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평도에서 휴가를 갖지 않은걸 감사해라.”
뉴욕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맞아 게재한 기사에서 최근 북한의 공격으로 무고한 목숨이 숨진 연평도 사태를 희화화해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뉴욕의 무가지인 AM뉴욕은 24일 7면에 ‘추수감사절에 감사해야 할 18가지 이유’라는 풍자(諷刺) 기사를 실었다.
엘리스 헤니컨(Ellis Henican) 칼럼니스트가 작성한 이 기사는 국내외의 여러 이슈들을 추수감사절과 매치시켜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한인 독자들로선 결코 웃고 넘길 수 없는 민감한 표현을 담아 불쾌감을 주고 있다.
특히 이날 기사의 리드문과 종결문을 연평도 사태와 북한을 소재로 하는 등 한반도의 심각한 상황을 장난스럽게 다루고 한국의 이미지까지 오도(誤導)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헤니컨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들이 많다. 당신이 한국의 아름다운 연평도에서 휴가계획을 잡지 않은 것을 감사해라..”
18가지 이유 중 첫 머리를 22일 북한군의 공격으로 장병 4명이 숨지고 민간인을 포함, 수십명이 다친 연평도 사태로 끄집어낸 것이다. 헤니컨에겐 연평도의 비극이 기사작성 중에 때맞춰 일어난 감사한(?)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1번 풍자를 연평도로 해놓고 주절주절 다른 얘기를 늘어놓다가 마지막인 18번에 들어와 다시 북한의 김정일을 풍자하고 있다. 한국의 국문학을 공부했을리도 만무한데 수미쌍관(首尾相關)의 법칙을 제대로 알고 있는 헤니컨이다.
그가 최후에 빈정대는 투는 이렇다. “다른 나라들이 북한처럼 무섭고 미친(scary-crazy) 나라가 아닌 것에 감사해라. 미친 나라가 있지? 그래! 무서운 나라도 있지? 그래! 그럼 무섭고 미친 나라는? 아니!(북한밖엔 없어)”
같은 기자로서 그의 마음을 한번 읽어본다.
‘뭐? 북한이 남한의 섬에 대포를 쏘았다구? 옳다꾸나, 이걸로 리드문을 써먹어야지. 독자들 눈길을 확 끌어당기겠지? 기왕이면 기사를 끝내는 것도 북한 얘기로 하는게 좋겠어. 요즘 김정일이 대세잖아….”
기실 그의 풍자는 무차별이었다. 얼마전 전처와 아이들이 투숙한 뉴욕 호텔의 옆방에 포르노 스타를 놓고 만취한 채 알몸소동을 일으킨 할리우드 스타 찰리 신에 대해선 “찰리가 뉴욕시만 방문하고 다른 도시를 가지 않은 것에 감사해라”고 쓴소리를 했다.
사생활 침해와 과도한 몸수색 논란을 빚고 있는 공항의 전신스캐너와 촉수검사는 “항공사들이 누드사진과 촉수검사를 놓고 선택하게 된 것에 감사해라”, 과열속에 끝난 미국의 중간선거를 빗대 “더이상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보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해라”고 이죽댔다.
그런가하면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뉴욕시 교육감으로 교육경력이 없는 여성CEO 캐시 블랙을 임명한 것을 놓고 “코네티컷 브리지워터에 고풍스런 콜로니얼풍의 저택을 구입한 것에 감사해라”고 빈정대기도 했다
미하원 윤리위에서 징계결정이 난 팔순의 거물정치인 찰스 랭글 연방하원의원도 풍자의 화살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한국전 참전용사로 친한파 의원이기도 한 랭글 의원은 지난해부터 윤리규정위반으로 구설수에 휘말렸지만 시종 억울하다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헤니컨은 그 대목을 들어 “찰스 랭글이 (징계 확정으로) 더 이상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불평하지 않게 된 것에 감사해라”고 꼬집었다.
콘돔 사용이 카톨릭교리에 어긋나는게 아니라는 결정을 내린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대해서도 그는 거침없이 불경(不敬)을 저지른다. “교황이 마침내 콘돔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해라.”
이밖에도 얼마전 결혼발표를 한 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커플과 맨해튼상공의 UFO 소동, 뉴욕 메츠감독으로 선임된 테리 콜린스 등 뉴스 메이커들이 줄줄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미국의 독자들은 킬킬대며 이 기사를 읽었을지 모르겠다. 풍자는 풍자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헤니컨에게 딴지를 걸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글이 가벼울수록 대상의 선정은 신중해야 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너무 경박했다. 죄없는 젊은 목숨이 희생되고 그로 인해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는 지구 반대편의 나라를 안주삼아 한가하게 휴가타령이라니. 백보 양보해서 연평도가 무슨 국제적인 관광지라도 되느냐 말이다.
만일 대지진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고 요즈막에 콜레라까지 창궐한 아이티를 일러 “그런 나라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해라”고 입을 놀렸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연평도 사태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안타까움에 혀를 끌끌 찰 망정 결코 농짓거리의 대상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은 헤니컨을 포함한 미국인들이 가장 큰 명절로 생각하는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아닌가.