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딱 떨어지는 비유는 아니지만 연일 벌어지는 촌극에 문득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가 떠올랐다. 기실 촌극이라고 하기엔 너무 심각한 사건이다. 그러나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특히 정치인과 일부 언론들-을 볼짝시면 웃지못할 블랙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북한 로켓 얘기다. 북한이 로켓 발사를 한다고 한다. 10일부터 22일까지 날짜도 예고했다. 미국과 일본 서방세계가 난리다. 로켓 발사가 중대한 도발이라며 으름장도 놓는다. 사실 북한 로켓에 가장 민감해야 할 대상은 한국이지만 ‘형님들’이 알아서 설치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꼬붕신세를 면치 못한다.
언론은 북한 로켓에 관한 기사들을 쏟아낸다. 분석기사도 적지 않다. 북한이 왜 하필 이때 로켓 발사를 하냐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추측과 추정에 불과하다. 심하게 말하면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써낸 기사도 있다. 물론 이해한다. 북한의 심중을 어찌 알고 분석을 한단 말인가.
북한의 로켓 발사시점에 대해 어떤 언론은 16일에 일본의 총선이 있고 19일에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며 미국과 중국 모두 권력 교체기임을 고려할 때 북한이 한반도 주변국들의 리더십을 테스트하며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북한의 ‘의지’까지 감지한 기자적 본능에 경외감(敬畏感)이 느껴진다. 외교가의 중론이라는 단서를 달아 북한 로켓발사의 의도가 “평화적 우주 이용 권리라는 민감한 소재를 사용해 중국에게는 북한 보호정책의 실효성을, 남측에는 신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의 개선 가능성을, 북일협상을 진행 중인 일본에게는 협상 계속 여부를 타진하려했다”는 해몽(解夢)도 있었다.
실로 탁월하다. 이말대로라면 북한의 로켓 발사는 정말 어지간한 범인들은 감히 상상도 못할 절정고수(絶頂高手)의 전략이다. 로켓발사를 통해 강성대국의 면모도 과시하고 새 지도자 김정은의 위상도 올려세우며 한미일중 4국을 다각도로 테스트하다니….
잇단 취소로 스타일을 계속 구기지만 한국의 나로호 발사 추진을 교묘하게 활용한 시의성까지 계산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런 택일은 사람의 짓이 아니라 필시 신의 솜씨가 아닐까.
여기서 심호흡을 한번 해본다. 꿈보다 꿈풀이가 좋다지만 너무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뭐가 그렇게 복잡하냐 말이다.
북한의 김정은정권은 확고한 권력 장악이 시급한 입장이다. 북한로켓이 무엇인가.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의 유훈(遺訓)을 받드는 일이다. 로켓 발사를 통해 자랑스런 ‘강성대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새로운 지도자의 리더십을 인민들에게 선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발사시점이야 12월 17일 김정일의 1주기가 돌아오니 그에 맞췄을 터, 하나도 이상할 일 없는데 주변국들의 권력교체기라는 미묘한 시점에 고도의 계산된 포석 어쩌구하는건 좀 오두방정같아 보인다.
북한 로켓발사가 한국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분석하는 기사도 있다. 며칠전 뉴욕타임스가 그런 류의 기사를 올렸는데 뉴욕타임스의 한국특파원이 쓴 기사라 그런지 다분히 한국적인 스타일이었다.
한 북한학 교수의 말을 인용해 여당한테 유리할 수도 있고 야당한테 유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만수산드렁칡’도 아니거늘. ^^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로켓 발사 시점을 잡았다는 얘기도 한다. 이 말이 맞으려면 북한에게 도움이 되야할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당한테 유리하면 했지, 불리할게 없는게 북한의 로켓이다.
박근혜가 여자라서 군대를 안갔기때문에 북한로켓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내용은 차라리 코미디였다. 안해본게 없고 모르는게 없는 MB의 지난 5년이 어떤 평가를 받는가 생각하면 말이다.
북한이 욕먹을 짓을 하면 보수정권에 유리한 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아는 일이다. 이번 대선에서 북한이 남한의 진보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로켓 발사는 ‘로’짜도 꺼내면 안됐다. 그럼 보수를 위해서 로켓 발사를 한다는 뜻?
7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이 밀사를 북한에 보내며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남북화해의 기대를 부풀렸다가 돌연 ‘시월유신’의 어이상실이 남북이 서로 짜고치는 고스톱이었다는 말도 하지만 또다른 보수정권 탄생을 위해 로켓을 발사한다구? 지나친 견강부회(牽强附會)다. 로켓발사 비용이 무릇 얼만데….
이 와중에 70년대 저항시인의 아이콘이었던 김지하가 박근혜 지지를 선언했다고 해서 요란뻑쩍지근한 반응이 있었다. 진보에서는 ‘김지하가 돌았다’며 노골적인 비난과 그냥 무시하자는 보수에선 원군을 만난듯 화색이 돌며 끌어안기에 바쁘다.
박정희 정권치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그가 박정희의 딸을 지지한다구? 사실 약간 헷갈리는 순간이다. 일각에서는 김지하가 80년대 대학에서 투신, 분신자살이 잇따를 때 돌연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일갈(一喝)했을 때부터 이상해졌다고 말한다.
정말 그는 머리가 이상해졌을까. 당시 그의 기고문이 보수신문을 통해 나온 것이 좀 그렇기는 했지만 생명존중사상에 심취한 시인이 젊은 대학생들이 독재와 싸우는 방식에 대해 안타까운 심경을 피력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박정희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지만 박정희의 딸은 지지할 수 있다’는 것도 긍정적으로 보자면 못할 말은 아니다. 독재는 박정희가 했지 딸이 한 것은 아니니까. 21세기에 신(新)연좌제가 무슨 말인가. ‘유신의 퍼스트레이디’라고 몰아붙이지만 20대 초반에 어머니의 빈 자리를 딸이 좀 맡았기로소니 도맷금으로 유신독재의 책임론을 제기하니 억울할 법도 하다.
뱁새가 황새 따라갈 수 없고 봉황의 깊은 뜻을 참새가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감히 딴지를 걸진대, 김지하는 너무 혼자서 달통한 것 같다. 오만한 독불장군(獨不將軍)의 바람 찬 기세가 읽혀진다. 마치 ‘나는 박정희때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 내가 원수의 딸 등을 토닥인다손 누가 감히 뭐라 하냐’는 식이다.
나도 어지간하면 박근혜를 지지하고 싶은 사람이다. 박정희 치하에서 파출소 한번 끌려간 일 없는데 뭐가 웬수졌다고 이를 부득부득 갈겠는가. 인간적으로 볼 때 그녀는 참으로 기구한 가정사속에서 인고(忍苦)의 시간을 겪었다. 하물며 결혼도 안한 여성의 몸으로 여당의 대표주자가 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녀를 지지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은 아버지 박정희와 독재자 박정희를 구별하지 않을뿐더러 유신정권의 수혜(受惠)를 오늘날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인 박근혜로 살아가겠다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를 하겠다고 나선 이의 역사관이 이리도 박약(薄弱)하다면 도시락을 싸들고서라도 말려야 할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김지하는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그녀를 덥썩 안아버렸다. 그녀가 혹여 김시인에게 따로 고해성사(告解聖事)의 시간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같은 범부(凡夫)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으로만 판단하니까. 김지하가 일방적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박정희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그가 박정희로부터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징치인 박근혜를 지지하는 모순을 어떻게 납득해야 할까. 참새는 정녕 봉황의 뜻을 알 수 없단 말인가.
시대의 질곡을 친친 철사줄로 동여맨채 먼지 풀풀 나는 황톳길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던 대시인 김지하. 그는 변절하지 않았다. 다만 착각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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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