바닥으로 떨어질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북한은 박근혜정부가 강경대응을 하지 않을 것으로 계산했을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남한의 피해액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한은 철수를 결정했다.북한에게 뺨 맞고 대주기만 한다고 노상 불평하는 사람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하겠지만 그건 잠시의 만족에 불과하다. 결국은 우리 국민들이 피해를 분담하게 되는만큼 잘했다고 등 두드려 줄 일은 아니다.
솔직히 북한은 상대하기가 참 버겁다. 어느 정도 서로가 지킬 것을 지켜야 하는데 ‘공갈’이나 다름없는 벼랑끝 전술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구사하니 국민의 입장에서 보아도 인내하기가 힘이 드는게 사실이다.
이번 조치로 남한은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됐지만 원칙에 따른 대응으로 북한에 교훈을 줌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북한을 한번 바라보자. 자존심 하나로 버틴다는 북한이다. ‘무대포’ 정신으로 똘똘 뭉친 상대에게 고작 개성공단 철수로 교훈을 주겠다고? 손해는 우리가 더 보는데?
“칼자루는 북한이 쥐고 우리는 칼날을 잡고 있는데 뭘 어쩌겠다는건지 나 원 참..”
엊그제 택시에서 관련 뉴스를 듣던 기사의 말이다. 상식적인 국민들은 다 그렇게 느끼고 있다. 막말로 상대를 완전제압하고 목에 비수를 들이댄게 아니라면 교훈이란 통하지 않는다.
이번엔 북한의 관점에서 남한을 바라보자. 우리는 북한을 예측 불가능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말한다. 과연 그들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정작 예측 불가능한 상대는 남한이다.
왜냐고? 카운터파트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정권의 연속성,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비근(卑近)한 예로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역주행을 했다. 남한은 북한이 약속을 안지킨다고 하지만 북한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춤 추는 대북정책을 보며 남한을 믿고 일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일 것이다.
한번 돌이켜보자. 남과 북이 각각 독자적인 정부를 세운 1948년이후 65년간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인의 권력으로 유지된 반면, 남한은 12명의 권력이 있었다. 그 사이 두차례의 쿠데타와 정변이 있었고 선거에 의한 여야 정권의 교체도 두 번이나 있었다.
북한은 김일성 일가라는 하나의 정권이 65년을 통치했지만 남한은 변화무쌍하게 최고의 통치자가 바뀐 것이다.
일인권력의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의 입장에서 카운터파트가 계속 바뀌는데 상대의 말을 어떻게 믿고 약속을 하겠는가. 게다가 지난 25년간 남한은 대통령의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 임기의 절반만 지나면 레임덕 현상에 빠져버리곤 했다. 필경 박근혜 정부도 반환점을 돌기 시작하면 령(令)도 잘 안서고 사람들은 차기 대권주자가 누가 될지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것이다.
남북이 합의해도 다음 정권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MB정권이 입증했다. 북한으로선 누가 대통령이 될지 예측불가능한 남한이야말로 대화상대로 대접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물며 미국의 뜻에 반할수도 없는 ‘꼭둑각시’ 정권으로 내리깎는 북한 아닌가.
연속성있는 대북정책을 위해 정권이 교체되면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햇볕정책을 추구하며 금강산을 개발하고 경협을 하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때도 남북간의 무력 충돌은 있었다.
마찬가지로 보수정권으로 북한과 대립각을 보이더라도 큰 틀에서 남북경협, 통일정책의 기조(基調)는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MB정권은 일방적인 시혜는 없다며 북한을 기싸움에서 제압하려 했다. 이것이야말로 북한이 “남한이 우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하는 이유다. 당장 밥 굶어죽는 일도 아닌데 어설픈 으름짱에 고개 수그린단 말인가?
남한의 뻘짓에 중국만 쾌재(快哉)를 불렀다.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역사를 저들 것으로 탈취하려는 중국이 북한을 정치경제적으로 예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었다. 석유만 뺀다면 없는게 없다는 지하자원의 보고(寶庫) 북한이 아니던가. 북한이 고통을 느끼는게 아니라 중국만 신바람이 나고 북한을 통해 거둬들이던 유형무형의 엄청난 이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남북경협의 마지막 보루(堡壘)인 개성공단마저 완전폐쇄의 수순으로 가고 있다. 북한이 저러는데 어쩔 수 없다고? 북한이 그런 상대인걸 몰랐나? 철없는 아이들이 싸울 때 “때려봐, 때려봐” 한다고 진짜 때리면 누구 잘못인가.
남한이 북한과 대화를 진짜 하고 싶었다면 물밑교섭이 선행됐어야 했다. 마치 최후통첩(最後通牒)하듯 대화에 응하지 않으면 중대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는건 대화를 원하는 자세가 아니다.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는 북한이 그렇게 하기 싫어도 하게 만들면서 “너때문이야” 하는건 속보이지 않는가.
남과 북이 화해하고 거창하게 민족공조 하자는게 아니다. 철저하게 실리주의(實利主義)로 개성공단은 접근해야 한다. 모르긴몰라도 훗날 다시 개성공단이 정상화가 된다면 남한이 지불해야 할 댓가는 무척이나 클 것이다.
얼마전 월스트릿저널(WSJ)은 사설을 통해 개성공단을 폐쇄하라고 남한 정부에 바람을 넣었다. 강경보수매체일지언정 너무나 노골적인 부추김이었다. 개성공단으로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무장을 했으니 폐쇄로 인한 손실이 북한에게 휘둘리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논리였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그대로 움직이고 있다. 남한이 북한을 쩜쪄먹을 ‘무대포 정부’가 되겠다면 그래 ‘못먹어도 고!’, 해보라 하겠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너무 멀리 가지 말라. 홧김에 서방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